[집중조명] 소방시설관리, 이대론 안 된다!장정숙, ‘반복되는 후진국형 대형화재, 해법은?’ 토론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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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이재홍 기자] = “대부분의 건물에서 소방시설에 대한 관리가 비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관행처럼 묵인돼 왔던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엉켜있다. 이제는 그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지난달 31일 국회의원회관 제6간담회실에서 열린 ‘반복되는 후진국형 대형화재, 해법은?’ 토론회에 참석한 소방 분야 각계 전문가들은 현 소방시설관리 실태에 대한 지적들을 쏟아냈다.
국민의당 장정숙 의원(안전행정위원회)이 주최하고 국민의당 소방방재특별위원회와 한국소방단체총연합회, 한국소방시설관리협회가 주관한 이 날 토론회는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를 통해 드러난 소방시설관리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장정숙 의원을 비롯해 국민의당 김관영, 김중로, 이동섭, 이용호, 정인화, 최도자 의원이 참석했다. 또 한국소방단체총연합회 이기원 총재, 한국소방시설관리협회 남상욱 회장, 한국소방시설협회 최영웅 회장, 한국소방기술인협회 김기항 회장 등 소방 관련 단체장과 분야 관계자 7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장정숙 의원은 인사말에서 “네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를 비롯해 인천 소래포구 화재 등 안전을 위협하는 대형화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이는 기본 방재 지침에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또 “물론 현장에서 호소하는 어려움은 이해한다”면서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근본적인 제도는 고쳐지지 않은 채 ‘땜질식 처방’만 이어지고 판박이 사고가 반복된다”며 말을 이었다.
이어 “더 이상은 안 된다”고 강조한 장정숙 의원은 “안전 의식을 더욱 증진하는 동시에 안전과 관련된 근본 제도를 개선해 ‘인명’이 우선시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반복되는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다음 비극은 내 가족과 동료를 향할 수도 있다. 오늘 세미나가 그 초석을 놓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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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대림대학교 김우창 교수는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 사고의 개요와 피해가 컸던 원인을 설명하고 소방안전관리 실태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점을 꼬집었다.
김 교수는 소방시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이유로 소방안전관리자의 기술적인 한계와 감독 권한의 제약, 또 건축물 대표자에 대한 처벌 규정 미비, 문제 발생 시 즉각적인 보수 어려움 등을 꼽았다.
김 교수는 “현재 건축물에 선임된 소방안전관리자는 한국소방안전협회에서 32시간 또는 40시간의 교육을 수료하고 시험을 거쳐 소방안전관리자 수첩을 취득한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소방 관련법이라든가 시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비화재보 발생에 따른 입주자들의 민원이나 오작동에 의한 경제적 피해를 우려하다 보니 아예 꺼놓은 경우도 발생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역량을 갖춘 소방기능사 자격을 신설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소방안전관리 용역의 하도급을 금지해야 한다는 견해도 내놨다. 그는 “특급과 1급 소방대상물은 대부분 복합건축물의 형태로 입주자 대표회의나 상가 번영회에서 건축물 관리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고 있다”며 “그런데 소방안전관리업체는 입주자 대표회의나 상가 번영회와 계약을 맺은 건물관리업체와 계약을 맺고 소방안전관리자는 그런 소방안전관리업체에 소속되다 보니 최소 4단계 구조로 이뤄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는 소방안전관리자가 소방시설이나 피난시설, 방화시설 등의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필요한 조치를 요구하기는 어렵다”며 “소방안전관리에 관한 용역은 입주자 대표회의나 상가 번영회와 직접 계약을 맺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김우창 교수는 현재 관계인과 소방안전관리자에게만 적용되고 있는 처벌 규정을 문제로 지적하고 대표자에 대한 처벌 조항 신설을 주장했다. 또 소방시설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한 처리를 위해 장기수선충당금과 같이 소방시설 보수비를 일정 금액 보유토록 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화재소방학회 김엽래 회장을 좌장으로 진행된 토론에는 국민안전처 손정호 소방제도과장과 이일 소방산업과장을 비롯해 강원대학교 정영진 교수, 한국소방시설관리협회 김성한 이사, 한국소방안전권익협회 김진학 이사, 부천벤처협회 임종천 부회장, 소방방재신문 최영 기자가 패널로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소방안전관리자 자질 높이고 권한 부여해야”
강원대학교 정영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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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강원대학교 정영진 교수는 부실한 소방안전관리자 양성교육과 실질적인 유지관리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소방안전협회에서 4일간 교육을 받은 후 간단한 시험을 통과하면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이 부여된다”며 “실제 건물에 선임됐을 때 소방설비의 구조원리나 작동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그는 또 “소방안전관리자 대부분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 실정에서 입주자의 영업에 방해가 되는 감지기 오작동이라도 발생하면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경종과 지구경종을 차단하는 것”이라며 “일부에서는 수신반 전원을 꺼놓기도 한다”고 말을 이었다.
정 교수는 “소방안전관리자의 실질적 역량을 제고하는 동시에 이들이 정상적으로 건축물 유지관리를 할 수 있도록 직위나 권한을 법으로 규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사고 발생 시에는 건축주도 공동으로 책임지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대로 관리되는지 관계자 간 정보 공유 필요”
부천벤처협회 임종천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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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벤처협회 임종천 부회장은 소방시설의 유지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또 문제 발생 시 신속한 파악과 즉각적인 조치를 위해 관계자 간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임종천 부회장은 “2014년도 기준 자동화재속보설비 화재 신고 건수를 보면 총 9천385건의 신고가 접수됐다”면서 “이 중 실제 화재는 12건에 불과했고 오작동이 5천669건, 원인 미상이 3천704건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오인 출동으로 인해 불필요한 인적ㆍ물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이 소방시설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차단해놓는 결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라며 “언제 어디서나 소방시설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원격관제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 부회장은 “원격관제시스템에서 확인된 정보를 소방안전관리자와 점검업체 관계자뿐만 아니라 입주자대표나 건물주에게도 공유함으로써 철저한 유지관리를 도모할 수 있다”면서 “관계인 안전의식 향상과 함께 만일의 사태 시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방시설 완공 후 무분별한 후속 공정이 문제”
한국소방시설관리협회 김성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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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방시설관리협회 김성한 이사는 소방시설 완공 이후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후속 공정 문제를 제기했다. 소방시설 완공검사증명서까지 발급받은 후 인테리어 공사가 이뤄지고 내부구조가 변경되는 등 소방시설이 최초 설계에 따른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경우가 만연하다는 설명이다.
김성한 이사는 “건축물 사용승인 신청 시 소방시설 완공검사증명서를 첨부하라는 규정은 없지만 대부분 현장에서 해당 서류를 요청하고 있다”며 “완공검사 이후에는 소방시설을 신설하거나 구역을 증설하는 경우, 또 수신반과 소화펌프, 제어반에 대한 공사에 대해서만 착공신고를 하도록 하다 보니 수많은 공정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감독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제연설비는 구역이 증설되지 않더라도 변경이 있을 경우 재검증이 필요하지만 착공신고 의무가 없어 임의로 변경되고 있다”며 “화재 시 정지해야 할 공조설비 등 일부 시설은 소방시설 완공 이후까지 공사가 진행돼 소방시설에 영향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김성한 이사는 “소방시설 완공검사증명서는 건축물 사용승인 신청이 아니라 사용승인서류 수령 시까지 제출하는 것을 명문화하고 착공신고 대상에 제연설비 구역 변경에 관한 사항을 신설해야 한다”며 “대형건축물은 구획이나 구조변경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사용승인 후 1개월 이내 별도 테스트를 실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가지 문제 아냐, 프로세스별 문제점 해소해야”
소방방재신문사 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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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방재신문사 최영 기자는 “12년 동안 이 분야에서 기자 활동을 해오면서 화재 현장도 많이 가보고 제품과 시스템을 봐왔지만 정상적으로 운용되는 곳은 사실 적은 게 현실”이라며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형화재 중 경보시설이 불량이었던 사고는 약 12건 이상으로 문제는 이런 곳들이 아직도 도처에 깔려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는 내부 리뉴얼공사 중이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지만 경찰 발표에서는 무려 6년 동안 소방시설이 꺼졌다고 발표해 국민은 소방시설 관리가 엉망이라는 인식이 큰데 엄밀히 따지면 이 관계자들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고도 말했다.
특히 최 기자는 “우리나라 멀티플렉스 영화관 같은 시설에서 지구경종을 꺼놓지 않은 곳은 없을 것이다”면서 “지구경종이 바로 작동되면 이용객들이 대피를 하거나 상영 자체가 정지되다 보니 경제적 손해를 겪게 되기 때문에 1차 신호를 받고 방재실에서 대처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또 “메타폴리스의 안전관리 우수사례 발표 자료를 보면 소방서에서도 지구경종을 꺼놓고 관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현실은 소방서나 분야 관계자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 해소를 위해선 소방시설의 적용 프로세스별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기자는 “설계와 공사, 감리 등 공정별 산재한 문제가 해결돼야만 완성된 시설이 유지관리분야로 넘어가 정상 관리가 가능하다”면서 “지금 소방 감리의 경우 발주처인 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구조로 감리자가 객관성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발주처에 감리의 선임 권한까지 있어 발주처 요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소방관서의 업무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감리자가 중립성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최근 소방에서 도입한 사전입찰 적격심사를 대폭적으로 확대해서 공동주택과 대규모 복합건물에 대한 감리의 중립성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재발 방지 위한 상설 위원회 필요”
한국소방안전권익협회 김진학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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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방안전권익협회 김진학 이사는 현실성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시행하기 위한 상설 소방위원회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김진학 이사는 “동탄 메타폴리스의 경우 항상 칸막이 등을 치고 폐점과 개점, 이전 등의 공사가 이어지고 있다”며 “경직된 기준으로 인해 다양한 현장 상황에 따라가지 못하는 제품 등의 문제는 차치하고 이를 소방안전관리자의 관리 소홀로만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근본적인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속적이고 합리적이며 보다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사고가 발생한 후에나 왜 소방시설을 수동으로 운영했느냐며 책임자를 추궁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는 그러면서 교수와 소방기술사, 소방시설관리사, 소방설비기사, 소방안전관리자, 공무원, 국회, 언론 등이 한데 모여 실질적 문제 개선을 위한 상설 위원회 발족을 제안했다.
그는 “작금의 문제는 지난 1958년 소방법 시행 이후 줄곧 성장에 밀려왔던 소방산업의 아픔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실질적인 재발 방지와 개선을 위해 학술 분야와 기술 분야의 의견을 종합하고 사회적 제도화를 추진할 수 있는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홍 기자 hong@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