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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지진 7.8- Ⅳ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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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119구조본부 김상호 | 기사입력 2024/01/04 [12:30]

튀르키예 지진 7.8- Ⅳ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 출동

중앙119구조본부 김상호 | 입력 : 2024/01/04 [12:30]

이번 튀르키예 지진 대응 해외긴급구호대에는 몇 가지 수식어가 붙었다. ‘역대 최단 시간 내에 파견 결정’과 ‘역대 최다 인원 파견’이다.

 

수식어처럼 우린 72시간 골드타임 내 튀르키예에 도착해 구조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다. 파견 규모는 해외긴급구호대장으로 외교부 개발협력국 원도연 국장을 포함해 외교부 3, 소방청 1, 중앙119구조본부 62, KOICA 6, 특전사 43, 국군의무사령부 6명 등 총 121명(선발대 3명 포함)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국제사회 인도주의적 공헌의 일환으로 이름은 다르지만 해외긴급구호대와 국제구조대를 피해국에 각각 파견했다. 이번 튀르키예까지 포함하면 18번째다. 

 

지난 17번의 파견 중 생존자를 구조한 건 대만 대지진 때 한 명이 전부다. 1999년 대만 대지진 당시 국제구조대인 중앙119구조대(현 중앙119구조본부)가 파견돼 지진 발생 87시간 만에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6살 장징훙 군을 극적으로 구조했다. 

 

▲ 보살만이 사람을 구할 수 있는데 우리 구조대가 사람을 구해 ‘살아있는 보살’이라고 비유했다.

당시 우리나라와 대만의 외교적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1992년 체결된 한중수교로 인해 그해 8월 24일 외교 관계가 단절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만 정부는 생존자 구조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중앙119구조대에 활보살1)이라고 명명한 기념상을 보내왔다(중앙119구조본부는 이 상을 7배로 확대해 앞뜰에 자리를 잡아줬다). 

 

대만 대지진 피해 현장의 국제구조대 파견과 극적인 어린아이 구조로 양국 간 단절된 외교 관계는 1993년부터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 후 여러 번 국제구조대가 해외에 파견됐지만 생존자 구조 소식을 가져오진 못했다. 하지만 이번 튀르키예 지진 대응 해외긴급구호대 파견은 느낌이 달랐다.

 

정부의 빠른 의사결정과 대통령의 지지로 지금까지 출동 시기가 늦어 생존자를 구조할 수 없던 과거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무너진 건물에서 매몰자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큰 골든타임(72시간)의 끝자락에 도착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생존자를 구조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대원들은 직감했다. 이처럼 빠른 의사결정으로 우리를 파견해 준다면 우리도 생존자를 구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2013년 필리핀 쓰나미와 같은 재난 지역에서 생존자를 구조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이티, 네팔 등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에서는 생존자를 구조할 확률이 높다.

 

무너진 건물 사이나 내부에 공간이 생기면 그 공간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튀르키예 지진은 대부분 도시지역을 따라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사전 정보에 의하면 튀르키예 도시 대부분은 우리나라 빌라와 같은 건물이 많았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내부에는 크고 작은 공간이 생길 확률이 높고 생활하던 주거지로 물과 식량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튀르키예 도착 전이지만 여러 상황을 분석해 볼 때 생존자를 구조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존자 구조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시간은 흘러 소방청장 직무대리(현 소방청장 남화영)가 해외긴급구호대 국제구조대를 격려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방문할 시간이 됐다. 게이트에서 가까운 곳에 정렬해 기다리는 동안 서로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닌 긴장의 눈빛이 느껴졌다.

 

소방청장 직무대리는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라는 격려와 함께 출동 대원과 악수했다. 출동 대원의 이름을 불러주며 눈빛으로 무사 귀환을 주문했다. 격려가 끝나고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훗날 소방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사진을 우린 비장한 마음으로 남겼다.

 

 

출국 전 마지막 행사는 외교부 차관의 격려다. 시간이 조금 남아 서로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검푸른 복장의 특전사 군인들이 등장했다.

 

함께 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지만 진짜로 함께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나 또한 18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특전사가 비무장으로 해외 파견을 나갔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특전사는 북한군이 두려워하는 대한민국의 최정예 특수부대이자 사람을 죽이는 데 특화된 부대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을 살리러 간다. 어떻게 정치적 의사결정이 내려졌는지 우리에겐 중요하지 않다.

 

튀르키예에 함께 갈 동지가 생겨 마음 한편으로 든든했다. 튀르키예 지진 대응에 최선을 다하는 게 우리 임무다. 이미 베레모를 쓴 특전사 대원들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쓸 준비가 돼 있었다.

 

작전계획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국방부가 이번엔 많은 변수를 두고 특전사와 국군의무사령부를 투입했다. 중앙119구조본부 대원 대부분이 특수부대를 전역한 사람으로 구성돼 있어 국제구조대원들 대다수가 특전사 출신이었다.

 

후배를 바라보는 구조대원과 구조대원을 바라보는 특전사 후배들 사이에는 어색함이 감돌았다.

 

 

외교부 차관의 격려사가 끝나고 주한 튀르키예 대사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튀르키예 여성 통역관은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통역했다. 통역 중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전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는 말에 절박함이 느껴졌다.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서 한 사람이라도 구조해달라는 당부로 들렸다. 

 

“그럼 너는 인류를 구한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원들에게 최선을 다해달라는 핵심 문장이었다.

 

모든 행사는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됐다. 튀르키예 지진 발생 지역에는 로밍서비스도 제한적이라는 외교부 직원의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랑하는 가족과 통화하기 바빴다.

 

출국 전 아이들 얼굴을 더 담고 싶은 아빠들,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는 아들들,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의 정을 나누는 대원들이 곳곳에서 통화를 이어갔다. 

 

나 또한 10살 첫째 딸, 13개월 된 둘째 딸과 영상통화를 했다. 아직 말문을 열지 못한 둘째 딸이 갑자기 ‘아빠’라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내는 집 걱정하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넸다. 아내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서로 말없이 얼굴만 보다가 손을 흔들며 “조심히 건강하게 잘 다녀오겠다”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약속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더 힘이 났고 건강하게 복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아내와 전화를 끊고 벽에 기대어 2006년 이라크 파병 전날 어머니와 통화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라크전쟁 상황에 대해 위험한 내용을 많이 보도했다.

 

이런 분위기에 파병 간다고 하니 부모님께서 걱정이 많으셨다. 떠나던 날 아침 어머니께서는 “아들아 위험한 곳에 가지 말고, 밥 잘 먹고, 아프지 말고, 나서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하지만 파병 기간 중 어머니의 당부를 다 실천하진 못했다. 임무 특성상 항상 위험한 곳에 먼저 나가야 했고 나서고 싶지 않아도 나서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이번엔 아내와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이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비행기 탑승 전까지 튀르키예에서 수집된 정보가 계속 전파됐다. 2월 7일 선발대로 출발한 3명(외교부 1, 코이카 1, 소방 1)의 대원들이 튀르키예 앙카라공항에 도착해 우여곡절 끝에 이스탄불 한국대사관에 도착했다.

 

선발대는 튀르키예 한국대사관과 긴밀히 협조하며 모든 게 불확실한 현재 상황에 대해 튀르키예 정부로부터 하나라도 더 지원받기 위해 노력했다. 

 

물자 수송 트럭 4, 수송 버스 4, 구조견 차량 1, SUV 차량 1대가 준비됐다는 내용이 들려온다. 그리고 유럽연합에서 사용하는 ERCC2)에 2023년 2월 6일 최신 업데이트된 자료가 추가로 공유됐다.

 

 

붉은색 점으로 표시된 곳이 지진 규모 7.8과 7.5 강진이 발생한 곳이다. 검은색 점으로 표시된 건 규모 4~6.7의 여진이 발생한 곳이다. 사진만 봐도 지진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왼쪽 아래 범례에 지진의 규모(Shaking)에 따라 붉은색에서 연두색까지 5단계로 나눠 표시돼 있다. 규모가 큰 붉은색과 주황색이 튀르키예 허리를 관통하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사망자(1498명), 희생자(8533명), 붕괴 건물(2834개) 통계가 나와 있다. 

 

아래에 ‘EU Response’를 보면 MUSAR3)13개 국가(크로아티아, 불가리아, 그리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몰타, 벨기에, 스페인,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몬테네그로, 탈린, 티라나)와 HUSAR4) 4개 국가(체코,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가 튀르키예로 파견됐다는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이제 한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는 끝났다. 튀르키예 지진 관련 정보는 부족했지만 모든 채널을 동원해 정보를 수집했고 이는 대원들에게 공유됐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안 났다. 출국장의 시계는 하루가 지났음을 알려줬다. 출입국심사는 우리가 외국 여행 갈 때와 동일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해외 출동을 나간다고 해서 프리패스라던가 하는 특별함은 없었다. 외교부에서 받은 비행기 표는 일반 항공사 비행기 표와 형식이나 크기가 달랐다. 

 

‘공군 수송기를 이용해 해외로 파견 가는데 비행기 표까지 필요할까’라고 생각했지만 절차상 필요한 부분이라고 여겼다. 대원들이 일렬로 길게 줄지어 공항 직원에게 여권과 비행기 표를 보여주며 출국 심사가 진행됐다.

 


가족과 해외여행을 간다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겠지만 지금은 긴장감과 사명감으로 가슴 한편이 무거웠다.

 

사전에 기내 반입금지 물품을 수거해 화물로 보냈지만 급하게 출동을 준비하다 보니 개인물품 가방에서 반입금지 물품들이 나왔다. 용량이 초과 된 치약은 버려도 어쩔 수 없지만 다목적 칼은 현장에서 꼭 필요한 물품이었다.

 

이런 우리의 사정을 아는지 공항 측에서 별도 박스를 만들어 튀르키예에서 받을 수 있도록 공군 측 관계자에게 전달해 줬다. ‘민간 항공기를 타는 것도 아닌데 통과시켜 주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 놓은 규정이기에 우리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전 대원이 출국 심사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대원은 구조견이었다. 탑승구까지 가는 길은 야간이라 한산했다. 간혹 만나는 국민은 우리의 붉은색 복장이 신기한 듯 “누구냐, 어디 가냐” 등 질문이 쏟아냈다. 그럴 때마다 “우린 소방관이고 튀르키예 지진 피해를 돕기 위해 간다”고 답하면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다. 

 

43번 게이트에 도착해 개인물품 가방을 바닥에 내리고 창문 밖을 바라봤다. 자정이 넘은 밤이지만 가로등과 공항 조명들이 활주로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튀르키예 국민에게 밝은 빛이 돼 줄 수 있길 마음속 깊이 간절히 기도했다. 낯선 환경에서의 생활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지진재난 현장에서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도 함께 밀려왔다.

 


1) 활보살(活菩薩): 중생을 살리는 보살

2) Emergency Response Coordination Center, 비상 대응 조정 센터

3) Medium Urban Search and Rescue, Medium등급 도시탐색구조팀

4) Heavy Urban Search and Rescue, Heavy등급 도시탐색구조팀

 

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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