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상황일지_ 생존자 3명 구조, 사망자 5명 수습④ 생존자 2명 구조, 사망자 1명 수습
튀르키예 구조대와 One Team으로 모자(母子) 구조
이른 아침 파란 헬멧을 쓰고 구레나룻과 턱수염이 잘 다듬어진 젊은 현지 남성이 숙영지를 찾았다. APAD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있었다. 당연히 이곳에 함께 상주하는 현지 구조인력이라 생각했다.
“May I help you?”
현장 지휘부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그에게 짧은 영어로 물었다.
“전 재난ㆍ비상관리 당국 소속 공무원입니다. 이스탄불에서 왔어요. 앞으로 안타키아에서 일어나는 구조 상황에 대해 공유하겠습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마친 그의 말에 모두 어리둥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튀르키예 한국대사관에서 튀르키예 정부에 중앙부처 공무원 파견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그를 따뜻하게 반기면서 현장 지휘소 내에 자리를 마련해 줬다. 운영반에서는 파견된 재난ㆍ비상관리 당국 공무원에게 안타키아에서 접수된 신고 중 생존자 발견이나 중요 사항이 있으면 공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틀간 통역을 해준 자원봉사자 다음으로 우리에게 고맙고 중요한 사람이었다.
튀르키예 파견 공무원을 통해 오후 3시 30분 수색 요청이 접수됐다. 대기하던 구조반 인원들은 신속히 착암기와 내시경 카메라, 철근절단기, 서치탭, 야전용 삽 등 구조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챙겨 차량에 탑승했다. 차로 10분 정도 이동해 목적지 주변에 도착했다.
이제는 익숙할 것 같은 현장이지만 도착하니 긴장되긴 매한가지다. 이곳도 아수라장이었다. 4층 건물이 완전히 붕괴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먼저 도착한 튀르키예 구조대가 수색작업 중이었다.
우리는 매뉴얼에 따라 상황 판단 회의 후 생존자가 있을 만한 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착암기로 구멍을 뚫어 서치탭을 넣었다. 서치탭 운용자는 생존자의 작은 숨소리까지 찾아내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서치탭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헤드폰에 사람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전해졌다. 우린 튀르키예 구조대에 생존자 발견 사실을 통보했다. 곧장 튀르키예 구조대장이 생존자 발견 지점으로 왔다.
생존자와 의사소통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유도했다. 숨죽이면서 초조해했던 시간, 허리와 무릎의 고통을 참아가며 쪼그리고 앉아 기다린 모든 시간이 환희로 바뀌었다.
우린 튀르키예 구조대(인사락 헤비 팀)와 생존자 구조를 두고 간단한 회의를 했다. 붕괴한 건물의 내부 상황이 불확실해 세 개의 방향에서 통로를 개척하기로 했다.
1조는 측면에서 착암기로 벽인지, 바닥인지 모를 콘크리트를 깨고 철근을 잘라가며 통로를 만들었다. 2조는 상부에 수직으로 통로를 개척하고 있었으나 더는 개척이 어렵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다행히도 아래쪽에서 튀르키예 구조대와 함께 통로를 개척하던 3조로부터 생존자를 발견했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개척한 통로를 통해 들어간 내부는 너무 처참했다. 생존자와 사망자가 뒤섞여 있는 상황이었다. 골든타임 72시간이 한참 지난 시점에서 생존자의 건강이 걱정됐다. 우리는 생존자 최우선 구조 원칙을 생각했다.
생존자를 구조하기 위해선 통로를 막고 있는 시신 1구를 먼저 꺼내야 했다. 시신을 수습한 후 통로를 따라 들것이 들어왔다. 어두운 곳에서 손전등 불빛으로 마주한 생존자는 너무 어렸다.
그를 들것에 고정하고 통로를 따라 외부로 나왔다. 의료팀은 정맥주사와 보온 등의 응급조치를 한 후 현지 의료팀에게 인계했다. 지난번 생존자 구조 때와 마찬가지로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환호와 박수는 마약과도 같았다. 힘든 시간의 고통을 잊게 해주고 아드레날린을 분비해 힘을 내게 해줬다. 그래서인지 힘든 구조 활동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계속해서 생존자 수색을 이어갔다. 조금 뒤 또 한 명의 생존자를 발견했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해가 저물며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의 열기가 높아졌다. 주로 작업하던 통로 옆쪽으로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 생존자를 구조해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튀르키예 구조대와 대한민국 구조대는 오직 하나의 목표 아래 여러 방면으로 생존자를 구조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새 두 나라 구조대는 One Team이 됐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중년의 여성 생존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생존자가 들것에 실려 나오자 미리 대기하던 우리 측 의료진은 서둘러 응급처치를 했다. 현지 의료진에게 인계하기 위해 들것이 이동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들것의 한쪽은 대한민국 구조대, 다른 쪽은 튀르키예 구조대가 들었다.
누가 먼저 구조했다는 공을 다툴 의미가 없었다. 공동으로 생존자를 구조했다는 의미다. 다음날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와 튀르키예 구조대가 함께 생존자를 구조한 이 장면은 튀르키예 국영방송을 통해 보도됐다.
마지막 생존자는 골든타임 72시간을 훌쩍 넘긴 기적의 생존자들이었다. 지진 발생 5일 16시간, 약 136시간 만에 구조됐다. 구조된 생존자는 어머니와 아들이었다. 삶과 죽음 앞에서 서로를 응원하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견뎌준 두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는 튀르키예 지진 피해 대응 4일 차 총 9회 출동으로 생존자 3명 구조, 사망자 4명을 수습했다. 골든타임 경과, 안전 위협 등으로 철수를 문의하는 타국 구조대가 늘어났다. 지난밤 총성과 주민 간의 갈등으로 인해 무장한 치안군 4명을 지원받아 숙영지 경계를 강화했다.
튀르키예 지진 7.8 <119플러스>를 통해 연재되는 ‘튀르키예 지진 7.8’이 동명의 에세이로 출간됐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의 생존자 구조에 대한 열정으로 튀르키예 국민을 감동시킨 한편의 드라마를 책으로 만나보세요.
가격 26,000원 페이지 259page 사이즈 153×225㎜
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