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상황일지_ 사망자 1명 수습 19번째… 마지막 사망자를 수습하다
치안 불안과 H+150시간이 지나면서 생존자 구조가 어렵다는 판단하에 16개국 구조팀이 임무 종료를 선언하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도 내일 튀르키예 지진 피해 대응 활동을 종료할 예정이었다. 대다수의 외국 구조대는 골든타임이 지나면 생존자 구조가 사실상 어렵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UCC에서는 출국하는 국가를 기록했다. 회의에 참석할 때면 그 현황을 볼 수 있었다.
이제부터 생존자를 구조하는 건 하늘의 뜻이다. 우린 그간 바쁘게 수색ㆍ구조 활동 중 미처 인사락 마킹 시스템을 하지 못한 곳을 돌며 작업을 했다.
해외 모든 구조대가 떠난 후 건물을 철거하는 사람들은 마킹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을 테다. 그래도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안타키아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을 구조했다는 사실을 남기고 싶었다.
‘UCC에서 배정된 I-1섹터에서 KOR-01팀이 ASR 2, 3단계를 했으니 뒤에 오는 구조대들은 참고하세요’
파란 글씨의 의미다.
구조대장에게 승인을 받은 후 소수 인원이 마킹 작업에 참여했다. 각 구조반은 숙영지에서 대기했다. 튀르키예 재난ㆍ비상관리 당국 소속의 연락관을 통해 생존자 신고가 접수되면 즉시 현장으로 출동할 태세를 갖췄다.
마킹 작업을 하기 위해선 스프레이가 많이 필요했다. 스프레이를 챙겨 출동 차량으로 이동 중에 “나도 함께 마킹 하러 가자”는 소리가 들렸다. 도시탐색구조 전문 교관인 이홍길 주임이었다. 그가 동행한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해지는 이기평 반장이었다.
그들은 특전사 대원 2명과 젬례(여)라는 현지 통역사를 지원받아 함께 길을 나섰다. 어제와 또 다른 현장 분위기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했던 길인데도 길을 찾을 때 참고점이 돼준 건물들이 모두 없어져 버려 낯설게만 느껴졌다.
Survey123 애플리케이션의 ‘워크사이트 리포트(Worksite Report)’ 기록을 살펴보며 지도와 GPS를 따라 우리가 수색했던 사이트를 찾았다. 누락된 부분은 없었는지, 무심결에 지나친 건 없는지 확인했다. 그러던 와중 현지 여성이 울먹이며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 건물에 살아 있는 가족이 있어요”
반신반의하며 요청한 건물 쪽으로 이동했다.
6~7층 정도 되는 아파트 형태의 주거용 건물이었다. 그 아래에서 그들이 발견한 건 생존자가 아닌 사망자였다. 시체는 부패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이미 사망한 지 꽤 시간이 지났네. 마킹 작업하면서 생존자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사실 수색ㆍ구조 활동을 하러 온 게 아니다 보니 희생자를 수습할 인원도, 장비도 없었다. 게다가 침실로 추정되는 곳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희생자가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있는 상황이라 시간과 장비가 투입돼야 했다.
옆 벽면에 마킹 작업을 마치고 무거운 마음으로 현장을 떠나려는 순간, 현지 구조 자원봉사자들이 장비를 가져다줬다. 철근을 자를 수 있는 절단기와 무거운 콘크리트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지렛대, 그리고 구조 작업을 도와줄 인력까지 왔다.
이홍길 주임과 이기평 반장의 눈이 마주쳤다.
‘그래, 한번 해보자’
마음은 통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눈빛과 오기만 가지고 구조 작업을 시작하는 건 무리였다. 침대 크기의 콘크리트 더미가 희생자를 덮고 있었다.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게 급선무였다.
콘크리트는 위쪽과 아래쪽의 철근 열 가닥이 다른 쪽과 연결돼 있었다. 이 철근을 잘라야 콘크리트를 제거할 수 있었다. 한 가닥씩 철근을 제거한 후 건장한 남성들이 달라붙어 다 같이 “one, two, three”를 외치며 힘을 모았다.
꼼짝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콘크리트가 움직였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침대를 덮고 있던 콘크리트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처참하게 희생된 할머니가 쪼그린 상태로 그들과 마주했다. 신고자의 오열로 조용했던 현장의 적막이 깨졌다.
“유가족 위로 좀 해주세요. 그리고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시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통역사에게 요청한 후 이제 끝났겠거니 했는데 사망자의 두 발이 더 큰 콘크리트 더미에 끼어있는 게 아닌가. 순간 그들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필이면 콘크리트가 발목 쪽을 누르고 있어 무리하게 잡아당기면 사망자의 신체가 훼손될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콘크리트 더미를 부수거나 들어내는 건 중장비가 동원돼야 한다. 하지만 중장비를 동원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유가족에게 어떻게 말을 전할까 고민하다 다시 현장을 살펴봤다. 시멘트 먼지와 콘크리트 조각 때문에 사망자가 누워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사망자 좌우 측에 있는 콘크리트 조각들을 치우고 손으로 눌러 보니 침대 매트리스였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상부의 콘크리트 말고 하부의 매트리스를 제거하면 구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홍길 주임이 주변에 있는 옷가지 등으로 사망자의 발을 감싸고 이기평 반장이 있는 힘껏 두 손으로 침대를 눌렀다.
드디어 빠졌다. 안도감도 잠시 반대쪽 다리 아래는 나무판이 가로막고 있어 침대가 눌러지지 않았다. 나무를 자를 수 있는 톱이 있어야 했는데 그들이 가진 건 휴대용 레더맨(다목적 칼)에 있는 7㎝짜리 작은 톱뿐이었다.
시도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구조대원에겐 있을 수 없는 일. 일단 보이는 부분부터 조심스럽게 차근차근 톱질해 나갔다. 작은 톱은 무서운 속도로 침대 매트리스와 나무 프레임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시멘트 분진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한참을 자르다 보니 침대를 누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조금 전과 같은 방법으로 발을 빼냈다. 사망자를 건물 밖으로 옮기고 명복을 빌며 묵념했다.
현지 구조인력이 가져다 준 사체낭으로 모신 후 안전한 도로 쪽으로 이동했다. 현장은 이미 콘크리트 더미들이 쌓여 하나의 산을 이루고 있어서 이동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여럿이서 사체낭 손잡이를 잡았지만 박음질 상태가 좋지 않아 찢어져 버렸다.
그 순간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사망한 사람이라지만 이런 싸구려 천 조각에 모셔야 하나 싶었다. 주변에서 도와주던 현지인이 어디선가 새로운 사체낭을 가져 왔다. 조심히 옮겨 모시고 다시 발걸음을 뗐다.
지나가는 길은 중장비가 투입돼 철거ㆍ수색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런데도 신호를 보내니 중장비를 멈추고 애도해 줬다. 심지어 이 모습을 본 굴착기 기사는 굴착기 버킷으로 사체낭을 옮겨주겠다고 제안했다.
‘사체낭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불안해진 이기평 반장은 사체낭과 함께 굴착기 버킷에 몸을 싣고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았다. 반대편으로 이동한 후 굴착기 기사에게 오른손 주먹으로 왼쪽 가슴을 두 번 두드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유가족에게 사망자를 인계하고 다시 마킹 작업을 하던 지역으로 이동했다.
시계를 보니 2시간 30분이 지나 있었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 이렇듯 대한민국 구조대는 사망자까지 다 구조하는데 타국 구조대는 사망자보다 생존자 구조를 우선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무엇이 옳다고 할 순 없지만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를 또 한 번 실감했다. 다시 현장을 누비면서 여러 정보를 얻고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다음날에는 전날 마치지 못한 마킹 작업을 위해 현장으로 나갔다. 어제 구조요청을 했던 여성을 만났는데 우릴 보고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렇게까지 밝게 웃으면서 알아봐 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오늘도 그들에게 큰 선물을 받았다. 감사하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는 튀르키예 지진 피해 대응 6일 차 총 5회 출동으로 사망자 1명을 수습했다. 전날 대만 등 4개국 구조대가 철수했고 이날 독일 등 6개국 구조대가 철수했다. 안타키아 지역에서 해외 구조대의 활동은 대부분 종료됐고 튀르키예 정부에서 중장비를 동원한 철거작업이 시작됐다.
7일 차는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의 수색ㆍ구조 활동이 종료되는 날이다. 2회 출동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장비 기증식이 있었고 우리가 철수한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튀르키예 정부 관계자들이 찾아와 그간 우리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보냈다.
튀르키예 지진 7.8 <119플러스>를 통해 연재되는 ‘튀르키예 지진 7.8’이 동명의 에세이로 출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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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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