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키아에서 만난 한국인 청년 2월 14일 오후 5시 58분. 숙영지가 있던 셀림 아나돌루 고등학교 맞은편 지진으로 지하층과 1층이 무너진 6층 건물 앞에 사람들과 굴착기가 모여들었다. 무너진 건물은 우리나라의 빌라와 비슷한 형태의 주택이었다. 어제부터 부쩍 늘어난 중장비가 이제 이곳까지 왔구나 싶었다.
곧 안타키아의 무너진 건물들이 모두 철거될 것 같았다. 나를 포함한 구조반이 현지 주민들의 신고로 3번이나 수색한 건물이다. 매일 일어나면 이곳이 지진 피해 현장임을 느끼게 해주던 건물인데 철거한다고 하니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숙영지를 편성하고 현지 주민들이 “사람 소리가 난다. 아이 소리를 들었다”고 신고해 출동했지만 붕괴한 지하층과 1층에서는 생존자도, 사망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두 번째 신고를 받고 숙영지에 남아 있던 운영반 대원과 함께 출동했다. 건물 우측에 지하실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창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니 지하층은 헬스장이었다.
튼튼한 헬스 기구들이 천장 콘크리트를 지지하고 있어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다. 내부는 빛 하나 없는 왕릉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을 거란 두려움이 나를 압박해 왔다.
지하층 출입구 쪽은 붕괴돼 있었다. 샤워실, 화장실을 모두 수색했지만 생존자나 사망자는 없었다. 구조견도 지하층과 건물 외부를 수색했지만 생존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통역사가 주변에 모여 있던 많은 현지 주민에게 지하층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전했다.
1층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2층이 1층이 됐다. 우린 건물을 돌며 무너진 1층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찾았다. 전면에서 작은 틈을 발견했다. 이 틈으로 통로를 개척하며 기어들어 갔다. 내 몸조차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좁은 공간이었다.
식탁, 장롱, 소파 등 가구와 마주했다. 목재라 치우면서 조금씩 이동할 수 있었지만 5m 정도 들어가니 상판 콘크리트가 가로로 길게 막고 있어 더는 수색할 수 없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후 1차 안정화가 돼 있더라도 하중을 받는 물건이나 벽체를 제거하면 다시 붕괴할 위험성이 있다. 더 전진할 수 없는 막다른 곳에서 함께 들어간 동료와 “Kimse yok mu”1)를 외쳤다. 하지만 그 어떤 소리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수색은 그렇게 종료됐다.
다음날 세 번째 신고가 접수됐다. 이번에는 튀르키예 SART2)도 왔다. 함께 수색한 후 생존자를 발견하지 못해 현지 주민들에게 이 상황을 전했다. 그 후로 현지 주민들은 생존자가 있다거나 소리를 들었다는 신고를 하지 않았다.
최종 현장이 정리되고 들어오는 길에 길가에 앉아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봤다. 할아버지 주변으로 현지 주민들이 모여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아마도 그분은 가족 중 누군가가 무너진 건물 어딘가에 있다고 확신해 계속 신고한 게 아닌가 싶었다. 가슴이 아팠지만 더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굴착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울타리 밖을 보니 어제 수색한 건물을 철거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혹시나 철거 중에 생존자를 발견하거나 다른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집중해서 촬영하고 있는데 옆에서 낯익은 한국말이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깜짝 놀랐다. 대사관 관계자를 통해 하타이주 안타키아에는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를 제외하고 한국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한국어를 배운 튀르키예 사람인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대한민국 특전사 디지털 무늬의 정글모를 쓰고 모자 가운데 튀르키예 국기를 부착한 한국 사람이었다.
지진 피해 당시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에 우리 국민 1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인적 피해는 없었다. 지진이 발생한 후 외교부에서는 시리아 국경 인근 지역인 디야르바키르와 샨리우르파, 가지안테프, 킬리스 등에 이미 여행경보 3단계(적색경보)3)를 발령했다.
하타이(안타키아)와 카흐라만마라스, 말라티아, 아디야만, 오스마니예, 아다나 등 6개 주에도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해 우리 여행객들이 위험지역을 방문하지 않도록 안내했다.
여행경보와 특별여행주의보가 발령된 지역에서 출국하지 않거나 안내를 따르지 않았을 때 사고가 발생하면 대사관의 조력을 받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이런 위험지역에 대한민국 국민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촬영을 중단하고 그 청년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청년은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38살이고요. 특전사를 전역하고 제 오랜 꿈인 세계여행을 하고 있어요. 사실 전역하자마자 바로 하고 싶었는데 여행하고 한국에 돌아갔을 때 세상을 보는 눈은 가졌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 집 한 채 없는 자신과 마주하면 허무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전역하고 8년 동안 골프 캐디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한 후에 2022년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했죠.
첫 여행지가 튀르키예였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도착한 이곳에서 따뜻하게 대해 준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보답하고 싶더라고요. 지진 소식을 들었을 때 아르메니아를 여행 중이었는데 도움을 주고 싶어 바로 달려왔어요.
처음 안타키아에 도착해서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숙영지를 방문해 자원봉사하겠다고 했지만 외교부에서 적색경보 지역의 자국민 자원봉사는 허락되지 않는다며 출국을 권고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숙영지 옆 튀르키예 재난ㆍ비상관리 당국에서 운영하는 구호대를 찾아가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하니 반갑게 맞아줘서 무상으로 숙식을 제공받고 있어요”
“하루 일정이 어떻게 돼요?”
“주로 사망자를 옮기거나, 무연고자를 매장하거나, 길거리 쓰레기를 줍거나 하는 허드렛일을 해요. 튀르키예 사람들 정이 많아요. 누구든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러 왔다고 하면 반갑게 맞아줘요”
튀르키예 사람들이 정이 많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민족성을 가졌다는 걸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제 무너진 1층으로 수색하러 들어가는 걸 봤어요. 무너진 건물 아래로 서슴없이 들어가는 걸 보고 있자니 대한민국 소방관이 너무 멋지고 자랑스럽더라고요”
“위험한 곳에 와서 봉사하겠다고 결심한 당신이 더 멋져요”
태극기를 오른팔 어깨에 달고 대한민국을 대표해 튀르키예 지진 피해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해외긴급구호대보다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튀르키예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이 청년이 더 자랑스러웠다. 이런 청년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젊은 날 무언가를 얻기 위해 시작한 세계여행 건강하게 마무리하고 한국에서 다시 만날 일이 있으면 좋겠네요”
짧은 인사를 나눈 후 그는 자리를 떠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헤어진 게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1) 튀르키예어로 Kimse yok mu(킴세 요쿠 무), 여기 누가 없어요? 2) Search and Rescue Team, 탐색구조팀 3) 발령 대상 국가(지역)의 위험 수준에 따라 1~4단계로 구분한다. 3단계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수준의 위험’(출국 권고)
튀르키예 지진 7.8 <119플러스>를 통해 연재되는 ‘튀르키예 지진 7.8’이 동명의 에세이로 출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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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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