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C 방문과 유럽 구조대 운영 체계를 확인하다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9시 하타이 엑스포에 마련된 UCC에서 각국 구조대 회의가 진행된다. 우리 숙영지에서 차량으로 20분 거리였지만 이동하는 데 1시간 이상이 걸렸다. 지진으로 도로가 파괴된 데다가 피난 차량과 구급차로 도로가 혼잡했기 때문이다.
회의에서는 인사락 지침을 전파하고 각국의 구조 활동 성과와 현장 안전 문제 등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정보가 공유됐다. 하타이주에 있는 UCC는 네덜란드 구조대가 구성했다. 네덜란드 구조대는 인사락 헤비 등급을 보유한 국가로 가장 먼저 이곳 하타이에서 수색ㆍ구조업무를 시작한 듯했다.
UCC에서 할당해준 구역별 대표국 구조대는 SCC에서 파견된 연락관들을 구성했다. 이들은 UCC에 함께 근무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UCC는 두 개의 텐트를 연결한 곳을 지휘소로 사용했다. 내부는 LED 등을 설치해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무엇보다 히팅시스템이 잘 돼 있어 춥지 않았다. 텐트 벽에는 각종 상황판과 지도를 걸어 놓고 누구나 쉽게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해뒀다(사망자 인적사항 등 보안이 필요한 부분은 별도로 관리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구조대는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보다 먼저 인사락 헤비 등급을 획득한 유럽의 대표 국가다. 지금까지 수많은 재난지역에 파견돼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구조역량도 높다.
회의를 마치고 텐트 밖으로 나오니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유럽을 대표하는 인사락 가입 국가의 숙영지가 있었다. 네덜란드 구조대는 구조역량만큼 기능별 물자들이 잘 갖춰진 최고의 구조대였다.
재난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과 물자다. 숙달된 구조대원은 재난 현장에 없어선 안 될 존재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물자는 구조에 필요한 장비와 휴식을 취하는 텐트, 먹는 식량 등이다. 이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효율적으로 보내려면 물류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네덜란드 구조대는 이런 물류 시스템이 잘 갖춰진 국가 중 한 곳이었다. 장비는 이동간 망가지지 않도록 튼튼한 철제 상자에 넣었고 색 테이프로 그 상자가 어디에 쓰는 장비인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물류 관리 체계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많은 경험을 가진 구조대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숙영지에 설치된 취침실과 휴게실, 샤워장, 현장 지휘소, 구조견 텐트는 우리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방식이었다. 비유하자면 우린 노숙자, 네덜란드는 호텔 투숙자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튀르키예와 유럽은 육로 통행이 가능해 비행기가 아닌 차량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많은 물류를 한 번에 화물차로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비행기를 이용하는 해외 구조대는 물동량이 제한된다.
비행기에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크기와 무게가 정해져 있어 해외긴급구호대는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자만 가지고 다니다 보니 현장에서나 숙영지에서 아쉬움이 많았다.
취침 텐트 4동을 인접하게 설치하고 한 대의 히터를 가동해 2개의 텐트에 따뜻한 공기를 공급했다.
네덜란드 구조대에 취침 텐트 내부를 구경해도 된다는 승낙을 받았다. 텐트에 들어서니 반바지와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구조대원이 웃으면서 반겨줬다. 우린 매일 추위와 싸우며 잠을 청해야 했는데 그들은 반바지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생활했다.
그 옆 오스트리아 구조대의 취침 텐트도 볼 수 있었는데 넓은 공간에 바닥이 아닌 휴대용 야전 침상에서 휴식하고 있었다. 휴게실 텐트도 별도 설치해 회의를 진행하거나 식사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했다.
우리와 다른 숙영지 모습에 약간은 부러웠지만 우리도 언젠가 이런 물자를 모두 갖추고 해외 출동을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UCC 체계를 이해하고 외국 구조대의 숙영지를 견학할 수 있도록 해외긴급구호대장을 비롯해 물류반과 운영반, 구조반 대원들을 돌아가며 회의에 참석시켰다.
외국 구조대의 경우 구조대원들의 위생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현장 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면 장비를 반납한 후 샤워 텐트에 들어가 작업복을 벗고 샤워를 한다. 샤워를 마치면 반대편 출구에 미리 준비해 둔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취침 텐트나 휴게실을 사용한다.
작업복은 별도의 인원이 세척 장비를 이용해 이물질을 털어 내고 필요하면 세척 후 다시 입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둔다. 이런 시스템은 재난 현장이라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감염병을 예방하고 바이러스를 차단해 대원들의 건강을 지켜줬다.
화학사고 대응 시 구조대원이나 화학물질에 노출된 구조대상자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D-CON1) 개념과 비슷했다.
구조견 텐트도 별도로 설치한다. 내부에 케이지를 넣어 구조견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구조견과 핸들러가 같은 공간에 있으면 구조견이 긴장해서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취사를 할 수 있는 트레일러 시설 또한 갖춰져 있었다.
우린 모든 게 현장 활동에 집중돼 있다면 유럽 구조대는 현장과 숙영지 활동이 완전히 분리돼 있었다. 유럽 구조대 숙영지를 방문하고 받았던 신선한 충격을 잊지 않고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에 적용할 방법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튀르키예 지진 피해 대응을 준비하며 가진 장비나 물자, 여건이 최고라 생각했던 지난 시간을 회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문득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했던 이건희 회장의 말이 떠올랐다. 국제구조대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는 2015년 네팔 카트만두 지진 이후 약 8년간 단 한 번도 파견된 적이 없었다. 우린 그동안 현실에 안주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가 보는 것만 세상인 줄 알았다.
장비의 성능과 기능은 도태돼 있었다. 8년 전엔 최고의 장비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고물이다.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2)라는 고사성어가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아무리 출동이 없어도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번 파견은 여러 해외 구조대를 보면서 앞으로 우리가 준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눈으로 직접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기회가 됐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의 민낯을 외교부 장관에게 보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부터 메모한 내용과 동료들에게 들은 문제점, 발전 방향에 대해 살을 붙여 보고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1) Decontamination(오염 제거) 화학물질, 미생물 또는 방사성 물질을 포함해 물체 또는 영역의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과정. 일반적인 청소와 달리 오염 물질로 인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취하는 특정 조치다. 2) 세상이 아무리 평화롭고 살만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나라가 위태로운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충무공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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