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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특집] 순직 소방영웅을 추모하고, 기념하고, 기록하는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 김종태 사무총장

소방관이던 가족 잃고 달려온 26년… “여전히 부족해 미안합니다”
“유가족 연대로 상처 덜어낼 힐링캠프 지속하지 못해 가장 아쉬워”
“1년 중 현충일만이라도 순직하신 분들을 기억할 환경 조성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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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6/03 [10:00]

[호국보훈의 달 특집] 순직 소방영웅을 추모하고, 기념하고, 기록하는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 김종태 사무총장

소방관이던 가족 잃고 달려온 26년… “여전히 부족해 미안합니다”
“유가족 연대로 상처 덜어낼 힐링캠프 지속하지 못해 가장 아쉬워”
“1년 중 현충일만이라도 순직하신 분들을 기억할 환경 조성되길”

유은영 기자 | 입력 : 2024/06/03 [10:00]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지나온 시간과 역사 속에는 분명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주신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본인의 소임을 다하다 순직하신 소방영웅들을 추모하고, 기념하고, 기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이하 추모기념회)’입니다. 현재 전국 7만명에 가까운 소방공무원 중 이 추모기념회에 기부 등으로 참여하는 인원은 서른 명에 불과합니다. 문득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그들의 순직이 고귀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는 대형사고로 소방관이 하나둘 세상을 등질 때마다 안타까움을 표하며 많은 걸 변화시켜줬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이 밀알이 돼 현재 소방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반짝이는 관심은 국민의 인식에서도, 정부의 관심에서도 빠르게 식어버리곤 합니다. 더군다나 선배를 떠나보낸 후배들조차 그 희생을 아파하면서도 오래 기억을 지속하진 못합니다. 현실적으로 하루하루 전쟁터 같은 재난의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소방관들이 이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에만 몰두할 순 없어서겠죠. 

 

그런데도 추모기념회는 우리 사회와 여러분의 머릿속에 그들이 자리하길 소망하며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소방공무원도 아닌데 26년간 순직소방공무원과 남겨진 가족까지 살뜰히 살피고 있는 김종태 사무총장. 

 

분명 누구보다 치열하게 순직소방공무원을 위해 뛰고 있지만 “우리가 이분들을 제대로 알고 기억할 수 있는 수단이 돼야 하는데 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마음의 빚이다”고 연신 같은 말을 내뱉습니다. 하늘이 유난히도 파랗던 어느 봄날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사단법인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 사무총장 김종태입니다. 추모기념회는 우리나라에서 소방 업무를 수행하다 순직하신 소방관들을 추모하고, 기념하고, 기록하는 사업을 합니다.

 

1998년 엘니뇨 현상으로 전국에 수해가 발생했고 소방관들의 희생이 컸죠. 게다가 IMF로 인한 공공조직 구조조정이 시작됐습니다. 그때 뜻있는 누리꾼들이 주축이 돼 소방대원 감원반대운동과 순직한 소방관들에 대한 추모 사업이 논의되기 시작했어요.

 

2000년에는 ‘119사랑동호회’가 발족되면서 추모기념회의 기틀이 마련됐습니다. 2002년 대한민국 순직소방관 추모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2013년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으며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로 재탄생했죠. 

 

유가족을 포함해 소방공무원, 의용소방대원, 순직소방공무원에 관심 있으신 일반인들이 회원 또는 임원으로 참여해 총 200여 분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다 순직소방공무원에 관심을 두시게 됐나요.

처남이 소방관이었어요. 26살에 특전사 중사로 전역하고 소방서에 들어가 2년간 근무했죠. 구조대에 계시다가 1998년 10월 1일 실종된 여학생들을 찾는 수색 작업 중 순직하셨습니다. 처남인 김기범 소방관과 함께 이국희, 김현철 소방관이 변을 당하셨죠.

 

장례를 치르는 사흘 동안 현충원에 안장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정신이 없는 와중에 그런 얘기가 자꾸 들리니 처음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더라고요. 막연하게 ‘아직 좀 어색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때 현충원이라는 곳에 처음 왔습니다. 당시엔 몇 분 안 계셨어요. 그게 벌써 26년 전이네요. 그 일을 겪으면서 소방관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하는지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됐죠. 

 

그간 추모기념회의 활동이 궁금합니다.

2004년 현충원에서 74명이 모여 처음 추모식을 했습니다. 1999년에 발족해서 2004년까지 준비한 거예요. 어떤 추모 사업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연구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죠. 

 

 

해방 이후 순직소방관 명부 작성과 순직소방관 현충원 안장식 지원, 유가족 힐링캠프, 유가족 생활용품 후원 등을 진행해 왔습니다.

 

한 달에 두 번은 현충원을 찾아와 청소를 합니다. 늘 청결한 상태였으면 좋겠는데 누군가 헌화하고 가면 꽃이 마르기도, 바람 때문에 날리기도 해서 지저분해 지더라고요. 저만 하는 건 아니고 대전 유성소방서 의용소방대도 한 달에 한 번 와서 청소와 정화작업을 해주십니다. 

 

사진이나 기념할 만한 것들을 넣으실 수 있도록 비석 앞에 ‘소방추모함’을 설치하고 순직소방관 초상화 복원ㆍ제작 사업도 하고 있는데요.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들은 유족조차 사진이 없고 신문에만 실려 있거나 품질이 나빠 식별이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유족분들께서 많이들 좋아하시는데요. 그림으로 표현하니 옷을 선택할 수 있고 가르마도 바꿀 수 있어요. 가장 멋진 모습으로 기록하고 싶습니다. 저희에겐 굉장히 중요한 사업입니다. 누가 봐도 ‘여기 이런 분이 계시는구나’를 알 수 있잖아요. 이름 석 자만 있는 것보다 훨씬 친근하게 이해할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정기 추모식입니다. 예전엔 4월에 하다가 지금은 10월 넷째 주 토요일을 순직소방관 추모일, 그 주간을 추모 기간으로 정하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합니다. 추모식이 1년 동안의 행사 정리라고 볼 수 있는데 아직 재정이 많이 없어 추모식만 제대로 하고 나머지 해야 할 문화 활동 등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가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일을 해드리고 잘 모시는 게 제일 중요한 사업인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기억에 남는다기보다 제일 아쉬운 일이 ‘유가족 힐링캠프’입니다. 지금까지 동병상련의 감정을 가진 유가족들이 1박 2일 같이 자면서 시간을 보낼 기회가 두 번 있었어요. 계속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서 이어가질 못했습니다.

 

 

자기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분끼리 손을 잡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어떻게 보면 유가족들한테는 상처를 덜어낼 기회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재정이 충분하지 못해 지속하지 못하고 있는 게 참 많이 아쉽습니다. 재정 문제는 잘 해결이 안 되네요.

 

예전부터 국립대전현충원에 소방공무원 묘역이 있었나요.

지금 소방공무원 묘역으로 지정된 곳은 사실 일반 묘역이었어요. 이후 일반 공헌자 묘역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순직공무원 묘역이었다가 ‘소방공무원 묘역’이 됐습니다. 이름이 네 번 바뀌었어요.

 

2012년에 경기도 송탄에서 두 분이 순직하면서 그때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처음 안장되신 분은 1994년 6월 2일 서울 영등포구 내쇼날플라스틱 공장 화재진압 중 순직하신 허귀범 소방관이십니다.

 

당시 국립묘지 안장을 원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일반 묘역을 설치하고 군인이나 애국지사 등 어느 직군에도 속하지 않는 공무원을 이곳에 안장하기 시작했어요. 허귀범 소방관님도 순직소방관으로서 안장되신 게 아니라 의로운 일을 하다가 사망한 걸 기리며 현충원으로 이장했죠.

 

그래서 이곳에는 경비교도대원 등 다른 직군에 계신 24분이 함께 잠들어 계십니다. 그분들을 빼면 총 172분의 순직소방공무원이 안장돼 있으십니다. 

 

이전엔 위험직무순직자와 현장 근무 중 공상을 입고 퇴직하셔서 돌아가신 분들만 오실 수 있었는데 이제 일반 순직자들까지 함께 모실 수 있어서 과거보다 인원이 많이 늘었죠. 현재 120분 정도의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119플러스> 매거진을 통해서 ‘리멤버 119’라는 코너를 진행하셨잖아요. 지금은 중단된 상태인데 기다리시는 독자분도 꽤 있는 거로 알고 있어요.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유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고 또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1년 정도 연재했었는데 뭔가를 하려면 사람이 움직여야 하고 시간과 돈이 필요하잖아요. 

 

이 일을 하면서 제일 중요한 일이 그런 거예요. 콘텐츠를 만들고 영상화시키고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기념사업이 되고 기억사업이 되는 거죠. 그런데 저희가 민간단체다 보니 한계가 있습니다. 담당자로서는 엄청 안타깝죠. 속상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순직하신 450분 정도의 순직소방관분들에게 왜 스토리가 없겠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더 이분들을 잘 알고 기억할 수 있는 수단이 돼야 하는 데 잘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마음의 빚이에요.

 

순직자를 예우하기 위해 어떤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보시나요.

처음 시작할 때 추모 사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역할을 다 하고 퇴직한 어른들이 모여 별 의미 없이 하는 거로 이해했습니다. 당시 서른 살이어서 추모 사업을 하려는 저를 이해 못 하는 분이 많았죠.

 

또 어떤 훌륭한 일을 했더라도 돌아가시면 빨리 잊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어요. 뒤돌아보지 않고 전진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저흰 그런 생각이 없지만 혹자는 반사회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정부에 대항하는 조직 정도로 생각하시기도 했어요. 

 

우리는 그냥 말 그대로 추모 사업을 하겠다는 거였고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취지였는데 소방 조직에 계신 어른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많았던 거로 기억합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옛날엔 무척 힘들었어요. 심지어 고위직에 계신 분들을 찾아가 설명하면 “이런 얘기를 왜 하냐”며 짜증을 내시기도 했죠.

 

지금은 세월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소방도 그대로고 순직하신 분들도 그대로인데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반드시 바뀌어야죠. 최선을 다해 국민을 섬기면서 자기 역할을 다 하신 분들이니까 우리 사회가 당연히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소방관 사이에서도 추모 기념에 관한 관심이 저조한 실정인데요.

현재 전국에서 서른 분 정도의 소방관이 후원 또는 활동을 하고 계세요. 열심히 전도하듯이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려고 하지만 모르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모르고 열심히 일하시는 게 제일 좋죠. 저희는 저희 나름의 역할이 있고 또 현직에 계신 분들은 그 나름대로 역할이 있으니까요.

 

약간의 서운함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저희가 유가족과 잘 협력해서 해나가고 있다는 걸 직원분들도 안다면 조금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외로운 일을 하신다는 생각이 드네요.

왜 그렇게 느끼죠? 다들 그렇게 얘기하던데 사실 그럴 새가 없어요. 항상 머릿속으로 다음 사업을 생각해요. 예를 들어 어렵긴 했지만 최근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1994년 이전에 순직한 소방공무원도 사망 시점에 관계없이 현충원에 안장할 수 있게 됐잖아요. 그러면서 순직 소방공무원 49명이 현충원에 소급 안장될 수 있게 됐죠. 

 

그분들 생각을 12년 동안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현충원으로 모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소급해서 안장할 수 있을까. 똑같이 재난 현장에서 국민에게 소방서비스를 제공하다 순직하셨는데 기한 때문에 현충원에 오실 수 없었으니까요. 누군가는 혁명이 일어나야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이제 해결돼서 너무 다행이에요. 혼자 한 게 아니니 우리가 했다고 대놓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가장 고마운 일입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추모기념회 설명을 들으며 현충원을 둘러보니 ‘이 비석이 더 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늘 그 생각을 합니다. 과거 4월에 정기 추모식을 할 때 소방안전 기원과 추모 행사를 함께 했습니다. 그때 소방에서 털끝 하나 다치는 분이 없길 소원했는데요. 사실 소방관들이 일하는 현장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쩌면 전쟁터보다 더 치열하게 본인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국민도 지켜야 하잖아요. 그런 사명감으로 활동하고 계시니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비석도 늘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어떤 꿈을 꾸고 계신가요.

자원봉사자들은 생계 활동을 병행해야 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 개인 사업을 하는데 1년에 반은 사업을 하고 반은 추모기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잘 사는 것과 좋은 음식을 포기하고 살아야 해요. 가족들에게 기본적인 것조차 못 챙길 때가 많아 미안한 마음이 크죠.

 

그런데도 지금 하는 활동이 간절해요. 그러나 있어도,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제삼자나 소방관분도 계시겠죠. 오랫동안 활동하고 싶은데 환경은 옛날보다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참여 인원도 저조하고 열기도 떨어지고 있어요. 그럼 결국 단체 운영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거든요. 답답한 마음이 큽니다. 

 

현충원에 계신 분들 모두 열심히 일하셨을 거예요. 그런 걸 잘 기록하고 싶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나름의 슬픔과 그리움 속에서 살지만 그 아픔을 딛고 우리 사회가 성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민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잖아요.

 

현충원까지 오진 않더라도 1년 중 현충일만이라도 나라를 위해 순직하신 분들을 기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FPN TV’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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