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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이야기- Ⅲ

열의 정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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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랩 김훈 | 기사입력 2022/01/20 [10:00]

불의 이야기- Ⅲ

열의 정체는 무엇인가?

리스크랩 김훈 | 입력 : 2022/01/20 [10:00]

인간의 체온은 36.5~36.9℃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사람의 체온은 항상 일정한 게 아니라 오전 6시가 가장 낮고 오후 6시가 가장 높다. 어린이의 체온은 정상 성인보다 조금 높고 노인의 체온은 조금 낮다.

 

인간의 체온이 점점 낮아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35℃가 되면 손놀림이 부자연스러워지면서 걸음걸이가 흔들리고 가벼운 착란 증상이 생긴다. 체온이 더 떨어져 33℃가 되면 의식이 몽롱해지고 발음이 불명확해지며 몸은 가누지 못할 정도로 떨린다. 체온이 32℃까지 떨어지면 근육이 경직되면서 오히려 떨림이 서서히 줄어들지만 호흡량이 크게 줄고 의식이 혼미해진다.

 

체온이 31℃까지 떨어지면 의식장애가 오고 30℃에서는 무의식 상태가 지속되며 29℃에서는 맥박과 호흡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체온이 28℃에 이르면 심폐기능의 정지위험이 커진다. 25℃ 이하로 내려가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하고 20℃ 이하가 되면 심장이 정지한다. 그래서 인간의 몸은 항상 정상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영양분을 태워야만 한다.

 

변온동물인 악어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1년을 살 수 있지만 인간은 두 달 이상 버티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감기에 걸리면 체온이 상승하는데 이는 외부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 인간의 면역기능을 높여주기 위해서다. 체온이 올라가면 감기바이러스의 성장은 억제되고 백혈구의 기능은 활성화된다. 즉 적군은 약해지고 아군은 강해진다. 체온이 상승하면 당장은 불편할지 몰라도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 체온이 1℃ 이상 높아지면 면역력이 5배 증가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몸은 항상 따뜻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조류는 알을 품어야 해서 사람보다 체온이 높다. 닭의 체온은 41.7℃나 된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인간에게 무서운 이유는 닭은 조류 인플루엔자에 걸리면 체온을 높여 바이러스를 무찌를 수 있지만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에 침투하면 사람의 체온은 41℃까지 올라가고 결국 고열로 숨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열의 정체는 무엇일까? 열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꽤 오랜 옛날부터 계속됐다. 고대부터 18세기까지 열은 ‘물질’이라는 설과 ‘운동’이라는 설 두 가지가 공존해왔다. 200년 전까지 유효하게 인정받고 유행했던 이론은 열소 이론(caloric theory)이다.

 

당시 과학자들은 열을 하나의 물질로 생각했고 이를 열소(caloric)라고 했다. 라부아지에도 열소를 하나의 물질로 생각해 그의 원소주기율표 맨 위에 열소를 올려놨을 정도다. 어떤 물질을 태우면 그 속에서 플로지스톤이라는 물질이 빠져나가 재가 된다는 ‘플로지스톤 이론’은 이미 라부아지에에 의해 폐기됐지만 열이 하나의 물질이라는 이론은 18세기 말까지 수백 년 동안 지지를 받았다.

 

당시 과학자들은 열소(caloric)라는 물질이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열소라는 입자는 서로 반발하는 탄력성 있는 소립자의 집합이다.

-열소는 다른 물질의 입자에 강하게 끌려가는데 그 끌어당기는 힘은 물질에 따라 다르다.

-열소는 파괴되지도 만들어지지도 않으며 질량이 보존되듯이 열소도 보존된다.

-열소는 고체에서 액체로, 액체에서 기체로 변할 때 물질 입자와 강하게 결합해서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열소는 매우 가벼워서 보통의 저울로는 질량을 측정할 수 없다.

-열소는 물질의 내부에 있는 무수히 많은 기공을 통해 드나든다.

-열소끼리는 서로 척력이 작용한다.

-뜨거운 물이 빨리 식는 이유도 열소끼리 서로 밀쳐내는 힘으로 인해 공기로 밀쳐지기 때문이다.

 

현대적 사고로는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열기관으로 유명한 사디 카르노도 열소 이론으로 카르노 사이클 열기관을 설명했다. 근대과학을 완성한 위대한 천재 뉴턴조차도 음파의 속도계산을 열소 이론을 통해 수정했을 정도다.

 

열소 이론에 따르면 열소는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열소는 질량이 없어 열소를 얻거나 잃어도 물체의 질량은 변화가 없다. 열소 이론은 영국의 과학자 조셉 블랙(잠열을 발견하고 비열의 개념 정립한 과학자)과 라부아지에로 이어지면서 발전한다. 이들은 열소를 주기율표에 넣고 물질의 상태가 변화하는건 열소와 물질의 분자 사이에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는 거라고 주장했다.

 

플로지스톤 이론을 폐기했던 라부아지에도 온도가 달라지면 물질의 상태가 변하는 게 열소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열소는 물질에 자유롭게 출입하며 분자 간 사이의 간격을 넓혀주기 때문에 열소가 증가하면 분자 간 거리가 멀어진다는 거다.

 

물론 당시 모든 사람이 열소 이론을 받아드렸던 건 아니다. 보일, 프란시스 베이컨과 같은 과학자들은 열의 실체가 열소라는 물질이 아니라 일종의 운동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주장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벤저민 톰슨(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다가 1978년벤저민 톰슨이 등장한다. 벤저민은 대포를 제작하던 중 대포 포신에 구멍을 내기위해 금속을 깎을 때 매우 많은 열이 나는 현상을 발견했다.

 

만약 열소가 유한하게 쇠 속에 들어있는 게 나오는 거라면 한참 지난 후엔 없어져야만 한다.

 

하지만 포신의 구멍을 뚫으면 뚫을수록 열이 더 많이 발생한다. 포신에 구멍을 뚫는 일을 계속한다면 계속 열이 발생할 거다. 열소 이론의 가정에 의하면 열소의 양은 유한해야만 했다.

 

이는 열소 이론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 열은 천공기를 돌려주는 일의 양에 비례해 증가했다. 그는 발생한 열량이 외부에서 한 일의 양에 비례할 뿐이라고 생각하며 열소설을 폐기했고 19세기 열역학에 크게 기여한다.

 

그는 미국인이었지만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 편을 들었고 그의 공로로 럼퍼드 백작이라는 작위를 받게 된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제임스 줄에 의해 열이 일과 동등하다는 게 실험으로 증명됐다. 그의 실험에 의하면 1㎈는 4.16J에 해당했는데 오늘날 열의 일당 량 J=4.184J/cal로 표기하는 걸 보면 깨나 정확한 실험이었다.

 

이제 과학자들은 라부아지에의 열소 이론은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열은 베일 속에 감춰져 있었다. 그러다 열은 일종의 어떤 미지의 에너지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에너지론이 등장한다. 이 에너지론은 당시 막 발아하기 시작한 원자론과 대립각을 이뤘다. 

 

모든 만물이 입자로 구성돼 있다는 원자론은 당시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가설에 불과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브라운 운동을 원자론으로 설명했을 때도 많은 과학자가 이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1908년에 장 바티스트 패랭(1870~1942)이 원자론을 증명하고 나서야 원자론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됐다. 당시 과학계는 에른스트 마하가 주장한 대로 실험과 관찰로 입증되지 않은 건 믿지 않겠다는 풍조가 나타나면서 열에 대한 원자론적 설명은 많은 과학자에게 배척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열에 대한 원자론적 설명인 기체운동론을 주장했던 세 명의 과학자(클라우지우스, 맥스웰, 볼츠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클라우지우스는 기체의 압력과 온도는 입자들 평균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기체운동론을 발표했다. 맥스웰은 클라우지우스의 이론을 입자 중에는 빠른 것도 있고 느린 것도 있어 이를 통계적으로 고려해야 정확한 이론을 세울 수 있다는 속도의 분포까지 고려한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 볼츠만(출처 인류 문명사와 함께 한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통섭 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kbs4547&logNo=220285261545)

 

볼츠만은 클라우지우스와 맥스웰의 생각을 발전시켜 1872년에 입자들의 충돌을 뉴턴 법칙에 적용해 설명하고 맥스웰의 분포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맥스웰-볼츠만 분포를 발표한다. 당시 볼츠만은 다른 과학자들과 지나친 논쟁 끝에 신경쇠약에 걸렸고 1905년 아인슈타인이 원자론을 증명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자살하고 만다.

 

오늘날 우린 열의 본질은 물체의 분자운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걸 안다. 즉 열은 입자들의 운동에너지 때문에 발생한다. 물질 속에 있는 무수히 많은 입자의 운동이 열로 감지되고 온도로 측정된다. 온도를 측정하는 것도 입자들이 온도계 속의 액체들과 충돌해 에너지를 전달하고 그 에너지에 의해 액체 전체의 부피가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걸 눈금으로 읽고 있다.

 

이제 열소론은 폐기됐다. 하지만 열소가 보존된다는 당시의 개념은 어떤 계(system)로 들어온 일이나 열은 그 계 안에 저장된다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살아남게 된다. 이들은 그 계의 원자들이나 분자들의 운동에너지를 증가시키거나 포텐셜 에너지(Potential energy)를 증가시킨다. 계에 흡수된 열은 계의 내부

에너지를 증가시키거나 계 외부로 일을 하게 된다.

 

이제 당시 사람이 생각했던 열소 이론(caloric theory)에서 출발한 열역학은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하게 됐고 현대과학은 이제 양자역학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

ㆍ현대해상 위험관리연구소 수석연구원

ㆍ한국소방정책학회 감사

ㆍ한국화재감식학회 정보이사

ㆍ한국기술혁신평가단 정위원

ㆍ소방청 화재감식 전문자문위원

ㆍ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전문자문위원

ㆍ한국기술사회 4차산업위원회 전문위원

ㆍ미(美)공인 위험관리전문가

ㆍ미(美)공인 화재폭발조사관

ㆍ안전보건전문가(OHSAS, ISO45001)

ㆍ재난관리전문가(ISO22301, 기업재난관리사)

ㆍ기술사(기계안전, 인간공학, 국제)

 


 

 

리스크랩_ 김훈 : firerisk@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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