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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의 동행… 함께 기억하며- Ⅰ

2024년 한국응급의료체계 순직자 추모 자전거 국토 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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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응급의료체계 순직자 추모사업회 | 기사입력 2024/08/01 [10:00]

그들과의 동행… 함께 기억하며- Ⅰ

2024년 한국응급의료체계 순직자 추모 자전거 국토 종주

한국응급의료체계 순직자 추모사업회 | 입력 : 2024/08/01 [10:00]

저희는 이번 한국응급의료체계 순직자 추모 자전거 국토 종주를 기획하고 진행한 ‘한국응급의료체계 순직자 추모사업회’ 운영진입니다. 국내에서 이런 추모 행사가 열린 적이 없어 많은 분이 생소하실 것 같은데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이야기를 들려드리게 됐습니다. 

 

<119플러스>를 통해 이번 행사에 참여한 많은 분이 각자 관점에서 남긴 소중한 후기를 관심 있는 분들과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라이더 S(운영진, 전 구간 라이더)

지난해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주한미군사령부에서 근무하는 한 응급구조사분이 순직자 추모 라이딩 행사를 기획하면서 전국에 뜻이 있는 운영자를 섭외한다는 내용이었다. 고민할 여지 없이 즉시 동참하기로 했다. 

 

이후 우린 마치 ‘드래곤볼’을 모으듯 전국 각지에서 뜻이 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그렇게 몇 달에 걸쳐 주한미군사령부와 해경, 병원, 소방 등 각기 다른 환경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 ‘한국응급의료체계 순직자 추모사업회’가 결성됐다. 우리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전국 각지에서 참가자들이 모였다. 참가자 대부분은 교대 근무자였다. 매주 줌을 통한 온라인 회의를 열어 행사를 기획해 나갔다. 당연히 처음 해보는 일이라 이런저런 변수가 생기고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린 순직자들과 유가족을 위해 포기할 수 없음을 상기하며 현명하게 잘 풀어나갔다.

 

마치 복서가 링 위에 올라가기까지 마룻바닥에서 엄청난 땀을 쏟아내듯 열심히 준비했다. 마침내 순직자 추모 국토 종주의 날이 밝았다.

 

행사 전날, 출발지인 아라 서해갑문 인근 숙소에 도착했다. 행사 계획 후 처음으로 만나는 운영진과 참여자의 서먹한 관계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라포(?)를 형성하려고 했다. 

 

모두가 무사히 종주하길 바라며 행사에 필요한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겼다. 행사의 목적을 잊지 않기 위한 묵념의 시간도 가졌다. 이후 각자의 방으로 돌아와 짐을 마저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내일부터 있을 긴 여정에 대한 기대와 설렘, 우려 때문인지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 순직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함께한다는 뜻으로 목에 건 인식표는 어려운 순간마다 큰 힘이 돼 줬다.

 

2024.05.24.

첫째 날, 대망의 그 날

 

드디어 아침이 밝았고 우리의 1일 차 여정이 시작됐다. 오전 6시에 일어나 가볍게 아침을 먹고 출발하려던 찰나 첫 번째 변수가 생겼다. 스태프가 차량에 자동차 키를 두고 내려 라이더 일부의 출발이 지연돼 버렸다. 초조한 마음에 보험회사로 도움을 요청했다.

 

▲ 국토 종주 시작에 앞서 기념 촬영을 했다.

 

▲ 국토 종주 자전거길 인증센터에 걸어둔 추모 리본

 

일정은 늦어졌지만 서두르진 않았다. ‘행사가 잘 되려고 액땜하나 보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작은 변수가 있었지만 예정보다 조금 늦은 오전 9시. 라이더들의 환호와 함께 아라 서해갑문에서 낙동강 하굿둑까지 633㎞에 이르는 여정이 시작됐다. 

 

맑은 날씨와 시원한 바람까지 우리를 응원해주는 듯했다. 순직자 추모 마음을 담은 인식표와 함께 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동쪽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약 34㎞를 달려 첫 번째 휴식 장소인 여의도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스태프는 힘들었을 라이더들에게 물과 간식을 건넸다. 잠시 휴식한 후 다음 여정을 계속 이어갔다. 한참을 달리던 중 반가운 라이더 한 분이 합류했다. 

 

이번 행사에 많은 도움과 용기를 북돋아 주신 홍석환 을지대학교 교수님이었다. 비록 전 구간을 함께 하진 못했지만 교수님의 응원이 너무나 큰 힘이 됐다. 그리고 마음만큼은 마지막까지 함께였다.

 

약 70㎞를 달려 두 번째 휴식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날이 더우니 시원하게 체력을 끌어올려 줄 초계국수와 함께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다시 힘껏 페달을 밟았다. 

 

▲ 쉼터를 제공해 준 강상119안전센터

 

양평을 지나 이포보, 여주보를 경유해 오늘의 도착지인 일성 남한강 콘도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오늘의 여정을 마치는 행사와 함께 순직자를 기리기 위한 작은 추모식을 했다.

 

1일 차 여정은 매우 뜻깊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날씨가 좋아 자전거 타기에 적합했고 길이 잘 정비돼 있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여의도 인증센터와 양평미술관, 이포보 등 휴식 지점에서의 추모 시간은 순직자들의 희생을 다시금 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종주 첫날이라 모두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도착 후의 성취감과 순직자들을 기렸던 시간 덕분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첫날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라이더 H(전 구간 라이더, 미니벨로)

2024.05.24. 

둘째 날, 잊을 수 없는 이화령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모르겠는데 오전 5시로 맞춰둔 알람이 울렸다. 6시 출발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데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무릎이며, 허리며 다 박살 난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입에서 비명이 절로 나왔다.

 

테이핑을 할 줄 아는 형님에게 등과 허리, 어깨까지 테이핑을 받았다. 마치 몸에 안 맞는 슈트가 보정해 주는 것처럼 통증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어제 말리다 만 젖은 옷을 다시 입고 출발을 서둘렀다.

 

오늘은 44㎞ 라이딩 후 아침을 먹기로 했다. 바나나 몇 개와 생존 수단인 에너지 보충제(일명 약)를 먹으면서 출발했지만 허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출발 전 스태프 형이 한 알씩 제비 새끼 모이 주듯 나눠준 마그네슘 덕분인지 경련은 나지 않았다.

 

출발 전에 서둘러 미니벨로의 평 페달을 큰 거로 바꿔서였을까 어제보다 구름성이 좋아진 게 느껴졌다.

 

앞사람에게 바짝 붙으면 바람이 막아지고 편하다는 걸 알게 되니 앞으로 붙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첫날이 무리였는지, 잠을 제대로 못 자서였는지 페달링에 아무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일명 봉크가 난 것. 앞에서 계속 체크해 주던 태우도, 나도 케이던스가 50 이하로 떨어졌다.

 

“이럴 땐 걷는 게 도움 돼. 

차라리 허리 한 번 펴고 좀 걷자”

 

걷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페달링이 더 나을 것 같았지만 현우 형의 제안에 딱딱한 클릿 슈즈를 신고 걷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그다음 큰 고비를 이겨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걸어가야 하는 ‘동행’이라는 취지에 맞게 우린 서로를 챙기고 있었다. 땡볕을 만나고 난 후에야 첫날 날씨가 좋았다는 걸 실감했다. 가장 긴 거리를 가야 했기에 오전부터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소조령, 이화령… 이렇게 강력한 줄 정말 몰랐다.

 

오르막이 끝이 없었다. 내 미니벨로의 기어는 고작 11단이다. 다른 미니벨로보다는 상급이었지만 앞단이 없어 촘촘하게 기어비를 쓸 수 없었다. 앞서 여러 언덕을 오르면서 형들이 하는 기어 변경 타이밍을 눈에 익히고 따라 했더니 조금은 흉내를 낼 수 있었다.

 

“댄싱할 땐 허리를 펴고 천천히 다리를 펴준다는 

생각으로 해봐. 너무 급하게 하지마”

 

현우 형의 조언대로 한발, 한발 계단을 딛고 올라서듯 페달을 굴렸다. 오르막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 단수를 올리고 꾹꾹 밟다가 다시 낮추기를 반복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오르막은 좌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꾸역꾸역 올라가다 나중엔 화가 났다.

 

‘이게 뭐라고.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다가 안 되니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멈추지 않으면 올라간다. 멈추지 않으면 된다. 계속 저어가자’. 그래도 힘에 부치니 ‘이제 나는 누구다!’라면서 올랐다.

 

‘나는 정 씨 가문 27대손이고 내 아들은 정선우, 정윤우, 나는 대한민국 구급대원이다! 나는 여기에 먼저 가신 분들을 기리기 위해 왔는데 너 따위 언덕에 내가 질 테냐! 어림없는 소리다. 내 등과 어깨에는 그분들이 함께하고 있다! 같이하고 있다! 나는 무한히 그분들의 힘을 받으면서 끝까지 올라갈 거다!’

 

계속 마음속으로 소리치면서 내 목에 건 인식표를 오른손으로 힘껏 움켜잡았다. 이상하게도 힘이 났다. 호흡은 거칠어지는데 어느덧 앞에 가고 있는 전기자전거를 따라잡고 있었다.

 

결국 고난을 통해 나는 성장을 느꼈다. 그리고 목적과 이유를 아는 사람이 됐다. 내가 여기 온 목적, 내가 하려는 행동의 이유와 의미를 말이다.

 

 

감격의 이화령에 오른 후 백두대간을 보고 다시 한번 인식표를 쥐면서 추모 사진을 찍었다. 최근 내 인생에서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나를 강하게 몰아붙이고 그걸 이겨내는 내 모습은 너무도 큰 성취감으로 다가왔다. 이들과 함께 대열에 있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가장 높은 고개를 정복하고 나니 벌써 오늘 하루의 라이딩이 끝난 것 같았다. 자신감이 넘쳤다. ‘아픈 무릎은 그냥 박살 나 버려라’ 하고 페달을 굴렀다. 다들 미니벨로와 나를 칭찬해 줬다. 

 

“같이 가면서 가르쳐주고 이끌어 준 형님들과

동생들 덕분에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겨우 왔어요”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미니벨로로 로드와 대등하게 나가니 좋은 자극제가 됐던 것 같다.

 

해는 길었고 우리는 상주보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샤워할 힘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해내고 서로를 축하했다. 2층 침대로 된 8인실에서 잠깐 잠든 것 같았는데 금세 아침을 맞이했다. 

 

2024.05.22. 

셋째 날, 대구 학회를 향해

정말 눈이 떠지지 않았다. 침대 밑으로, 땅끝으로 꺼져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제 마지막 체력 관리를 안 해서인지 무릎이 미친 듯이 아팠다. 캐내고 싶을 정도의 통증이었다. 테이핑해도, 파스를 뿌려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마치 이미 무릎이 작살난 것 같았다.

 

지리산 산악구조대에서 환자를 업고도 버틴 무릎인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인지 너무 아팠다. 그래도 오늘은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넷째 날 개최되는 한국응급구조학회 참석을 위해 처음 이틀은 거리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대구 행사장으로 들어가야 해서 비교적 주행 거리가 짧았다.

 

처음 국토 종주를 시작할 때 라이딩의 시작과 끝에는 꼭 묵념하기로 약속했었다. 어느 인증센터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가 그 약속을 지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차 하는 마음에 다들 마음을 가다듬고 옷매무시를 정갈히 한 후 대열을 갖춰 고개를 숙였다.

 

 

그 고요함, 고귀함…. 바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며 우리 어깨에 손을 올리는 듯했다. 서로 간격을 두고 서 있었지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개를 들기 싫었다. 그 잠깐의 귀한 고요함 속에서 누군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우린 그렇게 진짜 추모를 하고 있었다.

 

불현듯 생각이 떠올랐다. 할아버지를 뵈러 현충원에 들리면 나올 때마다 꼭 소방 묘역을 한 번 둘러본다. 그곳에 계신 분들의 이름을 한 번씩 읽고 가볍게 묵념한다. 그 순간 그들이 떠올랐다. “영면하소서…. 그리고 우리 모두를 지키소서…” 나직이 말했다.

 

우린 다시 페달을 굴려 응급구조학회가 열릴 대구를 향해 나아갔다.

 

한국응급의료체계 순직자 추모사업회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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