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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실수가 불러온 재앙인가? 안전불감증의 편의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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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0/06/22 [10:00]

[화재조사관 이야기] 실수가 불러온 재앙인가? 안전불감증의 편의주의인가?

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0/06/22 [10:00]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게으름을 멀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이따금 게으름이 주는 단맛에 주의의무를 망각하곤 한다. 때론 게으름이 주는 단맛과 재앙을 맞바꿀 때도 있다. 재난이 닥쳐오기 전 재난 사실과 피해 정도를 안다면 게으름은 존재하지 않을 거다. 그러나 평소 ‘이 정도는 괜찮아!’, ‘이 정도쯤이야’ 하는 안일한 생각에서 오는 결과는 너무도 큰 대가를 치르곤 한다.

 

어느 해 겨울 공동주택 화재

어느 해 한겨울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어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고 재산피해만 발생했다. 전체적인 연소는 훈소 형태에서 유염연소(有炎燃燒)로 진행한 형태로 관찰됐다. 겨울이라 난방을 위해 외부와 면하는 창문은 모두 닫아 놓아서 공기의 유동이 현저하게 적었던 걸로 조사됐다. 공동주택 실내에서 공기가 부족해 무염 연소로 진행된 화재로 외부로 연기나 화염 분출이 목격되지 않았다.

 

관계자 진술과 현장 상황을 살펴라!

신고자는 공동주택 경비근무자였다. 화재 신고도 연기나 불꽃을 보고한 게 아니라 공동주택에 설치된 소방시설, 자동화재탐지설비가 작동해 확인하던 중 공동주택 14층에서 연기가 나는 걸 보고 했다. 경비근무자는 소방당국에 신고 후 14층으로 올라가 출입문을 두드리며 내부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면서 화재 사실을 알리려 했다고 한다. 

 

▲ [사진 1] 출입문


출입문 틀에 형성된 그을림 형태는 출입문이 굳게 닫혔던 것으로 관찰된다. 출입문은 신고를 받고 최초 도착한 소방대가 강제로 개방했다. 이때 출입문 일부가 찌그러지고 손잡이가 파손됐다. 이후 소방대는 공동주택에 설치된 옥내소화전을 활용, 화재를 진압했다.

 

▲ [그림 1] 평면도

 

입구부터 그을린 형태나 화염의 전파 형태를 살펴라!

화재 발생실은 출입문에 중문이 설치돼 있었다. 현관문 안쪽 중문은 살짝 열린 상태였고 화염 전파보단 그을린 형태가 더 많았다. 중문 틀 목재와 유리는 원형으로 중문 내부 상단엔 일부 그을림 형태와 수열에 의한 균열 형태가 관찰됐다. 직접 화염보단 간접 열에 의해 형성된 패턴으로 판단했다. 중문은 미닫이 형태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닫히는 구조다.

 

▲ [사진 2] 중문 주변


평면도에서 확인되듯 출입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작은방이 있다. 방문틀에 형성된 탄화 흔적은 작은방 내부에서 화염이 분출한 형태로 식별됐다.

 

▲ [사진 3] 작은방 출입문


작은방 탄화형태는 방문이 열린 상태에서 중성대가 형성되며 연소한 형태로 판단된다. 문틀에 두 팔을 들어 만세를 부르는 듯한 탄화형태가 나타나 있어 작은방 내부에서 화염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 [사진 4] 작은방 문 연소 패턴


[사진 4]는 [사진 3]의 출입문을 닫고 촬영했다. 작은방 문이 열린 상태에서 연소한 형상으로 살펴지고 출입문 좌측 벽지가 연소한 형태는 마치 액체가 흘러내린 듯한 전형적인 하방 연소 형태다. 상대적으로 작은방 외부는 탄화형태가 많지 않은 것으로 관찰됐다.

 

화재 실 전체를 살펴라!

연소 패턴이 집중되고 출화한 형태가 확실하다고 판단돼도 화재 실 다른 부분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다른 지점에서 연소해 흩뿌려진 불씨로 재발화했을 가능성도 있기에 화재 현장은 속단하면 안 된다. 

 

▲ [사진 5] 거실 통로 연소 형태


[사진 5]는 거실 통로다. 좌측에 현관 출입문이 있고 우측이 [사진 3]의 작은방이다. 주방에서 거실을 바라보고 촬영했다. 주방과 거실 중간의 연소 형태를 살펴보면 천장 벽지는 소실해 떨어져 있다. 좌ㆍ우 벽면은 바닥으로 향할수록 연소 형태가 작게 식별된다. 천장에서 바닥 방향으로 연소한 형태로 관찰됐다.

 

▲ [사진 6] 통로


[사진 6]은 거실에서 주방 쪽으로 촬영한 형태며 거실의 소훼 상태는 작게 관찰된다. 주방 방향 천장은 검게 나타나는 형태로 벽지는 탄화되고 일부는 그을려 있다. 좌ㆍ우측 벽면 하단은 연소 형태가 없고 상단은 그을린 형태나 수열에 의한 탄화형태가 관찰된다. [사진 6] 우측이 출입문이며 좌측이 [사진 3]의 작은방이다. 출입문 앞 종이박스가 원형으로 잔류해 있으며 탄화형태나 그을림 형태는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 [사진 7] 거실


[사진 7]은 거실 중심부에서 출입구 방향의 통로를 촬영한 형태다. 거실 소훼 형태는 타 부분과 비교해 탄화형태나 그을림이 약한 형태로 잔류해 있다. 하단 장식물들은 원형으로 잔류해 있으며 좌측 상단으로 일부 탄화형태가 관찰된다.

 

▲ [사진 8] 거실 천장


거실의 경우 [사진 8]과 같이 거실에서 키우던 화초도 수열 형태가 없고 우물천장 벽지 일부만 소훼한 형태로 관찰된다. 벽면은 살짝 그을린 형태고 탄화형태는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천장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화염의 전파나 수열, 그을린 형태가 거의 나타나지 않은 채 잔류해 있다.

 

거실 천장 부분은 사진 상단 좌측 부분에 일부 탄화한 형태가 관찰되고 우측은 화염 전파가 전혀 없었다. 이러한 형태는 화염과 수열의 방향성을 추정할 수 있다. 즉 [사진 8]만 놓고 봐도 수열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전파한 형태라는 걸 알 수 있다.

 

▲ [사진 9] 주방


평면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화재지점으로 추정되는 작은방에서 주방이 거실보다 가깝다. 작은방 출입문 좌측이 주방이라 주방으로의 연소 확대는 거실 방향보다 쉽게 이뤄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주방 벽면 연소한 패턴은 ‘U’자 형태로 잔류해 있는데 이런 형태는 대부분 두 가지 형태의 증거다. 복사열에 의한 형태나 소락한 화재에 의해 재발화한 경우다. [사진 9]의 형태는 소락한 불티에 의해 재발화한 것으로 사료된다. 벽지가 탄화했음에도 주방엔 특정되는 화점이 없었고 전체적으로 평이하게 소훼된 형태였기 때문이다. 특히 식탁이나 측면의 빨래 건조대 세탁물이 소훼되지 않은 채 잔류한 걸 미뤄볼 때 직접 화염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 [사진 10] 주방과 거실


[사진 10]은 주방에서 거실 방향으로 촬영한 형태다. 거실 방향 천장 소훼 형태가 식별되며 상단에서 하단으로 연소한 흔적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훈소 형태가 식별되며 서서히 진행된 연소 패턴이다.

 

탄화형태를 종합하고 선입견을 버려라!

화재 현장에서 전체적인 소훼 형태를 판단할 때 탄화 방향성과 연소 형태, 잔류한 패턴, 탄화 깊이, 그을린 형태 등을 종합해 발화지점을 추론하고 원인을 발굴해야 한다. 이때도 원인을 미리 생각하고 발굴하는 게 아니다. 선입견에 의해 원인이 왜곡될 수도 있어서다. 

 

▲ [사진 11] 주방 화재

 

예를 들어 [사진 11]은 이 사건과 관계없는 화재 현장이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고 관계자는 외출했었다. 연소 패턴과 단락흔, 빌트인(Built-in) 된 하이라이트가 설치됐다면 언론에서 ‘반려동물이 인덕션 스위치를 켜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도되는 걸 자주 접할 수 있다. 이 경우 선입견이라면 뭐가 있을까? 단락 흔적이 있으니 전기적 요인?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사람은 외출했으니 언론 보도처럼 고양이에 의한 스위치 작동? 고양이가 스위치를 켰다 해도 하이라이트 위에 불에 타는 물건이나 물질이 없었다면 연소하지 않는다. 위 사진과 진술 내용을 종합해 판단한다면 전기적 요인과 반려묘에 의한 화재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진술을 듣고 조사한다면 단락 흔적이 있어도 고양이에 의한 화재부터 의심할 거다. 하지만 물리적 증거인 단락 흔적이 있으니 ‘전기적 요인이야!’ 할 수 있을 거다. 현장을 조사하면서 관계자 진술이나 연소 패턴, 조사관의 주관적 조사 등을 종합해 규명된 원인이 객관성을 가져야 비로소 실체적 진실에 접근한 현장 조사가 된다.

 

연소 형태를 확인하라!

발화지점이 추정된다면 출화 형태와 연소 형태를 비교하고 입증해야 한다. 출화 형태가 입증된다면 현장을 발굴해 화재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사진 3]과 같이 작은방에서 출화한 형태가 관찰됐기 때문에 작은방을 발화지점으로 추정해 연소 형태를 확인했다.

 

▲ [사진 12] 작은방


[사진 12]에서는 침대와 우측벽면의 소훼 상태가 관찰된다. 좌측 부분은 연소 형태가 작게 나타나 있다. 바닥 부분까지 탄화한 형태는 침대 오른쪽 하단 외 다른 부분에선 관찰되지 않았다. 침대 탄화형태가 국부적으로 특정 지점만 깊이 연소한 형태로 잔류했다. 

 

▲ [사진 13] 침대 연소 형태


침대 일부분이 깊이 국부적으로 탄화돼 잔류해 있었다. 통상적인 연소 형태보다 무염 연소가 진행된 형태로 판단됐다. 마치 담배꽁초에 의한 심부 화재처럼 침대 매트리스가 화산의 분화구처럼 깊게 탄화했다. 

 

탄화형태와 원인의 연관성을 찾아라!

탄화한 형태와 발화 원인의 연관성을 찾아야 한다. 처음부터 유염(有炎) 연소가 진행됐다면 깊게 탄화한 형태보다 분열한 흔적이 관찰돼야 하는데 심부가 깊게 탄화되고 일부는 표면만 연소한 형태로 잔류해 있었다. 전형적인 무염 연소 형태였다. 주택 내부에서 무염 연소가 이뤄지는 이유는 대부분 흡연에 의한 화재다. 그러나 작은방 사용자는 아침 출근해 귀가 전이었고 무엇보다 흡연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침대 위 연소 잔류물과 소락물을 하나하나 제거하니 열선이 발굴됐다.

 

▲ [사진 14] 전기 요 열선


침대 집중 탄화지점을 발굴하니 전기 요 열선이 발굴됐다. 열선이 있다고 원인이라 단정할 순 없지만 통전과 켜짐 위치 등을 모두 확인해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사진 15] 매트리스


침대 매트리스가 상당한 깊이로 탄화됐다는 건 무염 연소가 이뤄졌단 증거다. 무염 연소에 의한 심부 화재인데 침대 매트리스나 커버가 무염 연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깊게 탄화된 형태는 매트리스가 ‘라텍스’ 제품이라 쉽게 유염(有炎) 연소하지 않는 재질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15]를 보면 깊게 탄화한 부분에 온도조절기도 탄화돼 모두 소실됐다. 즉 ON, OFF 형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 [사진 16] 전원 플러그

 

전기요 전원 플러그를 확인한 바 벽면 콘센트에 꽂혀 있었다. 전기요나 전기장판 열선에 의한 출화 형태는 연소 형태나 패턴으로 추정은 가능하나 물리적 증거가 현장에 잔류하는 경우는 적다.

 

▲ [사진 17] 탄화지점 확인

 

탄화지점을 확인한 바 이불, 전기요, 열선, 탄화 깊이 등을 종합했다. 침대 매트리스 한 지점이 국부적으로 탄화됐고 발굴된 증거는 전기 요가 유일했다. 잔류한 침대 매트리스는 라텍스 제품으로 확인됐다. 이는 발열하는 전열기와 라텍스를 같이 사용하게 되면 축열에 의해 발열되고 탄화한다. 전기요 사용설명서에 ‘라텍스 제품과 혼용해 사용하지 마십시오’라는 문구가 있다. 이는 전기요와 라텍스 제품을 혼용해 사용하면 축열해 발열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거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 조사내용을 종합하면 공동주택에서 발화된 화재다. 관계자 진술과 최초 목격자의 진술을 참고하고 잔류한 연소 패턴과 현장의 미연소 잔류물, 주염흔, 집중 탄화된 지점 발굴 등으로 발화부를 추정한다.

 

화재장소인 공동주택 14층 내부에 인명이 없었으며 발화지점으로 관찰되는 작은방 내부 침대가 집중 탄화됐다. 침대 위엔 이불과 전기요가 있는 게 관찰되며 전기요 전원은 [사진 16]과 같이 벽면 콘센트에 꽂혀 있었다. 이불 아래 전기요가 있고 그 아래 침대 매트리스가 있으며 침대 매트리스 재질은 라텍스로 관찰됐다. 탄화형태는 훈소에 의해 장시간 탄화한 형태로 식별된다. 상부 탄화 깊이가 얇고 넓게 관찰되는 점은 겨울이라 창문과 출입문 등을 닫아 놓은 상태여서 공기의 유동이 적고 공동주택 내부 대류에 의한 유염(有炎)보다는 무염 화원으로 진행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집중 탄화된 침대 매트리스 중심부에 전기요 열선이 탄화된 형태로 발굴됐고 타 부분에 비해 깊게 소훼돼 침대 매트리스 위가 발화지점으로 추정된다. 화인은 이불 속 전기요 발열에 의한 축열로 봐야 하나 궁극적인 원인은 사용자가 사용이 끝나거나 외출 시 전원을 차단하고 라텍스 제품과 같이 사용하지 말아야 함에도 전기요와 라텍스 매트리스와 같이 사용했기에 인적 부주의라고 할 수 있다. 

 

경기 부천소방서_ 이종인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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