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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잡힐 듯 말듯 아리송한 현장? 무언가 있지만 알 수 없는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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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2/06/20 [09:40]

[화재조사관 이야기] 잡힐 듯 말듯 아리송한 현장? 무언가 있지만 알 수 없는 현장?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2/06/20 [09:40]

미지의 세계를 가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린 대화하다 보면 마치 다녀온 듯한 느낌으로 얘기할 때가 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면서 정확하고 세밀하게 배우는 게 바람직한 자세가 아닌가? 조금 아는 척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 아는 척했던 얘기가 정말 모르는 부분이라면 더 부끄러움이 찾아들지 않을까?

 

합선 흔적이 있다고 조건 없는 전기화재인가, 부주의에 의한 화재인가? 화재조사관은 어떨 땐 망상가처럼 생각하고 어떨 땐 4차원적으로 생각하며 망상과 4차원을 과학이란 현실을 적용해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이다.

 

단순하지만 복잡하고 복잡하지만 명쾌한 결론을 낸다. 그러나 모든 현장에서 명쾌한 답을 찾고 논리를 전개하는 건 아니다. 가끔은 피해자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틀린 소리는 아닌데….

 

“불이 났고 불이 났으면 원인이 있는데 왜 모른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렇다. 화재가 있으면 원인이 있고 원인이 있으니 원인에 대한 결과물이 화재로 나타나는 건데 왜 원인을 못 찾을까? 한번 고민해 본다.

 

화재 현장은 다양하고 각양각색의 연소 패턴과 변색 흔적이 잔류하는데 화재조사관이 모든 화재 원인을 밝힌다는 건 한계가 있다. 화재 현장의 가연물이나 환기 조건, 건축양식, 열원 등 다양한 원인 중 가장 근접한 원인을 찾아 논리적으로 적용한 후 연소 진행 형태를 논하고 객관적인 내용을 정리한 게 보고서다.

 

화재조사관은 화재 현장을 지면 위에 보고서란 이름으로 화재 현장의 형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결론을 추론한다.

 

화재는 기계적 요인이나 전기적 요인, 화학적 요인, 자연적 요인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지만 화재조사관이 모든 학문적 지식을 학습하고 전문가가 되긴 어렵다. 다만 화재 성상이나 연소 흔적을 추적하고 화재 발원지를 찾으려고 애쓴다.

 

그 지점에서 가장 근접한 화재 원인을 발굴하고 원인에 대한 학습, 과학, 논문 등을 고찰한 후 결론을 내린다. 그 원인이 미상일지라도….

 

어느 날 공구상가 화재

어느 해 한 여름 아침에 공구상가에서 발생한 화재다. 관계자들은 출근해 일과를 시작하려 점포 등을 켜고 점포 내 물건을 정리하는데 전등이 꺼져 확인했다. 점포 끝자락의 천막 가건물 상단에서 불길이 보여 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하려다 실패하고 동료 직원들과 함께 대피한 사고다.

 

목격자 진술을 청취하라!

최초 목격자는 화재 발생 점포 직원이다. 두 번째 목격자는 인근 철물점 관계자 오 씨다. 오 씨의 진술은 가건물 천막 지붕 위로 불길이 올라왔다고 했는데 세 번째 목격자 ○○가구 조 씨의 진술도 일치했다. 목격자들이 화재를 바라본 지점은 다르지만 불길이 목격된 지점은 일치했다.

 

화염을 목격한 지점은 각각 발화지점 점포 내, 북쪽과 동쪽, 서쪽과 남쪽이었다. 세 명의 목격자가 발화지점을 포위해서 본 거다. 그렇다면 발화지점은 축소할 수 있다.

 

▲ [사진 1] 화재 현장

 

소방대 도착 시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검은 연기는 온 동네를 뒤덮었다. 화염과 연기가 가득해 화염 전파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양한 공구를 판매하는 점포로 점포 내 수백, 수천 가지의 공구들이 적치돼 있어 발열량도 만만치 않았다.

 

주변으로의 복사열 또한 강하게 나타나 인근 점포와 인근에 주차된 자동차도 연소하는 현상이 목격됐다. 세 명의 목격자가 최초 발화지점이라고 한 곳은 이미 연소해 어느 지점인지를 가늠할 수 없다.

 

건물이 내려다보이는 인근 높은 건물 옥상에서 화염을 목격한 지점을 다시 한번 질문해 정확한 목격 지점을 찾거나 목격자가 목격한 지점의 평면도 그리기, 촬영한 사진을 이용해 화염 목격 지점 표시 등도 발화지점을 찾는 방법 중 하나다.

 

발화지점을 확인하라!

▲ [사진 2] 평면도


평면도를 그리고 세 명의 목격자가 최초 화염을 목격한 지점을 표시하니 모두가 진술한 발화지점이 평면도 상 일치했다.

 

화재 당시 현장에는 선풍 없이 연기가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세 명의 목격자가 발화지점으로 지목한 부분은 이미 화염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발화지점이라 해도 끝까지 모습을 유지할지 알 수 없었다. 공구를 취급하던 상가인 만큼 공구의 소락이나 위치 변경 등 만만치 않은 변수가 작용한다.

 

▲ [사진 3] 연소 현상


진압과정을 확인하라!

화재진압과정을 확인하고 연소 확대 과정을 살펴야 한다.

 

▲ [사진 4] 화재 진압

 

점포 인근에 주택이 있어 주택으로 연소 확대를 저지하고 있다. 발화지점 점포와 인근 점포는 이미 연소해 철골 일부만 남은 채 건물의 형체가 없이 붕괴했다. 연소 확대 저지는 화재로 인한 제2, 3의 피해를 방지하려는 목적이 있고 화재 위험성이 다른 부분으로 전이 되는 걸 막기 위한 방어 전술이다.

 

발화지점에는 각종 공구를 적재했던 철골과 철제선반이 도괴돼 있어 출입 시 대원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 내부 진입은 불가했다. 이미 북쪽을 제외한 부분에서 포위해 연소 확대 저지와 화재 진압을 진행했다.

 

내부 진입이 쉽지 않고 화염이 계속되면서 굴삭기 투입이 결정됐다. 곧장 굴삭기를 이용한 화재 진압이 시작됐다. 진압 측면에서 보면 굴삭기를 이용하는 편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일 수 있으나 화재조사관 입장에서 현장을 본다면 최악의 상황이다. 발굴할 상황이나 증거가 모두 없어지기 때문이다.

 

화재조사관의 고민

굴삭기를 이용해 도괴된 각종 공구와 연소 잔해물을 제거하며 잔불을 정리하고 있다.

 

▲ [사진 5] 잔화 정리

 

이런 현장은 화재조사관으로서 호불호가 갈린다. “화재 현장을 싹 밀어 버리면 조사할 게 없으니 미상이다”, “화재 현장을 밀어 버리니 화재 증거를 어떻게 찾지, 연소 확대 피해자들은 어떻게 손해를 보상받지?” 하는 또 다른 고민에 봉착한다.

 

달리 보면 민원 소재가 모두 일소될 수 있지만 화재조사관은 고뇌에 빠진다. 자칫 잘못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할 수 있다. 원인을 찾을 수 없어 미상이 되면 연소 확대 피해에 대한 부분이 민법 제758조(공작물 등의 점유자, 소유자의 책임)에 의해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달리 보면 조사할 현장이 없으니 알 수 없어 미상이다.

 

하지만 화재 현장이 있고 목격자가 일관되게 화재지점을 진술하는 상황에서 미상의 원인인들 화재조사관의 고민이 줄거나 민원이 잦아드는 건 아니다.

 

화재조사관으로서 화재 원인을 ‘미상’으로 적어야 하는 보고서가 가장 애를 먹인다. 화재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화재 원인 분류, 즉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있는 열원을 모두 찾아 기록해야 하고 왜 규명하지 못했는지 이유가 설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미상의 원인으로 결론짓는 화재 현장 조사보고서가 가장 어렵다.

 

목격자 목격 지점을 확인하라!

목격자들에게 따로따로 협조를 구해 인근 건물 옥상에서 화재 점포를 보면서 목격 지점을 확인한다.

 

▲ [사진 6] 목격자 화염 목격 지점

 

관계자 오 씨, 목격자 1 오 씨, 목격자 2 조 씨가 진술한 화재지점은 [사진 6] 적색 원으로 표시한 지점으로 세 명의 진술이 일치했다. 사진처럼 발화지점까지 굴삭기가 접근해 내부 구조물을 옮기며 잔불을 정리했다.

 

▲ [사진 7] 발화지점 정리


발화지점을 굴삭기로 뒤집어가며 잔화 정리를 했다. 원인이 모두 유실되는 과정이다. 굴삭기를 이용하지 않았어도 현장에 철재 구조물을 제거하고 화재 원인을 찾긴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철재가 만곡되고 도괴돼 있다면 발굴이 녹록지 않다. 내부 화염으로 인해 철골 구조물과 내부 적치물이 만곡되고 소락돼 뒤얽혀 있다면 화재 원인 규명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 같은 화재 현장을 화재조사관이 발굴한다면 시간도 많이 지체된다. 그렇다고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해 추정되는 발화지점을 보존한 채 잔화 정리를 한다면 잔화 정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발화지점을 확인하라!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실오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발화지점을 확인해 열원과 관계된 일말의 증거라도 찾으려 했다.

 

▲ [사진 8] 발화지점


굴삭기를 이용하지 않았어도 발화지점 발굴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철제구조물이 있어 화재조사관 개인의 힘으로 원인을 발굴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무언가 찾으려고 시도는 해봤지만 화재 원인과 관련한 그 무엇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니 찾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발화지점에 잔류한 증거물은 없지만 발화지점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추론할 수 있다. 관계자 입회하에 현장의 구조물을 확인했다.

 

▲ [사진 9] 탄화 잔류물


탄화 잔류물을 토대로 위치를 확인했다. [사진 9]를 보면 좌측에는 건물 북서쪽에 있던 목재를 모아놓았다. 사진 중앙 오른쪽은 발화지점에 있던 앵글 선반이다.

 

앵글은 화염에 노출 시간이 길었는지, 화염 하중이 크게 있었는지 군청색으로 변해 있었다. 아마도 장시간 화염에 노출됐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발화지점은 목격자 진술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지만 화재 원인 규명은 할 수 없었다.

 

주변 연소 확대 부분을 확인하라!

▲ [사진 10] 인근 연소 확대


인근 건물로 연소 확대한 형상이다. 정면은 주택이었고 왼쪽 면은 어린이집이 있어 자칫 연소 확대 저지에 실패했더라면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 [사진 11] 발화지점의 잔류물

 

발화지점에는 철재 더미만 잔류해 있었다. 다른 물품은 화재로 인해 소실됐다. 이에 따라 연소 확대가 저지됐고 다른 한편으론 샌드위치 패널이 연소 확대 화염 일부를 방어해 준 듯하다.

 

샌드위치 패널은 수직으로 연소 확대를 저지할 수 없지만 수평으로의 화염전파는 막을 수 있다. 도괴되거나 붕괴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압 주수가 스며들지 않듯이 화염 역시 외부로 전파되지 않는다.

 

이 현장에서는 여러 원인을 추론할 수 있지만 단정할 수 없다. 자연적 요인은 아침 시간에 발생한 화재로 가능성이 작다. 화학적 요인은 각종 공구류와 페인트, 경화제 등을 진열해 놨으나 소포장 단품으로 교반이나 반응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화재로 인해 수익 발생보다 손해 볼 부분이 현저하게 많고 주변으로 연소 확대 피해가 우려되는 점,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점으로 볼 때 방화 가능성도 작아 보였다. 전기적 요인의 가능성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현장이었다.

 

영업을 시작하려던 중 전등이 꺼져 확인하다 천막 가건물 상단에서 불길이 보였다고 최초 목격자가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볼 때 전등이 소등되고 불길이 보였다는 건 전기적 이상이 발생했다는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으나 증거가 없는 상황이기에 단정할 수 없었다.

 

전기를 배제하고 생각한다면 천막 천장에서 불이 날 수 있는 건? 인근 건물에서 투척한 담배꽁초에 의한 가능성을 고려해 본다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 [사진 12] 현장 전경


전체적인 조사내용을 기록하라!

공구상가에서 발화된 화재로 관계자 진술과 최초 목격자 진술을 참고해 잔류 된 연소 패턴, 현장의 위치 변경 없는 잔류물, 적산화 현상 등을 확인하고 발화지점을 추정했지만 정확하게 논단하긴 어려울 것으로 생각됐다.

 

목격자 오 씨에 의하면 오전 7시 30분께 출근해 영업 준비 중 오전 9시 10분께 갑자기 전등이 꺼져 확인하다가 점포 내 상부에서 불길이 보였다. 곧장 소화기로 진압하려 했으나 순식간에 연소 확대돼 밖으로 대피했다고 진술했다.

 

발화 장소인 공구상가는 샌드위치 건물로 측면을 철골 천막 조로 축조했다. 공구상가 샌드위치 패널과 철골이 심하게 만곡ㆍ도괴됐고 내부에 진열된 제품이나 물품이 소실돼 건물 전체가 붕괴했으며 잔화 정리를 위해 굴삭기를 이용했다. 점포 내 진열장과 철제 제품을 뒤집어가며 잔화 정리해 제품의 위치가 이동됐고 일부는 한곳으로 모아 쌓아 놓은 상태다.

 

다른 목격자 오 씨와 건물 옆 가구점 직원 조 씨가 목격했다는 발화지점이 최초 목격자 오 씨의 진술과 일치한다. 최초 목격자 오 씨가 일관되게 천막 천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 점과 목격자 1 오 씨와 목격자 2 조 씨가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발화지점은 천장으로 추정된다.

 

샌드위치 패널과 천막이 완전히 소실돼 방향성이 없는 데다가 만곡되고 붕괴해 있었다. 철재 구조물 또한 만곡된 상태로 도괴돼 있고 굴삭기를 이용, 잔화 정리해 발화지점의 보존이나 증거물 발굴이 없어 화염 방향도 논단할 수 없는 화재 현장이다.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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