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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간의 세월호 이야기-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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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119특수구조단 한정민 | 기사입력 2023/10/20 [10:00]

6개월간의 세월호 이야기- Ⅱ

서울119특수구조단 한정민 | 입력 : 2023/10/20 [10:00]

<지난 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누군가에겐 평생 가슴에 한으로 남을 날이고 대부분 사람의 기억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 잊힐 날이다. 어떤 이들은 이날의 사고를 들먹인다고 불평한다. 영민한 건지, 얍삽한 건지 모르는 누군가는 이날을 이용한다. 

 

이날은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날이다. 잠정적으로 476명이 탑승했는데 172명만 구조됐다. 나머지 299명은 사망했고 다섯 명은 끝내 찾지 못해 영구 실종으로 남았다. 내겐 구조대원으로서 마지막 수난구조 임무였고 삶의 전환점이 됐다. 잊고 싶지만 내 기억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날이다.

 

구조 출동

근무 교대 점검을 끝내고 직원들과 사무실에 있었다. 상시 출동하는 일선 소방서와 달라서 출동에 관한 긴장감은 덜하다. 당일 업무와 훈련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오전 9시 20분쯤 TV에서 사고 관련 뉴스 속보가 나온다 해서 TV 전원을 켜고 YTN으로 채널을 맞췄다. 

 

400명 이상이 탑승한 세월호가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중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학생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400명 이상이라면 대형 재난 사고다. 

 

해양사고는 해양경찰 관할구역이다. 소방이 구조 출동을 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사고가 나면 안 되지만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어떤 구조대원이라도 현장에 가고 싶어 한다.

 

그게 구조대원으로서의 본능이고 욕심이다. 물론 공명심도 있다. 특히 수난구조 관련 사고는 내가 잘하고 싶고 관심을 두는 분야다. 출동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직원들과 우리가 현장에 있다면 어떻게 구조를 할 건가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러던 오전 9시 32분 출동지령이 내려왔다. 이제 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구조 장비는 이송수단과 현장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현장으로 이동할 건지 알아야 한다.

 

당시 중앙119구조본부는 경기도 남양주 별내면에 위치해 있었다. 사고 현장은 진도보다 더 남쪽이다. 차로 진도까지 다섯 시간은 더 걸린다. 거기서 보트를 준비하고 현장으로 이동하다 보면 모든 상황은 끝난다. 

 

오전 9시 45분 신속 기동팀을 구성해 헬기로 출동하라는 지령이 다시 내려왔다. 중앙119구조본부는 유로콥터 사 EC225 LP 기종의 다목적 헬기를 보유하고 있다. 승무원을 포함해 28명이 탑승할 수 있다. 

 

▲ [사진 1] 휴대용 잠수장비(Rapid system, 출처 www.zeagle.com)

하지만 인원이 많이 타면 장비를 그만큼 탑재하지 못하므로 수난구조반 직원들을 포함해 12명만 먼저 출동하기로 했다.

 

시간이 모든 걸 좌우하기 때문에 장비를 급하게 챙겼다. 아직 선체가 가라앉기 전이라 잠수장비보다는 수상구조장비와 휴대용 잠수장비 위주로 준비했다. 

 

사고 현장에서 바로 바다에 입수해 구조 활동을 할 계획이다. 우리가 가는 동안 선체가 많이 잠기면 휴대용 잠수장비를 착용하고 입수하자고 직원들과 얘기했다. 

 

장비를 준비하면서 팀장님과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팀장님은 “고무보트와 모터를 갖고 가야 한다”고 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보트가 있으면 좋다. 하지만 보트를 탑재하면 헬기가 육상에 착륙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현장까지 이동해야 한다. 그럼 헬기에서 바로 입수해 구조 활동을 하려는 계획이 틀어진다.

 

보트를 헬기에 탑재하는 대신에 그만큼 구조대원 인원도 빼야 한다. 모든 게 맞지 않는다고 설득해 원래 계획대로 하기로 했다. 

 

오전 9시 55분에 우리가 탄 3호 헬기, 5분 뒤 2호 헬기가 이륙했다. 복장은 급류구조용 웻 슈트에 구명 재킷을 착용했다. 웻 슈트와 구명 재킷을 착용해 4월이지만 헬기 안은 더워 땀이 났다. 

 

▲ [사진 2] 출동 당시 헬기 내 필자

 

배가 침몰하는 상황이라 구조 잠수를 할 수밖에 없다. 구조장비와 다목적 구조 보트 두 척을 육상으로 이동하는 팀에서 준비했다. 일정하게 들리는 헬기 엔진과 로터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평소 같았으면 졸았을 거다. 하지만 이날은 생각할 게 많아서인지 졸음이 쏟아지지 않았다. 

 

승선자 명부를 확보하고 오전 10시 15분께 해경으로부터 출동상황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다. 기장님이 헬기 내 무전으로 승선자는 477명인데 선원 26, 여객 승선 인원은 451명이라고 알려줬다. 나중에 최종 승선 인원은 476명으로 확인됐다.

 

‘해경이 구조작업 중이라는데 얼마나 구조했을까?’, ‘현재 세월호는 어떻게 됐을까?’ 구조 활동은 정확한 구조 환경 정보가 중요한데 승선 인원 정도의 정보만 들어와 다른 상황은 현장에 가야만 알 수 있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는 동안에 중간 급유를 위해 광주 공항에 도착했고 오전 11시 40분 다시 사고 현장으로 이륙했다. 

 

아쉬운 회항

이제 현장에 가까워진다. 아직 완전히 침몰하지 않은 세월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때가 온 건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대원들이 바다로 입수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갑자기 기장님이 헬기의 기수를 돌려야 한다고 했다. 기내에는 “해경에서 전원 구조했으니 사고 현장 상공으로 진입 불허”라는 무전이 흘러나왔다.

 

이 상황에 대해선 세월호 국정감사 때 논란이 됐다. 해경과의 무전 녹취록에는 “관매도에서 대기하라. 구조상황이 있으면 요청하겠다”, “상황 종료됐으니 할 임무가 없다”, “현장통제는 우리가 하고 있으니 들어오지 말라”, “사고 현장에 항공기가 밀집해 더는 헬기가 불필요하다”라고 한 것으로 기록됐다.

 

▲ [사진 4] 관매도 방파제에 착륙한 헬기와 필자

 

헬기는 관매도로 기수를 돌렸고 방파제 위쪽에 착륙했다. 기장님이며 구조대원들 모두가 한순간에 긴장이 사라졌다. 우리끼리 서로 마주 보며 “400명이 넘는 인원을 어떻게 구조했을까? 해경의 구조 능력이 뛰어나다. 구조한 직원들은 다 특진감이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다시 헬기를 요청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긴장이 풀려 그런지 허기가 느껴졌다. 직원들은 배고프니 짜장면이라도 먹자고 해 음식점을 알아보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걱정하지 마. 전원 구조됐대” 

 

“안 그래도 TV에서 속보로 나오더라”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 구조는 잘못된 거고 구조를 못 한 인원이 300여 명이 넘는다”는 무전이 급하게 들어왔다.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직원들은 헬기에서 내려 하던 모든 걸 중지하고 급하게 다시 탑승했다.

 

헬기 내 긴장감의 게이지는 급상승했고 직원들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자고 다짐했다. 기장님과 호이스트로 내려갈 건지, 바로 바닷물로 입수할 건지는 상황보고 결정하자고 의견을 나눴다. 

 

헬기는 다시 현장으로 이륙했다. 하지만 우린 다시 팽목항으로 회항할 수밖에 없었다. 전원 구조 오보라는 무전을 동시에 보내 주변 헬기가 다 현장으로 이동하면서 상공에 몰렸던 탓이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총 25대의 헬기가 현장 상공에 있었다. 

 

그렇게 우린 현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바다가 아닌 팽목항을 걸어 내려와야 했다. 이제 그다음 구조 활동을 계획해야 한다.

 

 


독자들과 수난구조에 관한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 사건ㆍ사례 위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자 한다. 만일 수난구조 방법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e-mail : sdvteam@naver.com facebook : facebook.com/chongmin.han로 연락하면 된다.

 

서울119특수구조단_ 한정민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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