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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07.

역지사지 119 신고자 마음 공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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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소방서 이숙진 | 기사입력 2024/02/01 [13:30]

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07.

역지사지 119 신고자 마음 공감하기

경기 파주소방서 이숙진 | 입력 : 2024/02/01 [13:30]

상황실 근무자의 업무는 대표적으로 119 신고 전화 외에 화재 출동 시 차량 관제와 현장 지원이 있다. 구조ㆍ구급 현장출동대 편성과 운영에 대한 사항, 각종 현장 활동 지원업무도 한다. 소방의 두뇌, 즉 재난 현장 컨트롤 타워인 셈이다.

 

상황실에 근무했던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화는 “새벽에 본인이 주차한 차를 찾으러 주차타워에 들어갔다 잠이 들었는데 주변이 모두 깜깜하고 현재 위치를 모르겠다”는 119 신고였다. 신고자는 “차 안에서 잠들었다 깨어 나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며 본인 위치나 주변 설명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만약 신고자가 말하는 대로 주차타워가 아니라 어딘가 고립됐거나 주차타워 내에 갇힌 거라면 무섭고 힘들 뿐 아니라 긴급한 상황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119 신고 접수자로서 신고자의 위치를 전화로만 파악하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A 소방서 구조대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

 

“주차타워 안에 있는 것 같은데 

전혀 본인의 위치를 파악 못 하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저희가 신고자와 통화하며 출동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출동대에 줄 수 있는 정보가 신고자 전화번호밖에 없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출동 지령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구조대원들이 직접 출동해서 확인해 보겠다고 하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애매한 출동의 경우 보내는 입장에서도 미안한데 흔쾌히, 그것도 취약 시간대에 나가주는 구조대가 그 순간 구세주 같았다. 

 

잠시 후 “구조대상자 구조완료”라는 무전이 들어 왔다. 

 

“어떻게 찾았어요?” 

“영상통화하면서 주변을 유추해 찾아갔습니다”

 

주변을 보고 건물을 유추해서 고립된 건물주차장을 찾아갔다는 구조대가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소방관들이 슈퍼맨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B 소방서 관할에는 야간에 술만 드시면 부츠를 벗겨달라는 분이 계셨다. 정확하게 두 번이나 그 신고를 내가 받았다. 신고자 신발을 벗겨 주러 구조대가 출동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신고 당시 술을 드셨고 신발을 벗겨달라는 게 어딘가 발이 끼어있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스쳤다. 신고자가 본인의 상황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전화로만 정확한 현장 상황을 유추해 내긴 매우 어렵다. 이번에도 미안하니 전화로 문의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신고자가 술을 드신 것 같은데 

자꾸 발이 안 빠진다고 하네요. 신발에서 안 빠진다는 건지 

아니면 다른 연유가 있는지 소통이 잘 되질 않습니다. 

현장 확인 후 병원 진료가 필요하면 연락 주실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저희가 나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애매한 경우 사실 어느 소방서 구조대에 부탁해도 그들은 참 쿨하다. ‘일단 확인해보겠다’가 정답처럼 나온다. 보내는 입장에서 매우 미안하고 애매한 상황인데도 받아주는 구조대의 반응이 무척이나 고마울 수밖에 없다.

 

신고 건이 종료되고 정확히 상황을 확인해 보니 “흔쾌히 나가서 쿨하게 만취여성의 롱부츠를 벗겨드리고 왔다”고 했다.

 

역시 신발이 안 벗겨진 게 맞았고 전화를 받고 불안해 출동을 보낸 게 여간 민망했다. 

 

‘내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만 더 명확하게 상황을 파악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혹여라도 단순하게 만취자 요청이 아닌 그 외 다른 상황으로 119에 신고했으나 정확하게 다 표현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어떡할까?’ 하는 1%의 걱정에 구조대원 또는 구급대원들은 현장으로 출동한다.

 

상황실에서는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미심쩍은 건들을 무시해 버릴 수가 없다. 솔직히 이런 건은 직접 가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직원들에게 지령을 내리기도 애매한 상황에 확인을 안 해볼 순 없고 그럴 때 미심쩍으나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 하며 이해하고 따라주는 동료들에게 무한 감사를 표한다. 단순 민원에 말도 안 되는 요청들로 짜증날 법도 한데 그래도 일이라 생각하고 출동해 주신 구조대원분들이 참 고맙다. 

 

이렇게 전화만으로는 정확한 현장 상황을 알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출동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출동 지령을 하는 나도 이런 상황이 미치도록 민망하다. 그러나 눈으로 보지 못한 현장을 정확하게 전화상으로 평가하기란 분명 어려움이 있다.

 

C 소방서의 경우 신고자가 119로 전화해서 소리만 한참을 지르다 전활 끊었다. 아무리 녹취를 돌려 여러 번 다시 들어 봐도 무슨 신고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은 상황이 안 좋을 거로 추측하고 구급차를 보냈다. 물론 주소 파악이 안 됐으니 기지국 값을 바탕으로 인근 지역을 찍어 출동을 보내고 나서 계속 마음이 찜찜했다. 소리만 지르고 끊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전화하니 받지 않았다. 

 

추가 출동대로 펌프 차량 한 대를 더 보냈다. 보내면서 딱히 구급이라 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심정지도 아닌 것 같아 추가 출동 지령을 하면서 매우 곤란했다. 결국 현장에 도착해보니 차량 화재로 밝혀졌다.

 

추가 출동차로 화재진압 차량을 보낸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때 구급차만 두 대를 보냈다면 혹은 구급차만 보내고 기다렸다면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

 

가장 흔하게 119로 들어오는 신고는 동물 관련 신고다. 동물 관련 신고는 정말 마음이 아프다. 내가 일반 시민이라면 나 또한 불쌍한 동물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할 거다.

 

신고는 나무 위 새집에서 어린 새끼 참새가 떨어졌는데 다시 새집으로 올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역시 말도 안 되는 출동이지만 사전 양해를 구하고 출동 차량을 보내 무사히 참새를 나무 위 집 으로 올려 줬다. 

 

신고하는 분은 본인이 해결할 수 없고 어딘가로는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그때 생각난 게 119였을 테다. 사실 119는 화재나 구조, 구급 신고가 우선이지만 일반적인 생활 민원 건도 무시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살면서 가장 난처한 순간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119구나’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모든 사람이 각종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나 119였다. 

 

상황실에서 신고 전화를 받다 보면 정말 황당하고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원칙적으론 출동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고 현장에 도와주러 간 직원을 아무 이유 없이 때리고 욕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20년 전 구급 현장 활동을 했던 그때나 지금이나 맞는 소방관은 여전히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소방관을 폭행하는 시민이 아직도 있다. 시민은 왜 소방관에게 화풀이할까? 상황실 내 근무하는 자리에 좋아하는 관용 문구를 붙여두고 매일 출근하면 보면서 신고 전화를 받았다.

 

역지사지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한다’는 뜻으로 한자사전에는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이라고 풀이돼 있다. 전화를 받는 마음가짐을 역지사지로 하겠단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이 다짐은 상황실에 근무하며 큰 도움이 됐다. 항상 신고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현재 처한 상황을 상상해 봤다. 

 

그리고 얻은 결론이 119에 전화할 때 신고자는 살면서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신고자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당황스럽고 멘탈이 산산 조각난 상황에서 신고하기 때문에 그들은 일반적이지 않다.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안정적인 환경의 내가 ‘상대는 일반적이지 않다고 받아들인 후 접근하면 화가 나거나 서운한 상황이 줄어들 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를 내거나, 욕을 하거나, 술주정을 하거나, 무례하게 굴어도 다 이해가 됐다. 물론 그 순간 화도 나고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혼자 욕도 하지만 ‘지금 전화하는 신고자는 최악의 상황이다’고 생각하면 모든 게 이해됐다.

 

가장 행복했던 건 소방조직에서 어떤 일을 해도 ‘남자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따라다녔는데 상황실에서 신고 전화를 받는 동안은 남자와 다름 없이 남자보다 더 잘하기도 하는, 소방조직 내에서 한 사람 몫을 제대로 해내는 그런 일이라 자존감이 올라갔다는 점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행복하고, 편하고, 좋은 순간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1년 5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내근으로 회기됐다. 4조 2교대를 마음껏 즐기고 싶었는데 내근하고 싶어 할 땐 그렇게 가기가 어렵더니 교대근무가 너무 좋았던 순간 다시 내근으로 가게 됐다.

 

‘죽자고 하면 살고, 살자고 하면 죽는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여기까지가 끝이다’라고 생각한 순간 새로운 문이 열리니 삶은 참 재미있는 것 같다. 이렇게 내 인생에 2막인 소담으로서의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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