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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18.

붉은색 안경을 끼고 보면 흰색도 붉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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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소방서 이숙진 | 기사입력 2025/01/13 [10:30]

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18.

붉은색 안경을 끼고 보면 흰색도 붉게 보인다

경기 파주소방서 이숙진 | 입력 : 2025/01/13 [10:30]

사람들은 매일 매 순간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주관적으로 평가하며 살아간다. 내 기준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그걸 남들과 나눈다.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평가하고 말로 전달하곤 한다.

 

“워낙 일을 벌이는 걸 싫어하는 팀장님이긴 한데 뭐 좀 해보려고 하면 싫어하세요. 그리고 선입견이 있는 건지 절 싫어하는 느낌이 드는데 어떻게 잘 지낼 수가 있을까요?”

 

우선 결론부터 얘기하면 관계가 좋아질 확률은 매우 낮다. 이미 갖고 있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지울 방법도 없지만 긍정적인 평가로 바꾸려면 몇 배의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게다가 노력과 정성을 들인다 해도 효과가 없을 수 있다. 최악의 경우 관계가 더 나빠지기도 한다. 

 

우린 동료가 아닌 상하 관계에서 성격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어려움에 봉착하곤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관계를 개선해 보고자 하겠지만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포기할 순 없으니 노력은 하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너무 실망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할 수 없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미워하는 것도 아니란 것만 알면 된다. 그리고 업무는 관리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맞춰갈 수밖에 없다. 어차피 결재권자의 의도와 다르게 업무를 처리할 순 없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더는 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 같고 업무 성향도 맞지 않는다면 그 시기가 지나가길 기다리거나 차선책을 찾아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도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 순간, 순간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최선을 선택하는 게 답이다. 

 

“팀장님과 말이 전혀 안 통해요. 늘 업무를 일일이 다 설명해 줘야 하고, 다 알려줘도 결과적으론 다른 소리를 하고, 전혀 다른 업무로 진행을 하셔서 정말 어떻게 맞춰야 할지 모르겠어요. 중요한 업무는 결정을 전혀 안 해주는데 어떤 업무는 상대적으로 엄청 열심히 하려 하셔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직원들이 어려워하는 팀장 유형이 여럿인데 사실 이 팀장은 상상 그 이상이긴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은 어떻게 20년 넘게 버텼을까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 팀장이 고수 같이 느껴졌다. 

 

팀장이 일을 쳐내지 못하고 업무능력이 없다 보니 최고 관리자로서는 업무 효율성을 위해 팀원을 능력자로 배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작 팀장은 업무가 수월해지고 팀원들은 지쳐 나가떨어질 수 있다. 

 

‘어쩜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고 ‘소방관이라 버티지 사기업 같았으면 벌써 잘렸겠다’ 싶지만 우리 조직에서는 어떻게든 잘들 안고 간다. 팀장이 무능하면 팀원이 유능해서 어떻게든 업무가 돌아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결국 이 직원의 고민에는 방법이 없다. 상사를 이길 직원이 없고 상사를 고칠 수도 없다. 정신건강을 위해 “도망가”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

 

사람 대다수가 문제임을 인지하고 어렵다는 걸 알지만 현실에선 딱히 방법이 없다. 이미 ‘일반적이지 않다’고 다수에게 평가됐다면, 같이 근무한 동료들 대다수 경험치에 의해 상당히 일반적으로 접근이 어렵다고 판단됐다면, 심지어 그 사람이 내 상사라면 무조건 피하는 게 답이다.

 

옛말에 ‘달걀로 바위 치기’처럼 세상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게다가 조직은 10%가 90%를 이끌어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다가 나를 평가한 자료를 보게 됐는데 매우 충격을 받았어요. 사실이 아닌 것들이 많았고 어떤 건 내가 고민이라고 털어놓은 게 이상하게 와전돼 내가 문제인 것처럼 적혀있기도 했어요. ‘안 봤으면 좋았겠다’란 생각도 들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었지만 뒤로는 저런 생각을 하고 저렇게 말하고 다녔구나 싶으니 온 세상이 다 싫어지더라고요. 자살 충동을 그때 느꼈어요”

 

직원평가라는 게 징계나 물의를 빚은 일들 말고는 모두가 주관적이고 어느 한두 사람의 의견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그런 자료를 “여론이고 주변 평가다”라고 하는 건 위험하다. 물론 여론이란 게 허무맹랑한 건 아니라 100% 허구에서 시작되진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 의견이라고 판단하려면 객관적인 설문이나 데이터가 있어야 신뢰가 생긴다. 일부 사람의 얘기가 전체 의견처럼 여론이 형성되는 건 매우 위험하다. 한 사람의 명성과 인생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기사만 봐도 이슈가 된 기사가 정정 보도돼도 사람들은 초기 이슈화된 기사만 기억한다. 사실이 아니었다고 정정 보도를 한들 한번 기억된 정보는 잘 변경되지 않는다. 따라서 쉽사리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진 않는다. 

 

억울하지만 정정한다 해도 이미 각인된 사람들의 기억까지 바꿀 순 없다. 그래서 여론이나 직원을 평가하는 자료를 만들 땐 매우 신중해야 한다. 누가 봐도 객관적인 자료여야만 누군가의 명예를 지켜줄 수 있다. 

 

우리가 보안을 지키며 내부에서 만들어내는 이런 자료들이 어찌 보면 공식적인 블랙리스트가 돼 억울한 사람이 생겨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작성해야 한다면 꼭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 또 평생 비밀 유지와 보안이 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므로 사실만 작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10년 넘게 직장생활하면서 잘 지냈다고 생각했고, 잘했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틀어졌어요. 그동안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고 충격이었어요. 세상에 믿을 건 하나도 없구나 싶고 인간관계를 맺어온 지난 시간이 허무했어요. 내가 어렵게 털어놓은 고민이 그렇게 쉽게 가십거리가 될 줄도 몰랐어요. 그 사람을 믿었었는데…”

 

‘입 달리고 발 달린 사람을 믿는다는 게 이토록 어리석게 느껴질 수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매우 안타까웠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나의 비밀은 약점이 된다’는 글귀가 떠올랐다. 털어놓은 사람도, 들어준 사람도 그 당시엔 이게 문제가 될 줄 몰랐을 것이다. 

 

털어놓았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을 믿었단 의미다. 그러니 어렵게 속마음을 나눌 수 있었을 테다. 그러나 사람의 입은 깃털처럼 가벼워 ‘너만 알고 있어. 비밀이야’라는 단서조항을 걸고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기가 쉽다. 

 

또는 본인의 이익을 위해 혹은 본인의 면피를 위해 서로가 한 약속을 깨고 상대의 비밀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매우 위험하지만 아주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것 중 하나가 비밀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 어떤 방식으로든 알게 되고 밝혀지곤 한다. 

 

물론 반박할 수도, 변명할 수도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이나 적은 글 때문에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 억울함이라고 한다. 내가 한 잘못에 대한 책임은 지기 쉽고 인정할 수 있지만 사람들 마음에 새겨진 억울함은 말끔히 치유할 수 없다. 이를 꼭 기억하고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길 기대해 본다.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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