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24. ‘자살’이라고 쓰고 우린 “살자”라고 읽는다살면서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소방공무원 대상 자살 예방 강사를 취득하고 몇 년간 자살 예방 교육을 했던 나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는 죽음만이 지금 고통의 끈을 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자살이라는 글자를 거꾸로 놓으면 ‘살자’가 된다. “자살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 중 누군가는 사실 “살려줘”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50년 가까이 살면서 죽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이나 됐을까를 생각해 봤다. 가장 최근 기억은 2022년 봄이다. 평상시처럼 회사에서 앉았다가 일어나는데 갑자기 허리가 굳고 걸을 수 없었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출근도 못 했다. 통증이 심해 매일 집에서 아파 울며 겨우겨우 버티는 암울한 나날이 시작됐다.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고 누웠다 일어날 때도 비명이 나올 지경이었다.
복대를 찼는데도 대소변 보는 일마저 힘들었다. 화장실에 앉아있으면 힘이 들어가는 건지, 안 들어가는 건지 알 수 없었고 더욱 허리가 아팠다.
결국 응급으로 대학병원에 내원했고 진단명은 L4~5 디스크 협착에 섬유륜 파열이었다. 그나마 대학병원에서 준 진통제를 먹으니 약 기운이 있는 동안은 그래도 견딜 만했다.
허리통증이 시작된 시기가 3월 말이었는데 4월 말까지 꼼짝없이 허리통증으로 잘 걷지 못하고 집안에서 베란다 밖 벚꽃을 보며 거의 매일 울었다. ‘이렇게 평생 아프면서 살아야 한다면 사는 게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일인데 그 순간만 참으면 되지 뭘 죽고 싶기까지 할까?”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너무 심한 통증에 괴롭고 잠도 거의 못 자다 보니 삶의 질이 바닥이었다.
통증이 나아지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물론 일주일, 그리고 한 달,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나아졌다. 복대를 차고 허리 쿠션이 없으면 외출이 불가한 시간이 오래 지속됐지만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나아지긴 했다.
정확히 3개월이 지나니 조금씩 걸을 수 있었고 6개월이 지나니 통증이 가끔 찾아왔다. 1년이 지나니 어떤 날만 아프고 대부분은 아프지 않았던 원래의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아주 가끔 허리가 뻐근할 뿐 통증이 지속되는 상황은 아니다. 물론 아직도 허리를 굽힐 순 없다. 조금만 자세가 나빠도 허리가 뻐근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질 못한다.
통증이 나아진 것이지 완치는 아님이 확실했다. 통증이 심해 움직이지 못하던 그 당시 집 거실 창밖의 벚꽃을 보며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바로 ‘이렇게 아프고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산다면 차라리 죽고 싶다’였다.
삶이 지옥 같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매일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내가 누워서 꼼짝을 못 하니 식구들 밥도, 집안 꼴도 엉망이었다. 밤에 통증으로 잠을 못 자는 날이 더 많았고 그런 밤이면 세상에 나 혼자인 것처럼 외롭고 힘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물욕도, 식욕도 없는 상태를 경험했다. 세상 가지고 싶은 것 천지더니 몸이 아프니 다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몸이 나아지니 죽고 싶었던 마음도 어느새 잊혀졌다.
앞으로 살면서 또 언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죽을 만큼 괴로운 일이 찾아올지는 모르겠다. 다만 죽고 싶은 순간들을 잘 보내고 나면 또 다른 시간들은 분명 찾아온다.
그러나 죽고 싶은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냥 죽고 싶은 상황들만 보이고 내게 더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만 가득 찬다. 내가 가진 수많은 자원이 하나도 소용없어지는 순간들이 찾아 온다.
큰 트라우마 후에 가정을 둘러보니 가정도 무너져, 아내, 자녀와의 관계도 깨져, 금전적으로도 피해가 있어, 친구들도 등 돌려, 그런데 몸까지 아프면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자원이 모두 무너진 상태다. 대부분은 그런 상황일 때 ‘내가 죽어서 이 고통을 끊어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죽음으로 상황을 끊어내는 거라기보단 그 상황에서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서일 것이다.
우린 쉽게 말한다.
‘왜 죽어? 그 용기로 열심히 살지’
죽음을 선택하는 수많은 사람은 우리가 쉽게 말하는 용기와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다.
‘그 순간만 버티면 괜찮아지는데 조금만 참지’
그러나 그 사람은 본인이 참을 수 있는 만큼 참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하는 마지막 선택인 것이다. 물론 자살을 합리화하려는 건 아니다.
우리가 죽을 만큼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을 만나면 또는 본인이 죽을 것처럼 힘들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자원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알려주고 적절한 약물치료와 상담을 받게끔 안내해 주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자살할 것 같다’라는 상황이 인지됐는데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모르는 척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꼭 그 사람의 관점에서 충분히 들어주고 절대 섣부른 조언이나 질책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간 소담을 통해 만난 다양한 상황의 동료들도 그들이 경험한 최악의 순간 어두운 터널을 잘 지나와 지금까지 잘 살아내고 있다. 물론 힘들고 최악인 순간은 또다시 찾아오겠지만 그때마다 본인이 켤 수 있는 손전등을 들고 어두운 터널을 또 잘 건너갈 것이다.
‘터널 끝에는 당연히 빛이 있을 거고 또 다른 세상은 분명 존재한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옆에서 지치지 않도록 손을 잘 잡아주고 같이 걸어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
나 또한 지금은 빛이 없는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에 있다. 보이지 않지만 터널의 끝에 빛은 꼭 있음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낸다. ‘자살’이 아니라 ‘살자’라는 마음으로…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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