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그게 참 뭔지. 내려놓았다고 생각해도 일 년에 몇 번씩은 불편하다. 인생에 승진보다 중요한 게 더 많을 텐데도 직장 생활하면서 승진에서 완벽히 자유로워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노력하지 않거나 인정받지 못해 승진이 늦었다고 평가받을 수 있으니 어떻게든 남들보다 앞서고 싶은 마음. 계급사회다 보니 계급이 낮은 것보단 높은 게 낫다는 생각. 이런 이유로 승진이란 조직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베테랑 구급대원이 되고 싶었어요. 적어도 구급 분야에선 고생한 시간에 대한 인정을 받을 거란 기대를 했었죠. 그런데 현장에 내 한 몸 바친 결과는 내근 경력이 없다, 구급밖에 몰라서 지휘관을 할 수 없다는 평가였어요. 소방 관련 특채자들이나 타 직렬은 특수보직으로 인해 내근만 하면서 심사승진하고 지휘관까지 무리 없이 가는데 현장직인 구급대원은 심사승진에서 불리하더라고요. 이래서 진골, 성골 출신을 따진다는 말까지 나온 것 같아요. 입사를 구급대원으로 하면 평생 현장에서 헌신하다가 소방위로 퇴직하게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화재와 구조, 구급 중 생명을 다루는 구급 업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화재나 구조도 생명을 구하는 일이지만 건수 대비 업무 하중이 가장 높은 건 구급이 아닐까 싶다.
소방 현장에서 베테랑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현장 베테랑은 자기만족이 전부인 것만 같다. 사실 현장 베테랑들은 승진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구급은 주로 현장 업무를 하는 직렬이다 보니 10년이고 20년이고 구급 현장에서 수백 명을 살리고 역할을 해도 본인 입신양명엔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
물론 최근 현장 직원들의 인센티브나 기회가 많이 늘었다. 특진 제도가 강화됐고 각종 세이버 제도도 활성화됐다. 준비한다면 본인의 것이 될 기회가 다양해졌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우리 조직에선 한 가지 일에만 베테랑인 소방관은 다양한 업무를 경험한 지휘관보다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부 직원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어디에 있든 때가 되면 승진하던데 전 밤낮으로 업무에 올인해도 일만 하다 버려지기 십상인 기분이 들어요. 우리 조직은 ‘현장이 답이다’, ‘현장을 알아야 지휘를 잘할 수 있다’고 말은 쉽게 하지만 정작 행정에서 베테랑이 돼야 유리한 것 같습니다”
소방조직 내 승진 관련 딜레마다. 최근 들어 내근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승진하려면 본부를 가거나 내근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위 이하는 시험승진이 더 유리하고 쉬울 수 있다. 본인이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한 만큼의 정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승진을 위해 현장을 고집하며 공부해야 한다는 결론인데 그렇게 본인이 노력해서 소방위까지 승진한다 해도 결국 내근을 해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방위의 내근 적체 현상과 학연, 지연, 인맥 등용, 더 나아가 열심히 일하지 않고 묻어가는 소방위 문제도 대두된다. 조직이 무조건 일 잘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문제가 되는 부분에서 일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과거부터 다면평가라는 건 있었어요. 물론 본인에겐 비공개였죠. 그러다 최근 전 직원 동료평가를 하고 있는데 이건 본인 공개예요. 누가 나를 평가했는지는 비공개라 점수가 높으면야 다들 잘 줬구나, 싫어도 그냥 좋게 준 거구나 싶어 고맙지만 점수가 평균보다 낮다면 누가 이렇게 줬나 싶어서 같이 있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원망하게 돼요. 물론 그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데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 불신이 생기고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내가 엉망으로 평가받은 것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고 속상한 마음이에요. 정작 전 다 좋게 줬는데 말이죠”
동료평가는 1년에 한 번 상반기에 지급하는 성과급 등급을 정하는 기준에 포함된다. 지난해 같이 근무한 직원 7명에게 평가를 받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전출자, 전입자, 동 계급을 제외하면 뚱딴지처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매칭되기도 한다. 아직은 시스템이 불완전한 상황이다.
대부분은 나에게 크게 피해를 주거나 너무 싫지 않으면 적당히 90점대를 준다. 그런데 동료평가로라도 복수를 해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싫은 사람을 평가하게 되면 업무능력이고 뭐고 무조건 하위점수를 부여할 수 있다.
물론 더 계산적으로 최하점은 버려지는 점수니 50점대로 반타작만 줘도 그 평정자는 평균이 70점대로 추락하게 된다. 물론 의도적으로 두 명 이상 하위 점을 줘야 하나는 버려져도 하나는 적용이 된다.
한 사람의 적이 백 사람의 아군을 이긴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대부분은 상대에게 싫은 점이 있어도 매일 얼굴을 보고 근무하면서 모든 게 싫지 않고 업무상 크게 문제가 없다면 직장 내 평가는 적당히 잘 주는 게 그간의 직장문화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익명이라는 시스템 뒤에 숨어 동기들끼리 서로를 깎아내리고 야박해진 건 분명하다. 억울함이야 있겠지만 어차피 상대에게 받는 평가를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은 없다. 그저 평상시 적을 만들지 말고 되도록 다수와 적당히 잘 지내는 수밖에 없다.
물론 동료평가가 부정적인 부분만 있는 건 아니다. 이를 통해 본인을 돌아보고 생활을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내 생각과 다르게 타인에게 비친 내 모습은 매우 냉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동료평가 제도 또한 초기 단계라 시스템 보안과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살다 보면 적이 생길 수 있다. 이중 관계 등을 생각할 때 배제 기능도 있어야 한다. 정말 같이 근무한 직원들로만 선정돼야 하고 고의로 점수를 낮게 준 사람에겐 페널티가 필요하다. 질문 항목도 두리뭉실한 ‘창의적 전문적인가’보단 실질적인 문항으로 개선해야 한다.
“승진하면 할수록 보직 전쟁이 시작되네요. 과거엔 소방경 근속제도가 없었으니 경만 달아도 다 이뤘다 했었는데 현재의 소방경은 전 계급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계급이 됐습니다. 위에 잘해야 하고 아래도 눈치 봐야 하는 중간에 낀 세대가 소방경, 중견 관리자들인 것 같아요”
언젠가부터 소방경 계급이 조직 안에서 가장 어려운 위치가 됐다. 비간부로 시작하면 퇴직 전에 소방정을 다느냐 소방령을 다느냐의 문제인데 소방경에서 소방령을 가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소방경까지 갔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퇴직하는 순간까지도 놓지 못하는 게 승진에 대한 목마름일지 모른다.
아예 처음부터 내려놓고 편안하게 ‘난 직장으로만 다니겠다’ 생각하면 편할 수 있겠지만 승진 이게 뭔지 버릴 수도 없고, 구름 같은 걸 잡겠다고 본인도 모르게 아등바등 애쓰게 된다.
그런 사람의 상황과 심리, 그리고 권력을 이용해 핸들링하려는 마음을 먹다 보니 안타깝게도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이 발생하는 것 같다.
물론 ‘업무지시를 조금 과하게 한 것이다’ 또는 ‘싫은 소리를 좀 한 건데 그걸 못 버틴 거다’며 가볍게 빠져나갈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으로서 또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막말로 상처 주면서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길 바란다. 최소한 사람된 도리로 직장에서 절실한 사람을 이용해 본인의 사리사욕을 채우진 말았으면 좋겠다.
운명론처럼 본인이 가는 길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너무 애쓰지도, 비굴해지지도 말고 현재를 즐기며 시간에 따라 흘러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틀에서 보면 인생에서 승진이라는 건 작은 한가지 부속품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린 그 작은 부속품을 얻고자 너무 많은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속의 사례들은 비밀유지 서약에 따라 특정 개인의 정보가 아닌 여러 사례를 각색하여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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