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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똑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좋은 사람이기도, 덜 좋은 사람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딜 가나 사람을 잘 만나는 게 세상 최고의 복이란 생각을 한다.
문득 ‘소방관 동료상담사로서 상담이라는 업무를 하며 얼마나 쉽게 내담자들에게 상담이 아닌 조언을 해 왔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상담사 입장일 때 정답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내담자 입장에선 오답인 적도 있었다. 경험해 보지 않았는데 감히 상상하고 예단해서 결론 짓고 판단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소담을 나와 객관적 시점이 돼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죽을 것 같다. 죽고 싶다”고 울분을 토하던 직원에게 “여긴 직장이다. 죽긴 왜 죽냐! 그만두고 다른 일 찾으면 되지 너무 직장에 연연하지 말아라!”고 말해줬다.
그 직원이 과연 다른 직장을 못 찾아서 죽고 싶은 것이었을까? 직장이 여기 밖에 없어서였을까?
아니다. 내 직업, 내 직장에 진심이었기에 그 순간 내담자는 하늘이 무너진 것과 같은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죽고 싶다”는 내담자에게 “가족을 생각해라! 직장에서 끝났다고 인생이 끝난 건 아니다”고 말해 줄 게 아니라
“지금 네가 바라보던 하늘이, 네 직장 안에서의 미래는 끝났을지 모르나 네가 사는 세상의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니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세상이 오지 않을까? 이 순간이 최악인 것처럼 힘들어도 지금을 이겨낼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자.
힘들면 쉬기도 하면서 오늘을 잘 견뎌내 살아보자. 지금 모든 걸 판단하고 결정짓지 말고 하루하루 잘 살다 보면 또 다른 나의 하늘도 열린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명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처럼 세상은 흐르고 변화하기 때문에 지금이 끝은 아니다”
이런 현실적인 희망을 보여주는 건 어땠을까.
“버티면 좋은 날 오더라” 많은 사람이 하는 말이다. 그건 지금이 좋은 날인 사람들이 지나고 나니 괜찮아져서 할 수 있는 말이다.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이 순간이 최악이기에, 당장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기에 죽어야 해결될 것 같고 이 고통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절대 들리지 않는 말이다.
지금 당장은 내 세상이 온통 절망뿐이어도 이 순간이 지나고 또 다른 세상이 분명 오긴 한다. 하지만 당사자는 당장 내일을 알 수 없으니 ‘희망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음을 공감해 줘야 한다. 그들이 희망의 빛을 찾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조용히 손잡고 기다려주는 게 그들에겐 더 나은 선택지일지도 모르겠다.
섣불리 답을 찾아 주려 하지 말고 그냥 오늘을 잘 이겨낼 수 있게만, 그리고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수백 번을 해도 처음 듣는 것처럼 잘 들어주고 진심으로 공감만 해줘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내부 신고를 하려던 내담자에게는 “신고하고 나면 너무 힘드니까 그냥 참고 견뎌 보면 어때?”라고 할 게 아니라 “어떤 게, 어느 선택이 네가 살면서 평생 억울하고 원통하지 않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서 결정해”라고 해줬으면 어땠을까.
내부고발로 인한 후폭풍이 절대 적지 않겠지만 그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손잡아 주고, 도와주고, 지지해줬다면 그래도 살면서 원통함 또는 억울함은 줄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최소한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의 화병에서 벗어날 수 있게, 원통하지 않게 제일 나은 방법을 같이 찾아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다양한 방법과 효율적인 해결 방안들이 있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그 어떤 것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일이 수없이 많이 일어난다.
“주변에 도움받을 곳이 없었나요?”
누군가는 쉽게 물을 수 있다. 도움을 받고 싶어 내부고발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본인을 숨기지 않고 신고하면 더 공정하게 평가받을 거란 기대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내부고발자에게 관대하지만은 않다. 법률적인 보호도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인식과 보이지 않는 따돌림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내부고발자를 바라볼 때 많이 불편하다. ‘나도 잘못해서 신고당하면 어떡하지? 괜히 말 섞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생각은 다양하기에 똑같은 문제를 볼 때 누군가는 잘못이라고 느껴도 또 누군가는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진 말아야 한다. 모든 존재하는 사람은 존중받아야 하고 유린당하지 않아야 한다. 특별히 잘해 줄 필요도 없지만 사람 간의 선을 지키며 고의로 괴롭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내부고발자들의 어려움을 익히 알기에 “그 힘든 일을 왜 하려고 하냐. 그냥 조금만 더 참아보면 어떠냐”고 상담했었다. 일부는 맞지만 참아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경우도 많다.
단 내담자가 내부고발 이후 상황을 더 힘들어할 것으로 예상되는 성향이라면 다른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그만 힘들어지고 싶어 신고하는 걸 텐데 신고 전보다 더 힘들어진다는 사실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물론 억울한 고발은 바로 잡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절망 끝에 선 내담자들은 본인들 세상이 끝났다고 느낀다.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 인생의 최악을 경험하게 된다.
우린 미래를 예측할 순 있지만 확신할 순 없다. 그래서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은 미래가 지금보다 더 어두울 거로 생각하고 ‘이제 나는 끝났다’고 예단하게 된다.
‘이제 끝났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이 만든 동굴에서 나오는 길마저 잊어버린 내담자는 아무리 누군가 손짓을 하고 함께 나가자 해도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 그 동굴을 나가는 순간 바로 죽을 것 같아서 오히려 그 동굴 안이 안전하다고 스스로 믿게 된다.
동굴 밖을 스스로 나올 수 있게 하려면 내담자가 혼자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빛을 지속해서 비춰주며 함께 있음을, 그래서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제 그만 징징거리고 나가자’고 다그치기도, ‘그냥 나가면 될 일인데 왜 빛을 보지 못하냐’ 며 혼내기도 한다.
내담자는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 아무도 몰라 준다’며 공감받지 못했다고 생각해 외로워지고 점점 더 사람들과의 교류를 줄여간다. ‘어차피 말해 봤자 이해도 못 할 거 그냥 말을 말자’고 체념해 버리기도 한다.
비록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자책하더라도, 비록 그 말들이 바보 같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잘 들어주면서 섣부르게 비난하거나 설교하지 않으면 되는데 우린 그걸 참 못한다.
동료상담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전등을 비춰주고 가끔 물도 건네주면서 잘 들어주기만 해도 되는데 그 간단한 최고의 방법을 실천하기 어렵다. 상담사들의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사보단 차라리 옆에 나를 이해해주는, 내 얘길 지겹지 않게 잘 들어주는 가까운 한 사람이 더 도움 될 때가 있다. 오히려 가끔 한 번씩 만나게 되는 상담사보다 늘 내 옆에 있는 내 편이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가장 좋은 상담사가 되기도 한다.
내 상황을 구구절절 다 상기시켜 알려주지 않아도 되고 내가 하게 될 선택의 결과도 경험치로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기본적인 라포 형성도 어렵고 형식적 짧은 상담이 치료의 최선이 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외부기관에 우리 정신건강을 맡기고 외면할 수 있을까? 우리가 우릴 가장 잘 이해하고 이미 알고 있는데 말이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보다 내부의 시선이 더 차갑기에 동료상담 업무도 늘 제자리걸음이다.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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