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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23. 소방관의 직무 스트레스와 회복 탄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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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소방서 이숙진 | 기사입력 2025/06/02 [10:00]

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23. 소방관의 직무 스트레스와 회복 탄력성

경기 파주소방서 이숙진 | 입력 : 2025/06/02 [10:00]

“집에서 TV를 보는데 많은 사람이 길바닥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더라고요. 그때가 오후 10시쯤이었는데 실시간으로 뉴스특보가 나왔습니다. 길에서 구급대원들이 CPR 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는데 ‘저 정도 인원이면 사상자가 엄청 나겠구나.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우왕좌왕하고 난리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큰일 났다. 대형재난이다!’ 역시나 구급대원 동원령에, 비상단계 발령에, 현장응급의료소 설치에 난리 북새통이었어요. 내가 구급대원이라면 저 상황이 엄청난 트라우마가 되겠다 싶더라고요”

 

구급대원 출신이라면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상황 파악이 되고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당연할 거다.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들. 현장을 경험해 본 자만 알 수 있는 그런 일이 2022년 10월 말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뉴스 영상만 보고도 현장을 같게 경험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게 바로 소방관의 숙명이다. 물론 모든 소방관이 같은 상황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는 건 아니다. 각자 취약한 부분에 노출됐을 때, 그리고 약한 부분이 건드려졌을 때 다양하게 병리적으로 발발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은 ‘소방관은 나약하면 안 된다’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소방관들은 힘들고 어려워도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하고 본인의 어려움을 회피하는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고 소방관의 복지가 중요해졌어도 여전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단어에는 차갑고 냉정하다.

 

“요즘 뉴스를 보는 게 겁이 날 정도예요. 차도로 다녀야 하는 차량이 인도를 덮치기도 하고… 흔치 않은 사건ㆍ사고가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사고 난 상황만 보도가 되지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처리하고 마무리가 됐는지에 대한 후속 기사는 찾기 힘드네요. 우린 응급환자 처치와 이송이 주 업무인데 망자 이송까지 우리의 업무가 돼가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현장에서 다수사상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라는 규정은 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 그 매뉴얼대로 잘 운영이 되는지도 모르겠고 정작 지휘관이 그 규정을 숙지하고 있는지도 의문이에요”

 

현대는 다양성이 중요한 시대다. 몇 년간 다수사상자 발생 대형 사건이 여러 건 일어났고 그때마다 최전선엔 소방이 있었다. 이슈가 되는 모든 사건ㆍ사고에서 소방을 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일반인이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현장을 일상으로 경험하는 소방관들에 대한 이해는 매우 냉정하다. 그래서인지 우리 스스로 아프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에 스스로 숨곤 한다.

 

용기 있게 앞에 나선 사람조차 상처받기 일쑤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 소방관은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아프면 말해도 된다. 아플 수 있다”고 하지만 나조차도 남들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다. 

 

“구급대원으로 근무한 지 1년쯤 됐을 때였어요. 대낮에 관내 주택에서 가족 간 상해 소동이 일어나 출동했죠. 엄마는 경상, 아이는 중상이었는데 가슴에 멸균패드를 대고 응급처치를 해서 관내 3차 병원, 엄마는 경찰이 태우고 병원으로 이송했어요. 정말 끔찍한 현장이었는데도 너무나 침착하게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잘 따라준 그 어린아이의 눈망울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요”

 

아무래도 가장 끔찍한 현장은 친족 간 상해 현장이 아닐까? 내담자는 “응급처치해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주 업무지만 무엇이 그 가족을 극단으로 치닫게 한 건지 매우 복잡한 심경이었고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현장을 기억하려고 기억하는 게 아니라 기억이 나서 계속 힘든 것이다. 그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자 직무 스트레스다. 그런데도 일상에 녹여내고 비워내며 잘 살아가는 걸 회복 탄력성이라고 부른다. 

 

물론 모든 사람이 참혹한 현장을 경험한다 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노출되는 건 아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노출되는 경험을 하는 일부 사람의 경우 과거 본인이 경험한 외상의 추가 상처일 수도, 잊고 지내던 과거의 상처가 노출된 경험일 수도 있다. 

 

본인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노출됐다고 제대로 인지할 때 치료할 수도, 회복 탄력성을 끌어낼 수도 있다. 건강한 삶으로 돌아갈 확률 또한 높아진다.

 

“교통사고 현장이라 펌프 차량과 함께 출동했어요. 현장에 도착해보니 흰색 모닝 차량이 도로 가로등을 들이받고 반파돼 연기가 나고 있었죠. 운전자로 보이는 50대 여성이 앞섶을 풀어헤친 채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돌아다녔어요. 출동한 대원들의 팔을 잡고 ‘우리 애는요? 우리 애 좀 구해주세요’라고 계속 소리쳤어요. 반파된 모닝 차량 조수석을 살펴보니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사망한 상태로 앉아 있었어요. 보는 순간 이미 즉사했음을 감지했고 이후 엄마의 삶이 너무나 걱정되더라고요”

 

아마 학원 또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자녀를 태우러 갔다 오던 길에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교통사고가 났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자녀가 즉사한 상황으로 보였다.

 

부모는 외상이 없었다고 하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였으니 이후의 삶도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지 않았을까. 주로 미성년자가 사망한 교통사고 현장을 다녀오면 심리적 외상으로 그 상황 자체가 참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 구조대상자의 마음이 전이돼 동일시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출동한 현장마다 기억에 남아 힘든 순간 한 번씩 떠오르고 한참을 힘들게 하다가 다시 마음 깊은 곳으로 숨어버릴 수 있다. 이렇듯 외상 후 스트레스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와 내 마음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지내다 어느 날 문득 나타나 다시 괴롭히는 존재 같다. 그 존재를 다시 제자리로 또는 멀리 쫓아낼 방법이 상담, 약물치료고 본인의 회복 탄력성이다.

 

그러나 과연 우린 얼마나 정확히 본인의 상태를 파악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자발적인 상담과 치료를 받는 일부 외 본인의 상처조차 돌아보지 못하는 일부를 위해 조직 내 동료상담소가 꼭 필요한 시점이다.

 


‘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속의 사례들은 비밀유지 서약에 따라 특정 개인의 정보가 아닌 여러 사례를 각색하여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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