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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19. X세대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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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소방서 이숙진 | 기사입력 2025/02/06 [10:00]

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19. X세대의 고민

경기 파주소방서 이숙진 | 입력 : 2025/02/06 [10:00]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과거에도 알았더라면 치명적인 실수와 좌절한 순간들을 줄이고 내 기준에 맞춰 완벽하고도 성공적으로 다시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선배인 여자 팀장님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린 그 시기를 지나와서 알고 있지만

지금 어린 직원들은 그 시기를 지나가고 있고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른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중 모른다고 생각해야 이해가 되는 게 있다. ‘몰라서 그랬을 것이다’고 이해하고 ‘모르니까 잘못하는 것이다’고 생각하면 이해 못 할 일들이 지금보다는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새로 오신 과장님이랑 대화가 너무 안 통해요. 문서결재를 받으려면 수기결재를 해야 하는데 결재도 안 해주면서 많이 힘들게 해요. 어떨 땐 문서를 던지며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대서 자존심이 너무 상해요. 과장님 의중을 파악해서 업무를 추진하면 ‘업무 담당자가 고민도 없이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면 저러니 생각이 없다’며 사람들이 있든 없든 면박을 줍니다. 결재만 들어갔다 나오면 등에 땀이 흘러 속옷이 축축해지고 여기저기가 아파요. 이러다 내가 죽는 건 아닌지 이래서 사람들이 그만두거나, 죽거나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구나 싶어요”

 

직장생활이라는 게 항상 나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평가 절하되곤 한다. 내 생각과 다른 상황들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직장이다. 또 계급이 존재하는 조직에서는 지휘관의 말을 따르는 게 원칙이다. 

 

현장에서는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상하 복종 지휘체계가 맞을 수 있다. 하지만 행정을 하는 일상생활에서는 계급이 다른 상하 관계에서도 서로 업무 내용을 공유하고 가장 좋은 방법을 도출하기 위해 이견을 조율하며 함께 방법을 찾아가는 게 합리적이다. 

 

양쪽 입장을 다 들어보지 않아 정확한 사실관계는 파악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험으로 미뤄 보면 상급자가 말로 하기 치사한 일로 서운함이 있었는데 그걸 업무로 표출했거나, 상대방이 그냥 싫거나, 인성이 근본적으로 온화하지 않을 수 있다. 

 

위 세 가지 중 어느 쪽이든 계급을 떠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는 행동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므로 주의를 기해야 한다. 

 

가정이 있고 나이도 지긋이 든 상대라면 더욱 조심해서 존중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가 되고 그 상처는 어떤 것으로도 치유되기 어렵다. 그나마 자기 의사 표현을 하는 직원이라면 하소연도 하고 누군가에게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못 하면 마음의 병으로 남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치료를 받는다는 게 한편으론 긍정적일 수 있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마음의 병이 점점 심해져 인격까지 변해버리기 전에 상담소든, 병원이든 하소연할 누구라도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댈 곳이 하나도 없다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위 내담자의 경우는 소담센터를 찾았고 병원 진료도 받았기 때문에 호전됐다. 어차피 길어야 2년이면 인사이동으로 서로 헤어지게 되니 영원한 괴롭힘도, 죽을 정도의 고통도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다. 물론 마음의 상처와 병은 깨끗해질 수 없을테지만 말이다.

 

“사람은 바꿔 쓰는 거 아니란 말이 있지만 윗사람으로서 직원이 잘못하는 걸 알려주고 지금보다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 이것저것 알려줬어요.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 직원은 한 귀로 흘려버리고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같이 일은 해야 하고 내려가라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소통이 잘 안 되는 직원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사기업 같으면 업무성과나 능력을 평가해 순환보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무원 조직에서는 업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데 개선의 의지나 희망마저 없는 사람과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일을 하거나 계속 같이 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인간적으로 보면 나쁜 사람이야 없다지만 직장은 업무를 해야 하는 곳이다. 사람이 좋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업무능력이 있어야 하고, 능력이 부족하면 의지라도 있어야 하고, 노력해서 개선의 기미가 보여야 한다. 

 

만약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면 어떻게 하는 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일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윗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든 견뎌내고 버티면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되지만 아래 직원과의 문제가 있다면 사실 답이 없다.

 

사람과의 관계는 무너지면 회복이 어렵다. 극복하려 할수록 더 힘겨워지기도 한다. 그러니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서로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 헤어지는 게 아닐까.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워요. 28년 소방서를 다니고 겨우 계급 하나 더 달자고 이렇게까지 비굴해질 일인가 싶어요. 매일, 매일 도망가거나 그만두는 걸 상상하면서 하루, 하루 죽지 못해 버티고는 있어요. 정말 자존감이 바닥을 칩니다. 중간 관리자가 위아래로 가장 힘든 직군이긴 하나 상사에게 받는 대우에 따라 모멸감을 느끼고 살인 충동까지 일어날 정도예요”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고도 상황이 심각했다. 잠깐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 팀장님은 관서장이 조문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앉지도 못하고 국물에 밥을 말아 2분 만에 물처럼 마셨다. ‘저렇게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눈치를 보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주임은 외부인인 데다가 손님으로 방문했고 친절하게만 대해주니까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남자 팀장들은 결재 한번 받으려면 한 시간씩 세워두고 계속 지적을 해. 어떤 날은 화를 내고 애처럼 혼내는 일이 부지기수야”

 

‘실화일까? 그렇다면 저 팀장님은 무엇 때문에 그 수난을 견뎌내고 있을까? 업무능력보단 두 사람 사이 불편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건 아닐까?’ 

 

의아했다. 조직에서 업무효과를 증대하기 위해 타이트하게 업무를 챙기고 지시하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인격적으로 깔보거나, 대다수가 있는 곳에서 무시를 당하거나 억울한 대우를 받는 건 직장인으로서 가장 힘든 순간이 아닌가 싶다.

 

물론 요즘은 조직 분위기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조직 내에서 명백한 갑질 행위를 당해도 내부신고조차 생각할 수 없는 계급이 존재한다. 내부고발자라는 타이틀은 조직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존재지만 안타깝게도 함께 하고 싶은 동료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부신고는 매우 조심스러우면서 어렵고 무서운 일이다. 가해자 처벌만 있는 게 아니라 피해자의 피해도 피할 수 없어서다. 매우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조직이 변화하려면 꼭 필요하지만 누구라도 내가 피의자이길 바라진 않을 거다. 

 

모두 MZ 세대에겐 조심하지만 X세대는 공공연하게 당하는 조직 내 불평등이나 불이익, 모두가 알고 있으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정당화되는 갑질에서 과연 벗어났을까? 

 

젊은 실무자들은 육아정책과 복지 행정으로 근무여건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중간 관리자가 된 낀 세대, X세대들은 육아정책 혜택을 받을 수 없고 관리자가 됐어도 실무자처럼 일해야 하는 게 암울한 현실이다.

 

고위급 관리자들은 하위직 실무자들 마음만 헤아릴 게 아니라 본인도 경험했고 힘들었던 중간 관리자들의 마음을 같이 보듬어 줬으면 좋겠다. 소방만큼은 내부고발이 없어도 되는, 학연, 지연 그리고 줄 잘 선 사람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인정받는 조직이길 바란다.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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