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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08.

‘배추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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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소방서 이숙진 | 기사입력 2024/03/04 [10:00]

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08.

‘배추전’의 추억

경기 파주소방서 이숙진 | 입력 : 2024/03/04 [10:00]

2000년대 소방서 생활을 돌이켜 보니 여자라서 힘들었지만 소수라 배려받은 시절이었던 것 같다. 일부 여직원은 다수가 남자인 소방 조직에 잘 적응하며 편안하게 지냈다. 그런데 나는 예외였다.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자격이 있는 여직원들이 1990년 말부터 특별 채용돼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방서별 1~2명 정도의 여직원 비율을 갖던 초기 시절에는 배려라는 덕목이 있었다고도 들었다.

 

나는 IMF 시기를 지나 4년 만에 신규직원을 채용하기 시작한 2001년에 배명됐다. 그때가 소방 조직 내 여직원 비율이 늘기 시작하는 과도기였던 것 같다.

 

“여직원이 한 명이면 배려도 해주지만 이제 많아지니 그럴 수가 없어! 똑같이 해야지”

 

라고 말하던 선배들은 모든 업무 중 현장 활동과 야간 소내 근무 그리고 주방일까지 당연하게 막내인 내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도기에 입문한 여직원들, 즉 나와 같은 여자 동기들은 구급 출동에, 소내 근무에, 주방 여사님 일까지 모두 잘 해내야 그나마 욕을 안 먹었다. 잘해야 본전인 시절이었다.

 

2교대 근무 시절 비번날은 관내 소방검사와 유동 순찰로 시간을 보내고 온종일 구급 출동을 한 후 야간 소내 근무까지 서면 다음 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중 ‘갑 오브 갑’은 식당 여사님 일이었다. 

 

이십 대 중반, 집에서도 해보지 않은 ‘밥하기’를 최소 6인분 이상 대량으로 해내려다 보니 양이나 맛 조절이 만만치 않았다. 지금처럼 백종원 레시피가 있거나 인터넷 검색만으로 모든 음식을 흉내 낼 수 있는 시기도 아니었다. 

 

물론 태어나 내 손으로 밥을 몇 번 해 먹어보지 않은 상태로 소방에 들어왔으니 요리를 맛깔나게 뚝딱해 낸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도 맞다. 

 

지금 할 수 있는 요리들을 그 시절에도 할 수 있었더라면 그거 하나만으로도 선배들에게 예쁨받고 소방서 생활이 조금은 편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면 20인분도 거뜬히 해낼 수 있는데… 지금 할 수 있는 걸 그때도 할 수 있었더라면… 내 상황은 달라졌을까?

 

어찌 됐건 요리도 못해, 현장 활동도 체력이 안 따라줘, 말도 함부로 하면 이해 못 해, 여러 가지로 ‘여직원은 불편하다’는 불평이 가장 많던 2000년대 소방에 들어와 이제 20여 년이 흘렀다. 

 

소방사나 교 때는 ‘눈치 없고 애교 없어 별로인 여직원’이란 평을 들었다. 어리석게도 ‘내가 예쁘고 날씬했으면 직장생활이 평탄했을까?’를 고민하기도 했다. 

 

‘알아서 잘한다’는 개념이 업무만 뜻하는 게 아니듯 그냥 다방면으로 알아서 잘해야 업무도 조금은 수월한 자리에 갈 수 있고 승진도 남들만큼 할 수 있는 그런 시대를 안타깝게도 누리지 못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소방위가 됐다. 과거 소방위가 소방파출소장을 할 때 입사했는데 정작 그 계급이 되니 안전센터장은커녕 소처럼 발로 뛰는 실무자가 돼 있었다. 내가 승진하고 올라가도 계속 제자리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방위로 진급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부서는 나를 비롯해 소방위 2, 소방장 2명 등 총 4명의 여직원이 있었다. 그중 소방위 1명은 간부후보생이었고 여직원 넷 중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우리 부서는 체육행사와 동호회 등 각종 행사가 많은 팀이었다. 그해 체육행사의 메인은 전 관서가 참여하는 북부 권역 주최 테니스 대회였다. 

 

과거 축구대회를 몇 번 하면서 매해 먹거리부터 전체 행사를 열심히 준비했다. 우리 과 주관 업무이기도 했고 ‘기왕에 하는 거 재밌게 하자’는 마음으로 즐겁게 발로 뛰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그 해는 과장님이 직접 행사를 추진하셨다.

 

“이 주임, 이 주임이 아줌마기도 하고 나이도 많은 데다가 선임이잖아. 

여직원들 데리고 이번 테니스 행사에 음식을 좀 준비해 줬으면 좋겠는데…

혹시 괜찮으면 배추전을 좀 부치면 어떨까?”

 

“배추전이요? 제가 어묵탕이나 다른 건 양을 많이 하는 게 힘들지 않을 것 같은데 

배추전은 해본 적이 없어서요”

 

“그래? 근데 배추전이 힘든 게 아니야. 몇백 장도 금방 부쳐. 

테니스 치는 사람들이 허기져서 배추전 같은 따뜻한 걸 먹으면 아주 좋을 것 같아. 강요는 아니고…”

 

“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과장실에서 나와 같이 회의에 참석했던 팀장님께 하소연을 시작했다. 

 

“팀장님, 테니스 대회 때 제가 한쪽 구석에서 전을 부치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여직원들 데리고 하라는데 여직원 중에 음식 할 줄 아는 직원이 저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럼 다 제 일이 될 텐데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이 주임이 싫으면 싫다고 하세요”

 

내심 팀장님도 그냥 과장님 지시사항이니 그냥 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분위기는 ‘내가 생각해도 심한 것 같으니 이야기해 줄게요’라고 해주실 줄 알았던 내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팀장님께서는 분명 과장님의 지시가 무리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지 않았다.

 

그날부터 며칠간 누워도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현장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배추전을 부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전혀 고상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너무 일이 커지는 것 같았다. 사실 자존심도 상했다.

 

살면서 배추전이라는 걸 부쳐본 적이 없었다. 먹어보지도 못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할 줄 모른다. 답은 내려졌다.

 

“배추전은 안 부칠게요. 대신 어묵탕을 끓일게요”

 

행사 당일 쌀쌀한 날씨 탓에 어묵탕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과장님 얼굴은 어두웠다. 행사는 주말에 진행됐고 저녁 늦게야 끝났다.

 

정리를 다 하고 저녁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었는데도 우린 서로 “고생했다”는 말도, 회식도 없이 각자 귀가했다. 팀장님 이하 우리 팀 모두 종일 고생했으나 고생한 보람이 없었다.

 

그해 성과급 등급은 ‘A’였다. 배추전을 안 부쳐서 ‘A’를 받았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아예 관련이 없을 것 같진 않았다.

 

그 이후 한참 지나 우연히 ‘배추전 만드는 법’을 보게 됐다. 세상에나!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이 엄청 단순했다. 그 순간 갑자기 매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단순한 줄 알았으면 그냥 부칠걸’

 

후회가 밀려왔다.

 

그 이후 과장님과 일 년 넘게 같이 근무했다. 다행히도 과장님께서 그 일로 계속 불편하게 하진 않으셔서 불평 없이 아주 잘 지냈고 지금도 그분을 미워하진 않는다.

 

분명한 건 지금이야 시간이 지났으니 이렇게 이야기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매우 불편했을 뿐 아니라 힘들고 속상했다. 물론 아니라고 말하기까지도 매우 힘들었다.

 

소방사 때나 소방위 때나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건 똑같이 힘들었다. 사람들은 ‘NO’라고 얘기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하 관계에선 당연히 ‘NO’라고 말하기 더 어렵다. 

 

소방경이 된 이후에도 아닌 걸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 못 하는 현실이 갑자기 서글퍼지기도 했다. 내 외모만 보고 할 말 다 하고 사는 줄, 절대 손해 안 보고 사는 줄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정작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소방사 때나 경 때나 바른말 못 하긴 매한가지인 자신이 싫어졌다. 그런 일들이 있을 때 ‘아닌 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해야 했는데 꼭 뒤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지난 일을 되새기며 속상해하고 자신을 탓하기 일쑤다.

 

얼마 전 한 선배에게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이제 소방경인데 뭘 그렇게 눈치를 봐? 그냥 편하게 살아. 

아닌 건 아니라고 하고 싫은 건 싫다고 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

 

그래. 아니라고 해서 불이익을 당한다 해도 그렇게 큰일은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 불편한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했을 뿐이다. 그리고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순간부터 나에게 불합리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더는 일어나지 않을 거다.

 

오랜만에 배추전을 떠올리며 과거를 돌아본다. 지금 똑같이 배추전을 부치라고 하면 난 어떻게 대답할까?

 

소담에서 만났던 여러 명의 고민도 같았다. 아니라는 말을 못 해서, 거절을 잘 못 해서, 그리고 부당하다고 생각되지만 불이익을 당할까 봐 참고 견뎌내다 마음에 외상을 입고 치유되지 않는 아픔으로 고통을 당했다.

 

말하고 나서 후회하느냐, 참고 그냥 감수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아니다’는 말을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판가름하고 선택하는 건 매 순간 고민일 수밖에 없다.

 

지금 현실의 나는 과연 어느 쪽일까?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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