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13.구급대원 상담프로그램 활성화 필요성을 고민하며과거 소담센터를 찾은 수많은 구급대원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최근 가장 어려운 문제인 의료파업과 맞물려 현장에서 제일 고생하는 소방직렬은 구급대원이다.
구급대원으로 근무했던 과거도 힘든 기억이 많지만 구급팀장이 된 후 지역 응급의료협의체 회의에 참석하면서 더 답답한 현실을 체감하고 있다.
파주시 관내는 대형병원이 없다 보니 인근 일산이나 서울로 재이송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 119로 이송된 환자가 관내 지역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할 때 치료 가능한 3차 병원으로 이송하는 걸 재이송이라고 한다.
파주소방서 구급대원들은 119로 지역병원에 이송된 환자의 상급병원 재이송 건은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이라고 여긴다. 파주뿐 아니라 모든 구급대원은 환자를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해 주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관내병원에서 치료가 어렵다고 하면 재이송도 마다하지 않는다. 초기 응급처치를 받는 환자를 위해 몇 시간이고 응급실에서 기다려주는 수고도 감수한다.
코로나를 겪은 후 비응급환자도 병원 이송 전 수용 가능 여부를 사전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거기에 더해 의료파업이 심화되면서 환자 이송 병원 선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아무리 환자를 훌륭하게 처치해도 입원 후 치료가 가능하지 않아 전원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상급병원은 거의 풀 베드고 경련하던 소아가 전문의가 없어 세 시간 동안 헤매다 겨우 원거리에 수용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되는 일도 있었다. 대형병원의 f/u(Follow-Up) 환자도 다니던 병원으로 갈 수 없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구급차에서 병원을 선정하지 못해 사망하는 사태만은 막고자 백방으로 병원을 선정하고 이송해보려 해도 쉽지 않다. 구급팀장으로서 구급대원들이 번 아웃이 오기 전에 이송 병원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은데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과거 소담센터를 찾은 다양한 구급대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점이 있다.
‘내가 구급대원으로 근무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 아직도 이런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구나’
그래서인지 더 마음으로 함께 걱정하고 격려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임상으로 돌아와 구급대원과 한마음으로 구급 업무를 하다 보니 과거 내가 알던 시절보다 더 열악해지고 힘들어진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20년간 구급 스킬이나 환자를 보는 능력치는 훨씬 우수해졌지만 구급대원의 현장 활동 여건은 코로나를 지나 의료파업으로 이어지며 더욱 열악해졌다. 내가 알던 과거보다 지금은 더욱 복잡해진 것 같다.
상담사 입장이라면 구급대원 한 명, 한 명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도 돌봐주고 싶은데 구급팀장으로서는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된다. 내 말이 곧 대원들에겐 지침이 되고 규정이 되다 보니 매사 조심스럽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말이라는 건 직접 들을 때와 문자로 볼 때가 다르고 보통은 자기 생각을 얹어 생각하기 때문에 오해와 와전은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마음을 돌봐주고 싶은 직원이 있어도 온전히 격려해 주고 멘토가 돼주기 힘들어졌다.
요즘은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의사, 의료진 모두 점점 예민해질 뿐 아니라 지쳐가고 있다. 의료파업이라 해도 119 이송 환자 수가 현저하게 줄지 않으니 과거보다 구급대원들의 업무 피로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근본적으로 의료계가 정상화 되지 않고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구급대원들은 점점 더 지쳐갈 수밖에 없다. 의사들이 떠나듯이 구급대원들의 이탈도 막기 어려운 순간이 오지 않을까 겁이 난다.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병원에는 의사라도 있지만 병원이 환자를 안 받아주면 환자는 구급차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응급의료협의체 회의 중 애로사항을 토로한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했던 말이다. 서로가 힘들고, 예민한 이 어려운 시기에 감정적으로 대립하면서 싸우지 말아야 하는데 모두 너무 힘드니까 오히려 더 부딪히고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그러나 일단 맞서 싸우고 나면 그 피해는 공무원 신분인 구급대원들이 오롯이 받게 된다. 전혀 잘못한 게 없다고 여겨져도 일단 민원이 들어오면 사과해야 한다. 규정을 따져 바로잡고 싶은 순간도 그냥 넘어가야 한다.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사정해야 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
민원이 들어오면 당사자인 내가 직접 사과하고 해결하기 바랐던 지휘관들이 있었다. 경험에 빗대 보면 구급대원이 민원인에게 직접 사과하거나 해결하는 게 최선은 아니었다.
지휘관이라면 구급대원들이 믿고 의지하면서 당당하게 현장업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앞장서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날아오는 화살도 대신 맞아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기에 구급대원이 상처받은 상황에 동화되면서 이유 없이 민원인에게 사과하는 순간 모멸감이 들곤 한다. 지휘관이 아니었을 땐 사과하는 게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그 자리에 오니 내 직원 입장에서 민원인에게 똑같이 상처받고, 지치고, 속상하고, 힘든 순간을 경험하게 됐다.
상담사로 근무하면서 ‘상담사들의 상담은 누가 해주나?’라는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땐 외부상담사나 우리끼리 서로 격려하고 들어주며 버텼다. 상담사도 아니고 그냥 일반인으로 업무 중 받은 상처와 심리적 외상을 난 이제 누구에게 상담받아야 할까?
상담사였던 나도 이런 고민의 순간이 있는데 구급대원들은 힘들어도 ‘상담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의료계가 원활했을 때도 구급 업무는 바쁘고 고됐는데 지금은 거의 현장응급의료 위험단계인 것 같다. 그래서 하루빨리 의료파업이 끝나고 의료 현장이 정상화 되길 누구보다도 희망한다.
아직은 다들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으나 구급대원들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부디 이 시기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필요하면 상담을 받고, 동료끼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건강하게 구급대원들이 자리를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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