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12.타로로 풀어보는 심리상담 part 2.그림카드인 타로를 배우기 전 ‘스스로 걱정과 고민을 타로로 해결하면 좋겠다’는 개인적 기대가 있었다. 타로를 통해 타인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해줄 순 있었지만 정작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순 없었다.
타로는 결국 그림카드 해석이니 얼마든지 내가 뽑은 카드를 해석해서 문제 해결 방법을 결정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왜 그럴까…?’
나름대로 고민해보니 카드가 가진 다양한 해석을 객관적으로 읽어내야 하는데 내가 나의 고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쉽지 않았고 왜곡해서 읽어내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본적인 해석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타로는 심리상담을 이어가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사용법인 것 같다.
“결혼한 지 20년 됐는데 남편과 소통이 안 돼요. 애가 성인이 되면 졸혼이든, 이혼이든 하고 싶어요.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요”
어차피 상담실에 찾아온 내담자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부부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섣불리 단정 지어 부부관계를 평가할 수 없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관계의 문제점이 보일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을 다 만나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림카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남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카드를 뽑아보세요” “아이를 재우고 있는 여자가 마치 저 같네요”
말이 안 통하는 아이를 조용하게 재우는 상황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아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아이는 요람을 흔들어 재운다고 잠을 잘까요?” “아니요. 울고 있으니 얼른 안아서 달래줘야 할 것 같아요”
소통의 어려움이 있던 내담자는 그 소통의 실마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열심히 소통을 시도하며 노력하고 있다고 믿었을 테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원인을 찾아 그것을 해결해야만 문제가 풀릴 수 있었을 거다.
우는 아이를 요람만 흔들어선 달랠 수 없으니 얼른 안아서 달래주는 게 문제의 해결책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정작 상대방이 원하는 게 뭔지를 알고 문제를 정확하게 바라볼 때 해결점도 보이는 법이다.
구급대원으로 근무한 지 5년 차인 남성 내담자를 만났다. 열정과 의지가 대단하고 프로페셔널했다. 구급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그만큼 배움의 열정도,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해 내기 위한 자세도 훌륭했다.
그런데 본인이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충분하지 않아 조직에 대한 배신감과 절망으로 힘들어 하는 상황이었다. 열정적이고 성실한 내담자가 무엇 때문에 상처받고 지쳐있는지 예상됐지만 상담 속에서 그의 진짜 속마음은 드러나지 않았다.
“두 장의 카드를 보고 본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나요?” “나무에 기댄 기사요. 그리고 두 번째 카드에서는 원안에 있는 천사요”
이 카드에선 정확한 그림 해석보다는 지친 마음을 알아주는 게 중요했다.
“마음은 멋진 기사가 되고 싶은데 사실은 너무 지쳐 일어설 기운조차 없군요. 천사들처럼 재밌게 즐기고 싶은데 현실에선 열심히 나무를 심어야 하는 일꾼이네요. 많이 지치고 힘들겠어요”
상상하고 꿈꾸는 상황과 다르게 힘들고 많은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을 알아차려 주고 격려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지금 지치고 힘든 본인에게 쉼과 위로를 스스로 해주면 좋겠어요. ‘나는 성실한 사람이다. 내가 심은 작은 나무들은 시간이 지나면 튼튼하게 자라날 것이다. 그럼 편안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올 뿐 아니라 멋지게 자란 나무들을 보며 뿌듯해질 것이다’라고 스스로 격려 해주세요. 지금 잘하고 있고 충분히 쉬어도 됩니다”
내담자는 인정받고 싶은 상황이었다. 본인이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걸 인정받고, 격려받고 싶었을 거다.
소방관 근무 20년 차 남성 내담자가 소담센터 힐링 프로그램 참석차 찾아왔다. 자녀들은 성장했고 아내와도 문제가 없다. 직장에서도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아주 평범한 40대 후반 남성이었다.
“삶에 대한 고민이나 문제가 없어요. 딱히 상담할 내용도 없고요” “그래도 오셨으니 가볍게 카드 상담이라도 해볼까요?” “제 속마음을 다 들키게 되는 건 아니겠죠?”
몇 문항의 질문지를 작성하면서 걱정 아닌 걱정의 말을 내뱉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문제가 있구나’
그가 걱정하는 선을 넘지 않고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는 돌을 짊어지고 빙산을 맨발로 오르는 그림 카드를 뽑았다.
“한 남성이 등에 무거운 돌을 끈도 없이 짊어지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빙산을 오르는데 너무 외롭고 힘겨워 보이네요. 누구와 같이 나눌 수도 없고 오로지 본인 혼자 감당해야 할 무게 같아 보여요”
한참 그림을 들여다보던 그는 붉어진 눈으로 아무 말 없이 센터를 떠났다. 본인의 마음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을 테고, 고민을 본인 혼자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만 눈앞에 놓인 카드가 꼭 본인 상황 같아서 마음이 복잡하고 쓸쓸했을 거다. 그러나 누군가와 이야기로 풀어본 적도, 그런 성향도 아닌 그는 본인이 처한 힘든 상황을 눈으로 보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 하며 자신을 다독였을 거다. 아니 그랬기를 바라본다.
그림카드는 상황을 대변하는 모습이기도, 본인의 마음 상태가 투영된 물체이기도 하다. 남성들은 후각과 시각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 사랑했던 사람의 향수 냄새를 평생 기억하고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에 자극받는다고 한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때 말보다 강한 건 눈에 보이는 것이다. 현재 상황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경험을 하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그 마음을 달래줄 수도, 희망을 심어줄 수도 있다.
상담은 결국 본인이 변화하는 과정에 같이 있어 주는 것이자 선택하는 순간을 지지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로 전달할 수 없는 것들을 그림으로 대신하는 방법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소담센터를 떠난 지금도 가끔 동료들이 타로를 봐달라고 하면 재미로 봐주곤 한다. 그러나 항상 정확한 해석보다는 희망적인 또는 미션으로 리딩해 준다. 타로를 접한 사람이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것보다는 미래가 오기 전까지 마음 편히 현재를 잘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다.
우린 과거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내가 있는 지금 여기에서 순간순간 행복하길 바라본다.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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