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항공기의 역사(1970년대: 헬리콥터 활용성 증대와 항공운송산업의 혁명)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하늘을 나는 비행체를 상상하면서 그린 스케치는 헬리콥터와 유사한 회전날개 형태를 띠고 있다.
물론 실제 현실적인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그린 건 아니지만 당시 헬리콥터(이하 헬기)와 같은 회전날개 비행 방식 또한 인류가 꿈꾸던 이상적인 비행체 중 하나였던 건 분명하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실제 많은 항공 선구자가 회전날개 형태의 비행체인 헬기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고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 헬기가 비행하고 활용되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먼저 비행기는 1903년 라이트 형제가 개발한 ‘플라이어’가 등장한 후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플라이어는 제어가 가능한 최초의 비행체다.
1907년에는 프랑스의 루이스 블레리오가 2m 높이, 30m 초도 비행(블레리오 5호기)까지 성공했다. 같은 시기 헬기의 경우 프랑스의 폴 코르뉴(1881~1944)가 고도 1m, 체공시간 20초의 초도 비행을 달성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후 비행기가 약 1년 만인 1908년 왕복 28㎞ 초도 비행(블레리오 8호기)에 성공하고 1910년대에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수천㎞를 비행할 수 있을 정도로 비행성, 안정성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과 달리 헬기는 비행기의 비행 기술만큼 진보하지 못했다.
헬기와 같은 회전날개 형태의 비행체는 수직 이착륙과 제자리 비행이 용이한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회전날개 사용은 이착륙을 위해 긴 활주로가 필요한 고정익 비행기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어 19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많은 항공 선구자가 개발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개발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고정날개의 비행기보다 공기역학적 계산이 어렵고 동체에 들어가는 부품 등 구조 또한 매우 복합했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전방 추력을 이용한 가속으로 만들어 낸 상대풍이 에어포일(주익)을 거쳐 양력을 생성한다. 양력을 이용한 비행 중에는 좌우 주익과 후면 수평 수직 미익의 타면 각도 조절을 통해 비행 방향과 자세 제어를 할 수 있다.
반면 헬기는 제자리 수직 이착륙을 해야 하는 특성상 추력과 양력의 방향이 같아 이륙한 순간부터 자세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양력을 생성하는 메커니즘 과정에는 헬기 상단 날개(블레이드)가 회전하면서 날개 회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동체가 회전하려는 반작용 현상과 헬기가 전후좌우 수평으로 이동하기 위해 블레이드의 회전축이 틀어지면 발생하는 자이로스코프 프리세션(gyroscope Precession) 현상 등 안정적인 비행 제어를 방해하는 여러 운동 현상이 있다.
따라서 그 현상을 이해하고 상쇄하는 기술을 개발할 때까지 다양한 노력과 여러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복잡한 비행 메커니즘으로 인해 많은 선구자의 노력에도 현대 방식인 헬기(VS-300)는 비행기보다 늦은 1939년이 다 돼서야 실용화됐다.
이후 지속적인 연구 개발을 통해 3년 뒤인 1942년 최초의 양산형 헬기(R-4)가 개발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6년에는 최초의 터빈(터보 제트) 헬기(SE-3130 알루에트Ⅱ)가 개발됐다.
안정된 비행 성능을 바탕으로 헬기를 본격 활용하기 시작한 건 1960년대 이후다. 초기 헬기는 활주로 확보가 어려운 환경에서 비행기를 대신할 수 있는 단순 근거리 수송 용도로 활용했다.
하지만 비행기의 이착륙(활주로)장 확보가 어려운 밀림과 같은 환경인 베트남전(1964~1975)에서 병력 수송이나 화물 운반 등의 헬리본 작전으로 확대됐다. 그 결과 전장에서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빠른 기동력과 배치 능력을 보여줬다.
당시 대표적인 헬기는 휴이라고 불리는 다목적 헬기 UH-1이다. 그렇다고 헬기가 만능이었던 건 아니다. UH-1은 강습 시 매우 취약했다. 적군의 지상 공격에 취약해 기관포와 건십을 장착 개량했지만 명중률이 낮고 비행 속도가 느려 적군의 지상 공격으로 격추당할 확률이 높았다.
이에 따라 공격형 헬기 개발을 신속히 추진해 UH-1을 일부 활용한 ‘코브라’라는 명칭의 AH-1G가 탄생한다. 이후 지속적인 성능 개량으로 AH-1은 후계기인 1983년 ‘아파치’로 불리는 AH-64가 개발ㆍ양산될 때까지 미국의 공격용 헬기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전쟁을 통해 비행의 성능과 기능이 향상된 헬기는 군사용 외 민간ㆍ공공분야에도 널리 활용성이 증대됐다. 특히 국내 공공분야에서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긴급 인명구조와 수색에 활용됐다. 당시 서울은 급격한 도시개발로 인해 고층건축물이 많이 늘어났지만 소방력이 그에 미치지 못해 고층건축물 사고 대응에 취약했던 시기다.
대표적으로는 1971년 12월 25일 충무로에서 발생한 대연각호텔 화재로 163명이 사망한 사건과 1974년 11월 3일 청량리 대왕 코너 상가 화재로 88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다.
하지만 전문 인명구조를 위한 소방헬기의 필요성이 대두된 건 1979년 4월 22일 서울 충무로에 소재한 라이온스 호텔 화재 사건이 발판이 됐다.
투숙객 5명이 사망하고 28명이 부상했으나 안타까운 건 사망자 중 두 명은 육군 소속 UH-1 헬기를 통한 구조 중 밧줄을 놓치는 바람에 상공에서 추락해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서울시는 주로 고층건축물을 대상으로 한 ‘대형화재예방종합대책’을 수립해 발표하는 과정에서 항공소방대 창설을 약속했고 1979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항공대가 헬기(500MD) 2기 도입과 함께 창설됐다.
이후에 소방항공대는 전국적으로 도입됐고 서울소방의 경우 2023년 7월 1일 자로 명칭이 소방항공대에서 ‘119항공대’로 변경돼 현재까지도 각종 재난 현장에서 인명구조를 위해 활약하고 있다.
헬리콥터는 인명을 구조한다. 그 역할이야말로 인류 비행의 역사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한 장이다. - 이르고 시코르스키(시코르스키 에어로 엔지니어링 설립자) -
이때 한 축을 담당했던 항공기가 바로 미국 제조사인 보잉에서 개발한 장거리용 대형 여객기이자 하늘의 여왕(Queen of the sky)이라고 불리는 보잉747(B-747)이다.
참조 THE AIRCRAFT BOOK 비행기 대 백과사전 https://biochemistry.khu.ac.kr/lab/?p=4660 https://m.ecomedia.co.kr/news/newsview.php?ncode=1065576101313612
서울 서대문소방서_ 허창식 : hcs119@seoul.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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