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아프리카로 튄 소방관의 퇴직 인생- Ⅴ

광고
서울대병원 PMC 유기운 | 기사입력 2025/09/02 [10:00]

아프리카로 튄 소방관의 퇴직 인생- Ⅴ

서울대병원 PMC 유기운 | 입력 : 2025/09/02 [10:00]

05. 카메룬 땅에서의 삶

금요일 퇴근 무렵, 창밖을 바라본다. 바로 집에 가기엔 하늘이 아까운 날이다. 어젯밤 억센 비가 가져온 하늘이다. 딱히 갈 곳이라곤 없다. 맑은 하늘에 천둥처럼 구급차 한 대가 야운데 응급의료센터 큐리(CURY, Centre des Urgences Yaoundé)로 밀어닥친다. 

 

큐리 구급차는 아니다. 곧이어 출동 나갔던 큐리 구급차가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그 차 꽁무니를 물고 따라 들어온다. ‘어떤 환자가 왔을까?’ 서둘러 내려갔다. 큐리 구급차에는 환자가 없었다.

 

어떤 여자가 운다. 그 울음은 아버지가 죽었을 때 내가 울었던 그 울음이었다. 바피아(Bafia)에서 온 구급차라고 했다. 구급차 안에는 장비도, 주 들것도 없었다. 

 

구급차 바닥에 어린 환자 세 명만이 가지런히 누워있는 게 얼룩진 창틈으로 보였다. 셋 다 열 살 남짓으로 보였다. 한 환자에게 수액이 두 개 달려 있고 구급차 문 쪽에 누워있는 소년은 호흡이 없었다. 간호사 한 명이 같이 타고 왔다고 하나 텅 빈 구급차 안에서 그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없었을 것이다. 

 

자식 잃은 어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차마 아이들의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3층에서 뛰어 내려온 그 짧은 시간만큼만 머문 구급차는 큐리와 붙어 있는 중앙병원으로 방향을 튼다.

 

야운데에서 127㎞ 떨어진 곳이라 족히 2시간은 달렸을 낡은 구급차는 구급차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천둥처럼 왔다가 고양이처럼 발걸음을 돌린다. 

 

▲ 야운데 밖 어느 도시에서 온 구급차

 

▲ 큐리에서 치료 후 택시로 퇴원하는 환자

 

야운데는 일곱 개 언덕(Seven Hills)의 도시다. 비가 갠 날, 키 큰 카메룬 나무들이 숲을 만든 언덕에 있는 동네는 부자들의 전원주택 단지 같다. 멀리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 보면 더러운 도시다. 

 

대중교통 체계도 없거니와 오ㆍ폐수 처리 시설도 없고, 도시 어디든 쓰레기장이 되고 공중화장실도 된다. 이 모든 도시의 때를 정부가 아닌 비가 씻겨 준다. 야운데는 비가 와야 멀쩡한 도시가 된다. 이 땅의 평범한 서민의 삶도 씻지 못해 꼬질꼬질한 얼굴 같다. 

 

▲ 큐리 사무실 창에 담긴 풍경

 

▲ 키 큰 카메룬 나무 밑을 지나 땔감을 지고 집에 가는 아이들


카메룬에는 행상이 많다. 없는 것 없이 다 판다. 신발과 옷, 사탕, 휴지, 수건, 그림, 음료수, 커피, 도자기, 애완동물도 판다. 재봉틀을 가지고 다니면서 옷을 수선해 주고 길거리에서 손ㆍ발톱 손질을 받을 수 있다. 신발 수선공은 1천세파를 받는다고 했다.

▲ 한 개 50세파 깨강정을 팔러 다니는 소년 행상

 

▲ 구두 수선 행상

 

야운데에는 병원 전 응급의료체계도 있는 듯 없다. 작은 택시가 구급차 역할을 한다. 골절 환자도, 중증 환자도, 독뱀에 물린 환자도 택시를 타고 병원에 온다. 이유는 딱히 없다. 택시가 구급차보다 빠르고 돈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카메룬 야운데 시민들이 구급차를 이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1510번 PHEOC(Pre-Hospital Emergency Operation Center)에 전화하면 PHEOC에서 병원에 연락해 구급차를 보내준다. 더 빠른 방법은 직접 병원에 구급차를 요청하면 된다. 

 

이는 물론 구급차 이용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 해당한다. 카메룬에서는 100세파, 한국 돈 240원에 30㎝ 바게트를 살 수 있다. 정부의 가격 통제 때문인지 이 빵만큼은 유난히 싸서 슈퍼에서 100세파 빵을 한 무더기씩 안고 가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카메룬, 적어도 야운데에서 말라비틀어진 사람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배 나온 사람이 많다. 몸이 이 역설을 증명한다. 밀가루, 플랑땅 같은 탄수화물을 팜유로 주로 튀겨 먹어서 그런가 싶다. 서민들의 칼로리 섭취는 높으나 균형 잡힌 영양 식단은 돈 많은 사람 이야기다.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민들이 그럭저럭 먹을 것과 생필품은 구해 살지만 전기나 의료, 인터넷 등 기본 서비스의 질과 접근성이 떨어지고 깨끗한 수돗물, 응급실 등 전문 진료 혜택은 어려운 나라가 카메룬이다. 

 

▲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환자. 경찰이 데려왔다고 한다. 가족하고는 연락이 안 된다.

 

▲ 뱀에 물린 환자. 정중식 박사님 도움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월급이 6만5천세파(약 16만원)인 사뮤 대원 하나는 최근에 말라리아에 걸린 아들의 치료비로 월급에서 1만5천세파(약 3만7천원)를 덜어내야 했다. 가족 중 하나가 아프거나 다치면 빠듯한 살림이 먼저 골병드는 게 카메룬이다.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가족마저 발길을 끊은 환자가 많다. 

 

큐리 의사로 오랫동안 봉사한 정중식 박사께서 후원하시는 큐리 코리안 펀드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언제쯤 정중식 펀드 같은 카메룬 응급의료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 

 

갑자기 집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사흘 동안. 수돗물이 끊기고 나서야 얼마나 물을 많이 쓰면서 살았는지 알았다.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인은 한 사람이 하루에 300ℓ의 수돗물을 쓴다. 집에서는 하루에 평균 190~200ℓ를 쓴다고 한다. 

 

하루 200ℓ면 내가 마시고 양치하는 데 사용하는 1.5ℓ 카메룬 생수 슈퍼몽 133개가 필요하다. 변기 한 번 내리는 데 8ℓ, 자기 전에 얼굴과 발을 씻는 데 아껴 쓰면 1.5ℓ, 아침에 양치질과 세수를 하는 데 못해도 0.8ℓ가 필요했다. 

 

머리를 감으면서 샤워하는 데 1.5ℓ 생수 3병이 들었다. 집에 물이 나오지 않아도 마실 물이야 사면 된다. 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물이 나오지 않으니 생리 현상도 검열하게 된다.

 

▲ 야운데 중앙시장

 

▲ 동네 우물가

 

김훈 작가님에 따르면 한국 사람은 하루에 똥을 200g, 오줌을 1.2ℓ 싼다. 사람이 먹고 싸는 문제가 간단하지 않음을 카메룬에 와서 알았다. 인간의 품위는 그 사람이 사는 사회의 기본 인프라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카메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길거리 노상 방뇨다. 길가에서 소변을 누는 사람이 많다는 것보다 그 행동의 자연스러움에 놀랐다. 여기선 굳이 타인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사람과 차가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똥을 누는 성인도 여럿 봤다. 

 

이상하게도 불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그 사람들의 그런 행동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여기 사람들이 품격 없는 행동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내게 카메룬 사람들은 순응과 체념으로 현실에 길든 것처럼 보였다.

 

사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오래 방치하면 그 환경이 사람의 품격마저 결정한다. 어떤 사회든 깨끗한 수돗물과 안정적인 전기, 오ㆍ폐수 처리 시스템을 갖춘다는 게 쉽거나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됐다. 

 

사람은 생각보다 환경의 영향을 훨씬 크게 받는다. 국적도 마찬가지다. 불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카메룬 사람들은 프랑스를 쉽게 가지 못하지만 불어를 못 하는 나는 프랑스를 여러 번 갔다 왔다. 

 

오늘도 우리 동네 꼬마들은 늦은 오후가 되면 자기 나이에 맞는 플라스틱 통을 들고 물을 받으러 갈 것이다. 이래저래 누군가에게 ‘헬조선’이라는 내 조국 대한민국이 그리운 하루다.

 

 


 

유기운

서울에서 생계형 소방관으로 30년 근무했다. 현재 소방관 인생을 마무리하고 갑자기 아프리카로 튀어 카메룬 야운데에서 코이카 병원 전 응급의료체계(EMSS) 구축 프로젝트 현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PMC_ 유기운 : waterfire119@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119플러스 정기 구독 신청 바로가기

119플러스 네이버스토어 구독 신청 바로가기

아프리카로 튄 소방관의 퇴직 인생 관련기사목록
광고
[기획-러닝메이트/KFSI]
[기획-러닝메이트/KFSI] 고객 요구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 제공하는 ‘고객관리과’
1/6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