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합의서를 조인하기 전에 필자는 일본의 전국방재협회를 두 번에 걸쳐 방문하여 방재관련 협력방안을 제안하고 협의한 바 있었다. 전국방재협회는 50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며 태풍, 홍수, 화산, 지진 및 해일 등 자연재해관련 사항에 대하여 상당한 수준에 있으나 한국방재협회(이하 당 협회라 한다)는 설립한지 불과 6년밖에 되지 않은 미흡한 상태여서 일본의 협회에 비하면 상대할 수 없는 정도의 차이가 있었으나 필자가 주일한국대사관 건설관으로 6년간 근무당시에 일본관계자들의 많은 도움으로 건설외교를 잘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연이 계속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어 일본관계자들을 잘 알고 있는 처지였다. 그동안 한일 양국간에 동 합의서 내용을 당협회 이삼희 국제교류위원장과 일본협회 이시이 세이로크(石井 征六)사무국장간의 실무자 선에서 충분히 검토되고 협의가 되어있는 상태에서 한달전에 일본방재협회 이시이(石井) 사무국장으로부터 일본에서 7월 26일에 동합의서 조인식을 갖자고 제의가 있어 쾌히 승낙하였다. 필자는 한국에서 조인식을 가지려고 희망했으나 일본의 방재협회 진노우치 타가오(陣內 孝雄)회장은 국회의원이고 현재 우정성 민영화 추진위원장으로서 상당히 중요한 직책을 맡았고 이러한 민영화에 따른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아 국회일정이 연기된 상태여서 매우 분주한 탓으로 한국에 나올 처지가 못되었으며, 우리측 입장도 수집한 방재관련 자료를 될 수있는 한 빠른시일내에 번역하여 관계기관과 회원들에게 정보를 전파하여야 하는 것 등에 따른 출판에 관한 지적소유권 분쟁이 있는 것을 피하려면 합의서 조인을 어디에서 하던 간에 빠른 시일내에 해야 한다는 실정이었다. 한국대표단 구성과 관계기관 방문일정은 추후 결정하여 통보하기로 하고, 대표단 구성은 우선 국제교류위원장을 포함한 회장단으로 결정하였다. 이삼희 국제교류위원장은 부회장들과 상의한 결과 이원찬 부회장은 본인 회사관계로 참가하기가 어려워서 불참하기로 하였고, 김동복 부회장은 회사 노동쟁의로 어려운 실정에 놓여있어 본인이 직접 사주에게 양해 얻기가 곤란한 실정이어서 필자가 신동수 회장에게 협의 요청하여 참석하기로 하였고 찬조금도 협조받기로 하였다. 서병하 부회장은 대학이 방학 중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있어 참석하기로 하였으나 이삼희 국제교류위원장은 건설기술연구원에 근무하고 있어 논문발표 및 연구‧조사와 관련이 없는 경우에 외국출장이 불가하여 그대신 필자의 아들 박재만 군에게 부탁하였다. 박군도 자기 사업에 분주하여 참석하기가 곤란한 처지였으나 어쩔 수 없이 국제교류 부위원장 자격으로 강제로 참석시켜 통역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한국대표단은 필자를 포함하여 부회장 2명, 부위원장과 주일한국대사관 김규춘 건설교통관, 쯔쿠바 소재 독립행정법인 토목연구소에서 박사학위 과정에 수학하고 있는 김돈수 건설교통부 국장 등 6명으로 구성하고 보니, 일본측 대표단과 조화있고 형편이 맞는 것 같았다. 일본측 대표단은 진노우치(陣內)회장(국회의원), 와키(脇)부회장(국회의원), 세토(瀬戸)부회장, 사사키(佐々木)이사, 가또(加藤)이사, 이시이(石井)사무국장 등 6명으로 구성하고 옵서버로 국토교통성 세이지(清治)하천국장이 참석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관계기관 방문일정도 출국 3일전에 결정되어 당 협회에 통보되어 동합의서 조인식을 거행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당 협회는 동합의서 문안작성과 방문기관에 따른 선물 등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김'의 선물보따리가 크고 해서 당협회 사무국 성규식 과장에게 출국하는 아침에 김포공항으로 선물을 삼등분해서 가져오도록 하고, 부회장들에게 만날 시간과 장소를 통보하도록 하였다. 필자는 출국하는날 새벽 일찍 일어나 기공수련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방을 챙겨서 박재만군과 함께 김포공항에 가기 전 승용차 정비공장에 들려서 정비토록하고 약속한 시간에 일행들과 합류하였다. 출국수속을 순조롭게 밟고 탑승대기실에서 잠시 쉬는 동안에 박경환 선배의 아들 박태진 군을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박군은 jp morgan증권회사 서울지점장으로 일본에서 개최되는 회의참석차 동경으로 가는 항공기에 함께 탑승하였다. 그는 박재만군이 고등학교 시절에 수학을 가르쳐 준 좋은 인연이 있는 친한 사이였다. 그와 박군이 정담을 나누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한편 이번 동 합의서 조인은 한일 양국간의 민간방재분야 교류의 역사적인 의미가 크므로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기원하다보니 하네타 국제공항에 도착한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무사하게 도착하여 입국수속과 선물꾸러미를 찾고 세관을 통과하려는데 덩치가 큰 선물보따리 한 개를 x-ray로 조사하였지만 별 탈 없이 통과해 나왔다. 점보택시를 불러타고 메그로(目黑)소재 프린세스 가든(princess garden)호텔에 편하게 갔다. 여정을 풀고난 후 호텔로비에서 만날 약속시간에 일본방재협회 이시이(石井)사무국장이 우리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그는 우리일행을 내각부 방재담당 대신관방 심의실로 안내하여 다게타 후미오(武田 文男)심의관을 비롯한 관계관을 예방하였다. 그들은 동경에서 지난 주말에 진도 6도의 지진이 발생하였고 현재 태풍 7호가 일본열도에 접근중이어서 상당히 분주하였으나 우리일행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마쯔카 신지(松家 新治)총괄 참사관 보좌가 일본의 방재현황을 친절하게 설명을 하기도 하고(사진1참조) 6월말에 출판된 2005년 방재백서를 선물로 주었다. 필자는 한국에서 가져간 선물을 심의관을 비롯한 관계관에서 주고 내각부에서 나왔다. 일행들은 환영만찬 전야제가 개최되는 신바시(新橋)소재 북해도 신바시 4정목점으로 가고, 필자는 한일터널 연구회 사무소에 들려 이나타(稲田)사무국장과 한일해저터널 모형을 경기도 의왕시 소재 철도박물관 유물전 전시 및 상설전시 관련 설치 등 업무협의를 하고 환영만찬장으로 갔다. 환영만찬 전야제에 참석한 일본측에는 국토교통성 하천국 방재과 다무라(田村)방재조정관을 비롯한 협회 사무국 직원 등 7명이며 한국측에는 5명 계 12명이 모여 한일 양국간의 우호를 다짐하는 즐거운 밤을 지냈다.(사진2,3참조)
다음날 아침에도 일찍일어나 기공수련을 하고나니 상쾌하였으나 태풍7호가 닥쳐온다는 날씨에 걱정이 되었다. 일행들은 국토교통성 정문에서 일본방재협회 이시이(石井)사무국장과 김규춘 건설교통관을 만나서 이시이(石井)사무국장이 방재과로 안내하여 미야 모토(宮本)과장과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방재센타로 갔다. 사또 세이니(佐藤 清二)재해대책실장은 상황 비디오로 현제 접근해오고 있는 태풍 7호에 대한 상황을 설명하였다.(사진4,5참조) 태풍 7호는 아침 tv뉴스에는 대형태풍이 올것으로 예보했으나 그렇게 큰 태풍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센타에서 실시간으로 현지상황을 볼 수 있는 것은 전국재해지구 13,000개소에 cctv가 설치되어 있고 또한 헬리곱터 7대가 운영되고 있으므로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방재센타를 시찰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오지 않고 약간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조금 불어서 다행이었다. 황궁인근에 있는 유명한 히비야(日比谷)공원 내 녹음이 우거진 숲에 있는 유서깊은 마쯔모토류(松本樓 : 사진6참조)에서 이시이(石井) 사무국장을 비롯한 직원들과 함께 프랑스 요리로 오찬을 즐겁게 하고 다시 국토교통성으로 갔다. 일정대로 이와이 구니오미(岩井 国臣) 부대신을 예방하니 반갑게 우리일행을 맞이하면서 오늘 동합의서를 조인하게 된 것을 축하해 주면서 금후에도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여 줄 것을 당부하였으며 시간이 허용되면 한국에 꼭 방문하고 싶다고 피력하였다. 필자는 이와이 부대신의 넓은 이해와 협조로 동합의서가 조인되도록 협조하여 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향후에도 한일 양국간의 방재기술 및 정보가 더욱 활성화 되고 양국간의 우호가 돈독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어서 쯔지야 아키오(土屋 彰男)하천국 차장과 세이지 마사도(清治 真人)하천국장을 예방하고 일본방재협회로 갔다. 김돈수 국장이 이미 와 있어서 한국측에는 필자를 비롯한 6명과 일본측에는 세토(瀬戸)부회장, 가또(加藤)이사, 이시이(石井)사무국장, 가쯔타(勝田)차장 등이 참석하여 양국간에 동합의서를 항목별로 대조검토를 하는데 서병하 부회장이 합의서 내용 중 부흥이라는 용어 자체를 이해할 수 없고 현재 잘 사용하지 않은 용어이므로 개량복구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서 일시적으로 긴장이 감돌았으며, 용어사전을 비교, 검토 하면서 이해가 되어 무마되었다.(사진7,8참조)
양국 대표단이 상호 검토된 합의서가 문안대로 통과가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가즈미가세키(霞が関)빌딩 33층 동해대 교우회관으로 자리를 옮겨서 역사적인 동 합의서(별지 참조)의 조인식을 가졌다. 교우회관 별실에 마련된 조인 행사장에는 책상위에 양국의 국기가 나란히 놓였고 동합의서도 나란하게 놓인 앞에 필자와 진노우치(陣內)회장과 나란히 앉는 모습자체가 감개무량했다(사진9참조). 양쪽에 양국대표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시이(石井)사무국장의 사회로 시작된 조인식은(사진10,11참조) 일본측에서 먼저 동합의서의 일문을 이시이(石井)사무국장이 낭독하고 이어서 서병하 부회장이 동합의서 국문을 낭독을 하고 난 후 진노우치(陣內)회장이 먼저 동합의서 회장 성명에 서명을 하고 다음에 필자가 동합의서 성명에 서명을 하므로 역사적인 조인식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다.
양국대표가 우호의 악수를 교환하고 이어서 역사적인 조인을 축하하고 양국의 발전과 활성화를 위하여 축배를 들었다.(사진16,17참조) 동합의서 조인식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옆방에 마련된 만찬장으로 옮겨서 양국대표단이 나란히 앉고 먼저 진노우치(陣內)회장이 역사적인 조인식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된 것을 축하하고 앞으로 더욱 활성화가 기대된다는 환영만찬사에 이어 필자는 깊은 이해와 협조로 조인식을 마치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앞으로도 양국간의 방재분야가 더욱 발전되고 우호증진에 기대가 된다는 답사에 이어서 국토교통성 세이지(淸治)하천국장이 조인식을 축하하는 건배제의가 있었다.(사진18,19,20,21참조)
만찬장은 양국간의 우호적인 분위기로 화기애애하였으며 국회일정이 바쁜관계로 진노우치(陣內)회장과 세이지(淸治)하천국장은 만찬 도중에 나갔다. 그러나 국회의원인 와키(脇)부회장이 주제로 하여 장시간 동안 정담을 나누었다. 와키(脇)부회장은 국토교통성 출신으로 한국에 몇 번 다녀간 친한파이며 필자와 그 전부터 친한 사이였으므로 아름다운 옛 추억을 되새기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태풍7호도 역사적 조인식을 축하하는지 일본열도에 접근하지 않고 그냥 스쳐나가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농담으로 한국대표단이 일본에 상륙해 있으니 대형 태풍은 우리가 있는 동경을 피해갔다는 농담을 하여 한바탕 웃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진 우리 일행은 호텔로 돌아와서, 집이 쯔쿠바에 있는 김돈수 국장도 함께 동경에서 자기로 하고 시내 변두리에 있는 “히마즈부시” 스나크에서 저녁 늦게까지 자축으로 즐거운 밤을 지냈다. 필자가 10여년전에 한번 가본 적이 있는 스나크는 변함없이 한곳에서 그대로 경영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경의 밤은 깊어만 갔다. 새벽1시경에 숙소방에서 김돈수 국장과 함께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기공수련을 하고나니 어제저녁에 많이 마셨던 술탓에 취한 것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일행들은 동경역에서 가쯔타(勝田)차장과 김규춘 건설교통관을 만나서 쯔쿠바행 버스 타는 행열이 쭉 늘어서 있어 약 반시간이나 기다리다가 탑승하였다. 쯔구바가는 동안에 버스내에서 푹 쉬었더니 상쾌하였다. 쯔구바에 도착하니 미인인 김돈수 국장 부인이 반갑게 맞이하며 우리를 토목연구소까지 바래다주었고 저녁 답례연에도 김국장이 참석차 동경에 함께 가겠다고 하고 부인과 헤어졌다. 일행들은 독립행정법인 토목연구소 사가모토 다다히코(坂本 忠彦)이사장을 예방하였다. 그는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고 한강, 낙동강 유역조사차 몇 번이고 한국에 방문했다는 것을 우리말로 유창하게 인사와 더불어 설명하여 주어서 더 친근감이 있었다. 독립행정법인 토목연구소는 토목기술에 관한 조사, 시험, 연구 및 개발과 병행한 지도 및 성과보급 등을 행하는 것 보다 토목기술 향상과 양질의 사회자본의 효율적인 정비 추진을 목적으로 한 독립행정 법인으로서 국토교통성 토목연구소에서 개조되어 2001년 4월에 발족했다. 독립행정법인은 국민생활 및 사회경제 안전 등의 공공적인 견지에서 확실히 실시되어지는 필요한 사업 및 사무에 있으며 정부자체가 주체가 되어 직접 실시할 필요가 없이 민간에게 위탁할 경우에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독립되어진 법인 격을 갖는 조직이다. 토목연구소는 정부의 기관으로서 80여년의 긴 역사를 가지면서 토목기술의 발전 향상에 공헌해 왔으나 이러한 전통이 있는 기술을 계승하기 위하여 독립행정법인 제도의 취지를 살려서 보다 효율적이고 질이높은 연구개발을 실시하고자 한다. 조직으로는 이사장밑에 이사, 감사, 비상근 감사, 연구조정관, 특별조정관, 지질관을 두고 부서로는 총부부와 기획부가 있고, 기술추진본부와 7개 연구 그룹(재료, 지반, 지진, 수환경, 수공, 토사관리, 기초도로기술, 구조물) 및 유네스코(unesco)센타 설립 추진본부를 두고 있으며 지방에 눈붕괴, 산사태 연구센타와 자연공생연구센타가 있다. 직원은 219명이며, 151명이 연구직, 65명이 일반직, 임원 3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예산은 58억엔이다. 중점 사업연구로서 안전확보에 관한 연구개발 4건, 양호한 환경 보전ㆍ복원에 관한 연구개발 5건, 사회자본 정비의 효율화에 관한 연구개발 5건 계 14건의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나가노 마사노리(中野 正則)기획부장이 토목연구소 현황을 팜플렛에 의해 설명해주었다. 설명이 끝나고 사가모토(板本)이사장은 국토기술정책종합연구소 하마구치(浜口)소장실로 안내하고, 소개하여 주었다. 하마구치(浜口)소장도 일행을 친절하게 맞이하고 연구소에 관하여 설명하여 주었다. 국토기술정책 종합연구소는 2001년 4월에 토목연구소, 건축연구소, 항만ㆍ공항 연구소에서 독립행정법인제로서 각 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그 외 토목, 건축, 항만, 공항분야를 총 망라한 기술정책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로 발족했다. 조직으로 소장 밑에 2명의 부소장, 연구총무관을 두고, 부서로 13개부(총무, 기획, 관리조정, 환경연구, 하수도연구, 하천연구, 도로연구, 건축연구, 주택연구, 도시연구, 연안해안연구, 항만연구, 공항연구)와 3개 연구센타(종합기술정책, 고도정보화, 위기관리기술)를 두고 있으며 인원은 400명이며 254명의 연구자와 136명의 연구지원자로 구성되었다. 사업연구 23건 중 방재와 관련된 연구는 도시지역의 사회기반ㆍ시설의 방재성능평가, 재해경감기술의 개발이어서 소장에게 자료를 요청하여 추후 한국으로 송부하여 주겠다고 하였다. 하천부장은 그 전부터 잘 아는 분이어서 분위기가 좋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가쯔타(勝田)차장의 안내로 준비된 버스를 타고 사카모토(坂本)이사장, 하마구치(浜口)소장과 함께 일행들은 일본의 전통 음식점인 삼덕(三德)으로 가서, 오찬을 즐겁게 음미하면서 사카모토(坂本)이사장이 한국 방문했을 때 재미있고 즐거웠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오후부터는 사카모토(坂本)이사장의 안내로 내진연구시험동, 댐에 관련된 재료지반연구동, 해일관련된 해안연구동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내진연구시험동은 삼차원(수령, 연직)진동대로서 일본에서 두 번째 큰 시험장이며 현재 일반주택 2층을 실물크기로 시험대에서 실험하기 위하여 짓고 있었으며, 민간기업에게 임대해주고 있다고 하였다.(사진22,23참조)
댐에 관련된 재료지반연구동은 댐규모와 모양에 따른 수로규격 결정 등 여러 가지 수리시험을 하고 있었다.(사진24,25참조)
밀영시험해안 연구실에서는 모형물을 이용하여 해일이 발생할 경우 해안의 제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었다.(사진26참조) 시간관계상 3개의 연구시험동만 시찰하고, 사카모코(坂本)이사장이 저녁 답례연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동경으로 향했다. 쯔쿠바에서 동경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교통정체가 걸려서 시간도 많이 걸렸으나 답례연하는 '진로' 한국식당에는 여유 있게 도착하였다. 답례연은 우리일행이 일본에 체재중 이틀밤을 위하여 환영만찬회를 베풀어주신 분과 방재협력 합의서 조인을 성공적으로 이룩하는데 협조하여 주신 모든분을 위한 만찬이기에 한국식당에서 불고기와 소주로 대접하는 석식이다. 답례연에는 진노우치(陣內)회장과 와키(脇)부회장이 국회일정으로 참석 못하였으나 전 건설성기술차관을 지냈던 고사카 다타시(小坂忠), 곤도 도오루(近藤 徹)고문과 전 건설성 국장을 지냈던 야마기시 도시유키(山岸 俊之)사장, 현 국토교통성 부대신 이와이 구니오미(岩井 國臣), 하천계획과장 누노무라 아키히고(布村 明彦), 방재과장 미야모토 히로시(宮本 博可), 협회이사 가또 아키라(加藤 昭) 등 10명이 한국측에서 6명계 16명이 참석하였다.
필자가 일본측 여러분의 깊은 이해와 많은 협조로 역사적인 조인식이 끝난것에 대한 인사와 금후에는 한일양국의 방재분야 교류가 더욱 활성화 되고 우호증진을 기대한다는 환영사를 하고 이어서 이와이(岩井)부대신이 박경부회장의 열정과 추진력에 의하여 조인식이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졌으며 앞으로 한일간 협력을 하여 좋은 동반자로서 우호증진하는데 기대한다는 답사가 있었으며, 이어서 고사카(小坂)고문으로부터 한일양국간 협력합의서 조인에 대한 축하의 건배제의가 있었다.(사진27,28,29,30참조) 축제분위기속에서 정담을 나누면서 웃음꽃을 피우니 한층 더 흥미진진한 답례연이 되었다. 돌아가면서 술을 권하다 보니 밤은 깊어만 가고 만취가 되었다. 기분도 좋고 모든 일정을 대성공적으로 끝마무리하는 모습들은 감개무량하였다. 숙소에 돌아온 필자는 정신없이 쓰러져 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그 다음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공수련을 마치고 나리타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아침 일찍 호텔을 떠나야했다. 필자는 간밤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할 수 없는 상태여서 김동복 부회장에게 물어보니 만취가 되었지만 아무런 실수 없이 대 성공리에 답례연을 마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이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방을 챙기고 일행들은 택시로 우에노(上野)에 있는 경성선(京成線)sky line초특급을 이용하여 나리타(成田)국제공항으로 가서 순조롭게 귀국수속을 밟고 무사히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다음 해 단식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필자는 피로하였지만 협회로 갔다. 마침 유태용 초대회장이 계셔서 역사적이고 대성공리에 마친 한ㆍ일 방재기술 및 정보교류협력 합의서 조인을 한 결과를 자세히 설명하였더니 대단히 기뻐하시면서 격려해주셨다. 빠른 시일내에 방재청에 보고하려고 출장복명서를 작성하였다. 필자 자신이 생각해보아도 역사적으로 대단한 큰일을 했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기분 좋다. 만족한다.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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