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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국민 가까이에 섰던 수호자 고 정희국ㆍ이남재 소방관… “그들에겐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소방관 삶 지키다 하늘로 떠난 그들을 기억하겠습니다”
울산 북부소방서 농소119안전센터 고 정희국 소방장
전남 광양소방서 광양119안전센터 고 이남재 소방위

유은영 기자 | 기사입력 2020/07/20 [10:00]

[FOCUS] 국민 가까이에 섰던 수호자 고 정희국ㆍ이남재 소방관… “그들에겐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소방관 삶 지키다 하늘로 떠난 그들을 기억하겠습니다”
울산 북부소방서 농소119안전센터 고 정희국 소방장
전남 광양소방서 광양119안전센터 고 이남재 소방위

유은영 기자 | 입력 : 2020/07/20 [10:00]

소방관들은 오늘도 수많은 재난현장에서 목숨을 바쳐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현장에서의 피해가 고스란히 남아 지병 등으로 세상을 등지거나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119플러스>가 비록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대한민국의 국민 안전을 위해 힘써온 소방공무원들의 얘기를 지면에 담아 그들을 추모하고자 한다. 아직 그들에겐 국가와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제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그리고 안타까운 희생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동료 잃은 고통에 세상과 등진 고 정희국 소방관

정부가 지난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정희국 소방관의 죽음을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을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한 최초 사례다.

 

인사혁신처(이하 인사처)는 5월 20일 열린 고 정희국 소방관의 위험직무순직 심의에서 가결 처리했다. 인사처가 문재인 정권 기조에 맞춰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사안에 접근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는 해석이 이어졌다.

 

2019년 8월 5일 울산 북부소방서 농소119안전센터에서 근무 중이던 고 정희국 소방장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2016년 태풍 ‘차바’ 당시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고 강기봉 소방관의 생일 바로 다음 날이었다.

 

당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를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해야 하냐는 부분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무원재해보상법 제3조에 따르면 ‘위험직무순직공무원이란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가 재해를 입고 그 재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한 공무원을 말한다’고 명시돼 있다.

 

심의 쟁점은 과연 고 정 소방관의 죽음이 위험직무를 수행하다 입은 재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는가였다.

지금까지 소방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경우 일반순직으로 인정된 사례는 있었다. 그러나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969년 대법원은 직접적인 원인의 의미에 대해 ‘직접적인 사망의 원인은 의학상의 원인이 아니고 의학상의 원인을 야기하게 한 사회적인 원인’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상당 기간이 지나긴 했지만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한 최초 법적 판단을 제시한 중요한 판례다.

 

심의회에 유가족을 대신해 참석한 대한변호사협회(소방관법률지원단) 주어진 변호사는 이 판례를 논리로 심의에 참석한 위원들을 설득해 나갔다.

 

주 변호사는 “공무원재해보상법의 입법 목적은 공무원이 공무로 인한 질병이나 장애, 사망에 대해 적합한 보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며 “이때 입법자가 의도했던 적합한 보상은 유족들이 아픔을 딛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따뜻한 보상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사처의 결정도 이런 공무원재해보상법 입법 목적에 아주 잘 부합하는 판단이라고 생각해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고 정희국 소방관의 유족들도 인사처의 심의 결과를  반겼다. 유족은 “일반순직 정도만 해줄 거라 생각해 재심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믿기질 않는다”며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정 소방관의 마지막 근무지였던 울산 북부소방서 농소119안전센터의 조동현 센터장은 “희국이는 엄밀히 따지면 ‘차바’ 때 죽은 애다. 나머지 3년이란 세월을 버텼던 이유는 남겨진 두 딸과 세상 물정 모르는 집사람. 그 사람들 때문에 억지로 버텼던 거다”며 “그게 한계점에 와서 그런 선택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인정을 해줬다는 거에 대해 관계자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아버지를 생각할 때를 생각해보면 명예를 회복해 준 국가에 크게 감사할 것”이라며 “희국이 사건이 일어나고 센터 직원들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사건을 좋게 종결시키기 위해 내색 안 하고 버텨준 직원들에게도 고맙다”고 덧붙였다.

 

무엇이 그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았나?

고 정희국 소방관은 2016년 10월 5일 태풍 ‘차바’ 재해 현장에 출동했다. 구조출동 지령을 받고 이동하다 경유 한 곳에서 강이 도로로 범람해 차량에 두 명이 고립됐다는 구조요청을 받았다.

 

차량에 접근해 요구조자가 없음을 확인한 후 구급차량으로 돌아오다가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고 정희국 소방관을 비롯해 고 강기봉 소방관, 남신형 센터장 등 세 명의 소방관이 강한 물살에 전원 고립됐다.

 

이 사고로 고 강기봉 소방관은 고인이 됐고 살아남은 고 정희국 소방관은 ‘급성 스트레스 반응’과 ‘익사 및 비치명성 익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겪어야만 했다. 2016년 10월 5일을 시작으로 2019년 7월 5일까지 총 6회, 990일간 공무상요양승인을 받았다.

 

▲ 차량에서 발견된 메모

 

고 정희국 소방관의 휴대전화에는 ‘언제나 같이 죽거나 같이 살았어야 했다’는 메모가 남아 있었다. 2년 10개월간 당시 현장과 고 강기봉 소방관이 발견된 장소를 찾아다니며 잠시도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의 고통은 이 메모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고 정희국 소방관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며 죽음을 인지하고는 ‘둘째가 생각났어. 아, 둘째 앨범을 안 만들었네’라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하고 있다. 사건 이후 8개월 만에 자살 기도를 하면서 적은 차량에서 발견된 메모에는 ‘둘째 앨범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며 현장에서 죽음을 인지했을 때 했던 생각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내내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그의 글에는 ‘상담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극복을 위한 치료 실패’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 정 소방관 역시 ‘치료를 포기하기로 했다’고도 써놨다. 또 약의 부작용으로 ‘내 안에 다른 인격을 느꼈고…’ 등의 표현을 남겨 주변인을 안타깝게 했다.

 

그토록 원하던 동료 곁 갈 수 있을까

고 정희국 소방관은 인사혁신처의 결정으로 위험직무순직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고 강기봉 소방관 곁에 묻히는 일이다. 그가 국립현충원으로 갈 수 있을지, 국가유공자로 등록될 수 있을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 고 정희국 소방관의 개인사물함

 

인사혁신처의 위험직무순직 결정과는 달리 이 두 가지 사안은 국가보훈처에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는 국립묘지별 안장 대상자로 ‘화재 진압, 인명 구조, 재난ㆍ재해 구조, 구급 업무의 수행 또는 그 현장 상황을 가상한 실습훈련과 소방지원활동, 생활안전활동 중 순직한 소방공무원, 일정 조건의 상이등급을 받은 소방공무원으로서 사망한 사람’을 안장 대상자로 명시하고 있다.

 

고 정희국 소방관은 현장 활동 중 사망한 게 아니여서 법률적으로만 판단 시 국립현충원으로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소방조직에는 분명한 선례가 있어 희망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2018년 4월 2일 구급 활동 중 취객으로부터 심한 폭언과 폭행을 당한 후 급성 뇌출혈 증세를 보이다 결국 숨을 거둔 고 강연희 소방관의 경우 사고 29일 뒤 사망했으나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영면하게 됐다.

 

같은 해 5월 10일 동료소방대원들과 ‘서 단위 종합전술훈련’을 받고 집에 돌아와 씻기 위해 물을 받던 중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한 고 이정렬 소방관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이들 모두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받기 전 난관이 적지 않았다. 훈련이나 구급활동을 위험직무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며 위험직무순직 인정 자체가 어려울 거라는 부정적 시각도 많았다. 국립현충원 안장과 국가유공자 결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인사혁신처는 폭넓은 시각과 유연한 해석으로 이들 모두를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했고 국가보훈처도 긍정적인 해석을 내려줬다. 소방조직에선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안심하고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방관 직무 수행에 있어 큰 힘이 될 거라며 두 정부부처의 결정을 반겼다.

 

고 정희국 소방관 유족은 “인사혁신처에서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해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곧 진행될 국가보훈처의 심의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며 “남겨진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기억이 명예롭게 남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소방관 삶 살다 암 얻은 고 이남재 소방관

다발성골수종으로 고생하던 전남 광양소방서 광양119안전센터 이남재 소방위가 5월 22일 생을 마감했다. 급속도로 병이 진행되면서 공상 신청조차 하지 못해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1991년 1월 광양군ㆍ전남도 소속 기능직으로 공무원이 된 그는 1997년 1월부터 29년간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했다. 그간 전남 광양ㆍ순천ㆍ보성소방서에서 소방차 운전원, 화재진압 대원 등으로 활동해 왔다.

 

재직 초기 13년 동안 광양시 진월면 지역대에서 주로 근무한 그는 흔히 알려진 나홀로 지역대를 지켜왔다.

 

지원출동대가 도착할 때까지 소방차 조작과 화재진압을 혼자서 해야 하는 1인 지역대는 근무 여건이 취약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보호장구조차 챙길 겨를도 없이 현장에 출동하기 일쑤였다.

 

지난해 4월 직장건강검진 결과 폐 결절(CT) 소견을 받은 뒤 광양사랑병원에서 폐 CT 검사를 받고 폐렴의심으로 대학병원 검사를 권유받게 됐다. 평소 담배도 피우지 않고 가족력도 없던 그에겐 이해하기 힘든 진단 결과였다.

 

결국 광주전남대학병원을 찾은 그는 폐결핵 의심으로 입원검사를 진행했다. 폐 내시경 검사를 준비하던 중 혈액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돼 혈액 재검사를 했다. 혈액암일 수도 있다는 예비 판정을 받고 그날 바로 화순전대병원으로 갔다.

 

 
 

2019년 9월 19일 골수검사결과 다발성골수종 확정 판정을 받아야만 했다.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항암 등 통ㆍ입원 치료를 병행하며 힘겨운 생활을 이어왔다.

 

광양소방서 관계자는 “지난 29년간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해오면서 맞닥뜨린  유해화학물질과 외상 후 스트레스 등이 고 이남재 소방위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 생각돼 공무원연금공단에 공상 순직을 신청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소방청 복지계 관계자는 “순직 신청 시 필요한 의학적 지원이나 법리해석 등 입증지원프로그램을 통해아낌없이 지원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한편 고 이 소방위의 큰아들 이정현(29)씨는 2019년 4월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현재 전남소방학교에서 기본 교육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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