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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기고] 2025년 한여름 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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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중부소방서 남산119안전센터 소방위 배기범 | 기사입력 2025/08/26 [17:05]

[119기고] 2025년 한여름 밤의 꿈

대구중부소방서 남산119안전센터 소방위 배기범 | 입력 : 2025/08/26 [17:05]

▲ 대구중부소방서 남산119안전센터 소방위 배기범

살다 보면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필자에게는 2023년부터 2024년까지 2년간의 구급대 생활이 그랬다.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구급대원으로서의 경험, 그리고 지금은 119안전센터로 복귀해 근무하고 있기에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도 마치 먼 추억처럼 느껴진다. 그 소중했던 시간의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펜을 들어본다.

 

2005년 소방공무원 공채로 임용된 필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현장 부서에서 보냈다. 처음 발령받은 직할소방파출소(현 119안전센터)에서 필자는 구급대원의 모습을 보며 출동은 많지만 전문적이고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센터의 막내는 많은 일을 담당했다. 행정 업무에 적성이 맞지 않던 필자는 구급 운전을 하던 선임 직원이 건강 문제로 힘들어하자 곧바로 자원해 구급 업무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구급대원 생활로 소방사 계급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던 중 근무 8년째 되던 해에 타서로 발령받아 다시 센터의 막내이자 서무를 맡게 되면서 구급대원 생활을 잠시 멈추게 됐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2022년 말이 되고 연례행사처럼 1년에 두 번 있는 인사 이동 시기가 다가왔다. 희망 근무지를 보고하라는 공문이 내려왔고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구급대를 1순위로 신청했다. 예전 구급 운전을 하며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꼈던 경험, 그리고 아쉬움과 회한이 남는 출동들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밋밋하기만 한 일상에 자극을 줘서 진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며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구급 관련 자격증이 전무했던 필자가 과연 구급대에 발령받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급대에 발령이 나버렸다. 떠나기 전 센터에서나 구급대에 와서나 직원들이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은 한결같았다.

 

“근무 연수가 이렇게나 많은데 왜 굳이 힘든 구급대에 자원했냐?”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잠시의 대화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예전 구급차 운전하던 시절의 향수병이 다시 도진 것 같다”거나 “그냥 몸 쓰는 일이 좋아서”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그러나 십여 년 만에 다시 구급 업무를 시작하니 만만치 않았다.

 

첫째, 몸이 십 년 전의 몸이 아니었다. 추간판탈출증과 거북목 초기 증상이 있던 터에 환자를 들것으로 옮겨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온몸의 관절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게다가 예전보다 출동 횟수가 훨씬 많아져 낮밤을 가리지 않고 출동이 이어지면서 몇 달간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필자가 근무한 지역대(센터)는 출동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라는 것을 발령 후에야 알게 됐다.

 

둘째, 예상치 못했던 의료 대란이 벌어졌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으로 환자들이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기 어려워졌고 이로 인해 우리 구급대원들의 입장은 더욱 곤란해졌다. 환자를 병원 침상까지 인계하는 과정이 과거에는 ‘프리패스’처럼 순조로웠지만 이제는 현장에서 환자 상태를 평가한 후 태블릿으로 수용 가능한 병원부터 찾아야 했다. 여러 병원에서 수용 불가 사유를 미리 고지하기 때문에 대원들은 출근 후 가장 먼저 전용 앱을 통해 병원별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거쳐 한 건의 출동을 마무리하고 복귀하면 몸과 마음의 피로가 극에 달해 쉬는 날 온종일 몸이 찌뿌둥한 상태가 됐다.

 

이러한 고충이 있었지만 구급대는 긍정적인 변화도 겪었다.

 

첫째, 구급대원의 역량이 전체적으로 전문화됐다. 과거 2인 출동 시 구급대원은 대부분 2급 응급구조사 자격자였지만 지속적인 특별 채용을 통해 이제는 특수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3인 출동 체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응급구조사 1급이나 간호사 자격자로 선발된 전문 인력이 늘어나면서 병원 인계나 현장 응급처치 역량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로 인해 국민들의 구급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참고로 필자는는 아직까지도 구급 관련 자격이 없는, 이른바 ‘무자격자’다. 소방사 시절에는 전문 지식이 없어 답답함을 느끼고 미숙했던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의 전문화된 구급대를 보며 그러한 자책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둘째, 구급대가 독립해 조직의 특수성과 효율성이 높아졌다. 우리 지역은 구급대가 구조대처럼 따로 분리돼 있지만 전국적으로는 안전센터와 함께 운영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독립적으로 업무를 하는 것이 더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구급 서비스 제공에 이득이 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근무했던 서에서는 구급대장님을 비롯해 모든 대원이 서로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힘들어도 웃으며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지냈다. 또한 경조사가 있으면 함께 축하하고 위로하며 아름다운 공동체 모습을 보였다. 구급대의 독립이 이러한 단합을 가능하게 했고 더 일하고 싶은 직장,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직장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만약 예전처럼 구급대원이 센터장님의 지시와 관리하에 있었다면 센터의 잡무를 구급차가 처리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을 것이다. 물론 변화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이지만 우리 사회나 조직이 발전하려면 변화를 막거나 갈등을 조장하기보다는 단점을 줄여나가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방사 시절에 구급 업무를 경험하고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도 훌쩍 지나 다시 2년간의 구급대 생활을 해보니 이제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그 2년의 시간은 아무것도 모르는 미숙했던 필자를 다독여주며 이제는 많이 변했으니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때 필자가 했던 일들이 헛된 것이 아니라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었다고, 수고했고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준다.

 

그 2년의 세월은 유난히 더위가 길었던 2025년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련하게 느껴진다.

 

대구중부소방서 남산119안전센터 소방위 배기범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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