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국민이 보여준 우정 2일 차 아침 숙영지에 처음 보는 트럭들이 들어왔다. 튀르키예 재난ㆍ비상관리 당국 관계자라고 소개한 그는 위문품으로 생수와 빵, 컵라면 박스를 가득 내려주고 갔다. 피해 지역에 들어가는 위문품 같은 느낌이었다. 위문품이든 뭐든 우리도 물과 먹을 것이 필요했다.
컵라면이 왔다는 소식에 대원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잊지 않은 튀르키예 정부에 감사했다. 빵은 바게트와 난이었는데 큰 비닐봉지에 넣어 줬다. 비닐이 찢어진 빵들은 위생 문제로 폐기했다.
컵라면은 작은 컵으로 세 가지 맛이 있었다. 그중 유독 치킨 맛 컵라면이 인기 있었다. 튀르키예에 도착해서 첫 끼로 그 컵라면을 먹은 대원들도 있었다. 대원들 사이에서 즉석밥과 함께 먹으면 맛있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이번 지진으로 튀르키예 정부에서는 81개 주 가운데 지진 피해가 없는 주에서 지진 피해가 있는 주를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타이주는 81개 주 중 북쪽에 있는 코자엘리주에서 지원받았다.
우리와 같은 숙영지를 편성하고 있는 재난ㆍ비상관리 당국이 알고 보니 코자엘리주에서 지원 나온 공무원과 인력들이었다. 숙영지를 함께 사용하면서 밤이 되면 모닥불을 피워 추위를 함께 이겨냈다. 서로에게 궁금한 게 있을 땐 짧은 영어와 번역기 애플리케이션으로 대화를 나눴다.
대부분 자신의 직업과 자신이 하는 일, 여자 친구 이야기를 많이 했다. 튀르키예 사람들 대부분은 사교성이 좋고 배려심이 많았다. 총영사관 관계자가 “튀르키예 사람들은 계산적이지 않다”고 말해줬다. 우리나라처럼 내가 밥을 한번 사면 상대방이 한번 사는 사고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좋은 사람에게는 다 퍼주지만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안타키아에 도착한 날부터 우리에게 없어선 안 될 것이 하나 생겼다. 바로 깡통 모닥불이었다. 영하의 기온에서 유일하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선물이었다. 잠들기 전 모여 몸을 녹일 수 있고 운영반과 물류반이 밤새 숙영지를 지키는 동안 든든한 친구가 됐다. 튀르키예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24시간 중 20시간 이상 불을 피워야 했다. 그러다 보니 숙영지 주변에서는 태울 수 있는 것들은 다 태웠다. 친해진 튀르키예 동생들에게 장작이 필요하다고 하니 픽업 차량으로 한가득 가져다준 일화도 있다.
튀르키예는 홍차를 많이 마시는 나라다. 코자엘리주에서 지원 나온 공무원의 숙영지 한 칸 휴게실에는 홍차를 끓이는 기계와 관리하시는 분이 계셨을 정도다. 이라크 파병 때 많이 마셔본 경험이 있는지라 찾아가서 한 잔을 부탁했다. 멋쟁이 콧수염의 할아버지가 웃으시며 차를 내주셨다.
그 후 모닝커피 대신 모닝 홍차를 자주 마셨다. 우리 대원들이 그 앞을 지나가면 홍차를 권하기도 했다. 홍차를 담당하시는 분과 영어로 의사소통은 되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빛과 마음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기에 그걸로도 충분했다. 나중에 그곳에 튀르키예 국기를 달아 놓으셨는데 우리가 태극기를 선물로 드리자 튀르키예 국기 옆에 태극기를 함께 걸어 두셨다.
우리가 떠날 때도 물품을 화물차에 적재해 줬다. 떠날 때 우리는 남은 등유와 휘발유, 핫팩을 선물했다. 안타키아 대부분의 주유소가 문을 닫아 기름을 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기름을 선물로 드리며 그간 도와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도 함께 전했다.
수색ㆍ구조 2일 차에 한 명의 튀르키예 젊은 남자가 찾아왔다. 처음엔 경계심을 가지고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이스탄불에서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어요. 튀르키예를 위해 영어 통역 봉사를 하러 왔습니다. 함께 온 봉사자는 차가 있어서 기동도 가능해요”
우린 통역이 절실했고 차량도 부족한 시기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행운이었다. 그는 구조반과 함께 현장에 출동해 통역을 지원해 줬다. 게다가 매일 2회 참석하는 UCC 회의장까지 자신의 차량으로 데려다 줬다.
다음 날 또 한 분의 중년 남성이 찾아왔다. 그분도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그분에게 숙영지에서 머무르며 현지 주민이 찾아와 구조 요청을 하면 통역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현장 지휘소가 너무 좁아 앉을 자리가 없어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자신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며 농구 골대 쪽에 있겠다고 했다.
그분은 며칠 동안 농구 골대 아래에 앉아 계셨다. 우리가 식사를 권해도 거절했다. 그러다 밤이 되면 사라지고 아침에 또 나타났다. 어디서 자고 먹는지 물어볼 시간도 없었다.
총영사관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현지 통역인이 지원되기 전까지 해외긴급구호대를 위해 고생해 주셨다.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는데 훗날 다시 만날 기회가 된다면 그때 정말 고마웠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수색ㆍ구조 활동 5일 차에는 이스탄불에서 한식당을 운영하시는 재외국민 한 분이 찾아오셨다. 당시 지진 피해로 도로망이 파괴돼 앙카라에서 안타키아까지 오는 데 12시간 이상이 걸렸다.
사장님은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튀르키예까지 왔는데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정성스럽게 만든 불고기와 따뜻한 쌀밥, 그리고 그리운 김치를 가지고 그 먼 길을 달려오셨다.
4일간 즉석밥과 라면만 먹다 보니 소화가 잘 안 됐다. 변비가 생긴 대원도 있었다. 단백질 보충을 전혀 하지 못해 힘이 없다는 대원도 있었다. 불고기와 쌀밥, 김치는 그런 우리에게 큰 힘이 됐다. 121명이 두 끼를 행복하게 먹었다.
식사 중에 대원들끼리 훗날 앙카라를 방문하게 되면 이 한식당에 가서 밥을 먹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연락처도 주지 않고 조용히 사라진 사장님께 해외긴급구호대 전 대원을 대신해 감사 인사를 올린다(2024년 3월 30일 YTN ‘글로벌 NOW’ 프로그램에서 사장님을 뵙게 돼 책을 내기 전 성함을 알 수 있었다. 김아람솔 사장님 감사합니다).
우린 하타이주 안타키아에서 임무를 종료하고 안전지역인 아다나주 내 가장 큰 도시인 아다나에서 개인 정비 후 귀국하기로 했다. 버스로 3시간쯤 이동해 도착한 아다나는 지진과 전혀 상관없는 평화로운 도시였다.
도로가 좁고 차량이 많아 숙소까지는 버스가 진입하지 못했다. 큰 길가에 내려 개인 가방을 챙겨 숙소로 걸어갔다. 우리의 주황색 옷이 현지 주민의 눈길을 사로잡았는지 길거리 카페에서 커피와 식사를 즐기던 누군가가 소리를 쳤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해 줬다. 솔직히 그때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그냥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에 도착하니 숙소 관계자가 갑자기 우리에게 카네이션을 한 송이씩 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1만㎞ 떨어진 아시아 동쪽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튀르키예의 지진 피해 대응을 위해 단숨에 달려왔고 자국민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임을 우린 알 수 있었다.
지진 피해 지역 주민이 안전한 아다나로 몰리면서 숙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구한 숙소에 도착했을 땐 체크아웃하는 시간과 겹쳐 로비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때 중년의 여성들이 다가와 대한민국 구조대가 맞냐면서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사진 촬영 후 그들은 “튀르키예 사람들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가족 여행 중인 아이들과도 사진을 찍었다. 부모가 아이들을 대신해 대한민국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조금 전까지 피곤했던 몸과 마음이 튀르키예 사람들의 감사와 환대로 충전되면서 피곤함이 사라졌다.
저녁 식사 후 생필품을 사기 위해 숙소 인근 마트를 방문했다. 물건을 고른 후 계산대에서 기다리는데 한 할머니께서 다가오셨다.
“대한민국 구조대가 맞나요? 너무 고마워서 제가 다 계산하고 싶어요” “저흰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이렇게 형제의 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오히려 감사드려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니는 덩치 큰 구조대원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셨다. 구조대원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자 마트 계산대는 눈물바다가 됐다. 마트 내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박수와 환호를 보내줬다.
그날, 그 시간,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대한민국과 튀르키예는 형제의 나라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의 진짜 힘은 사람이 사람에게 감동을 줘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우리 구조대원들의 헌신적인 구조 활동이 튀르키예 국민을 감동시키고 그 감동의 힘이 대한민국의 품격과 위상을 높이는 것이다.
튀르키예 지진 7.8 <119플러스>를 통해 연재되는 ‘튀르키예 지진 7.8’이 동명의 에세이로 출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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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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