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다. 강원소방구조대에 몸담고 있는 직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테크니컬다이빙 기초 교육을 이수한 그 친구는 <119플러스> 2021년 8월호 ‘수중 들 것을 이용한 인양 훈련’에도 참가하는 등 평소 다이빙에 열정이 많은 직원이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와 내용만큼은 썩 달갑지 않았다.
통화내용은 이랬다. 당일 수중 실종 사고가 접수돼 수중수색 구조활동을 했는데 활동 도중 사고지점 인근에 있는 발전소의 냉각수를 빨아들이는 취수구에 본인의 몸이 반쯤 빨려 들어갔다는 거다. 말로만 들어도 아찔한 상황인데 본인조차도 그 당시 죽음의 문턱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 취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입구에 부착된 큰 섭1)을 잡아 버틸 수 있었던 그는 살아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위험 구간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얘기를 한참 듣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면서도 평소 아끼는 후배라는 생각이 앞서서일까? 한순간의 실수로 위험에 빠진 그 친구를 살짝 다그치기도 했다. 도대체 왜 그 위험한 곳으로 들어간 건지 물어보자 사전정보가 없어 그곳에 취수구가 있다는 걸 몰랐다고 답했다.
가까스로 수면 위로 올라온 그 친구는 실종자 또한 그 취수구에서 변을 당했다는 걸 직감했고 발전소 내에 있는 저수조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역시나 예상은 맞았다. 실종자는 화력발전소 내 육상 저수조에서 발견됐다.
생각보다 빈번한 취수구 관련 사고 취수구와 관련된 사고는 종종 발생하고 있으며 예후는 항상 좋지 않다.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을 해봐도 다수의 관련 사고를 찾아볼 수 있다. 최근 4년 새 있었던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그리고 오늘 전화로 듣게 된 내용. 또 취수구에서 사고가 일어난 거다.
취수구 사고가 발생하면 수중수색을 하는 구조대원들도 위험에 노출된다. 그래서 취수구 사고라고 판단되면 육상 저수조를 먼저 수색하는 게 유리하다.
부득이하게 수중수색을 해야 하면 취수구가 작동하지 않도록 가동을 멈춰야 한다. 반드시 취수구 작동 스위치가 있는 곳에 직원 한 명을 배치해 수중수색을 하는 동안엔 절대 취수구가 재가동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취수구 사고와 유사한 수중차압 사고 물을 빨아들이는 취수구뿐 아니라 이러한 유사 사고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산업 잠수를 하는 잠수사들에게는 델타-피(Delta-P, Differential Pressure)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수중차압이라고 한다. 이는 물이 고압 영역에서 저압 영역으로 이동할 때 발생하며 또한 동력 기계(예 펌프 또는 추진기)가 가동되면서 발생하기도 한다.
HSE(Health and Safety Executive), Differential pressure hazards in diving, 2009에 의하면 네 가지 유형의 수중차압이 거론된다.
1. 인접 지역의 수위가 다른 경우(예: 댐ㆍ운하 또는 갯벌)
2. 물이 수압보다 낮은 압력으로 병렬 배치됐는데 틈이 생겼을 때(예: 손상된 해저 파이프 라인, 속이 빈 수중 구조물 또는 선박 주변)
3. 취수구를 통해 기계적으로 물을 끌어올 때(예: 발전수, 냉각수 또는 선박에서 해수 흡입구)
4. 물이 추진기 또는 기타 유형의 방향으로 기계적으로 끌리는 경우(예: 선박의 프로펠라) 선박 프로펠러로 인한 사고는 자주 발생하는 유형이다. 프로펠러로 인한 사고를 필자도 단순히 물리적 사고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대형 선박의 프로펠러가 돌아간다면 그때 발생하는 압력의 차이로 몸이 빨려 들어가는 델타-피의 유형으로 봐야 하는 거다.
이 유형에서 알 수 있듯이 델타-피로 인한 사고는 수중에서뿐 아니라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발생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고가 2017년 3월 19일 정읍에서 남자 어린이가 목욕탕 배수구에 발이 빨려 들어가면서 사망한 사고다.
그렇다면 이러한 델타-피의 위력은 어떨까? 그 위력에 따른 위험성은 얼마나 될까?
HSE에서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의 흡입 압력에 관해 설명했지만 여기선 간단하게 계산하는 방법을 논하려고 한다.
경주 보문 저수지 취수구 사고 현장을 예를 들자면 수심은 5.5m였고 취수구 직경이 0.6m였다.
P(압력)는 물의 단위 중량(1천㎏)×수심이고 A(면적)는 취수구의 면적이다. 계산해 보면 흡입력=5.5m×1천㎏/㎥×0.2826㎡=1554㎏f가 된다. 여기서 0.2826㎡의 단면적 계산식은 π× r²=π×D²/4에서 나온 거다.
그리고 구조대상자를 꺼내려 한다면 1554㎏에 구조대상자의 몸무게까지 더해져야 하니 구조대상자가 60㎏이 나간다고 했을 때 1614㎏의 힘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수치상의 계산이고 실제로는 이보다 더한 힘이 있어야 취수구에서 빼낼 수 있다.
취수구 사고… 어떻게 구조해야 할까? 취수구 사고라는 의심이 든다면 먼저 ROV에 천 조각을 달고 투입해본다. ROV 영상만으로도 취수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취수구가 작동되고 있다면 위험지역으로 다가갈수록 천 조각이 취수구 방향으로 움직이므로 그걸 보고도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구조대원의 투입 시기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는 위에서 계산한 방식으로 계산해 그 이상의 힘을 가하고 빼내는 수밖에 없다. 또 취수구 근처의 실종자 수색에서는 [그림 4]와 같은 순서로 안전 절차를 따져 구조작업에 임해야 한다.
취수구 또는 그게 의심되는 사고에서 스쿠버용 잠수장비를 운용하면 기체의 제한이 있을뿐더러 통신이 되지 않기 때문에 표면 공급식 잠수장비보다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 그러므로 이런 곳에서나 의심 지역에서는 표면 공급식 잠수장비를 이용하는 걸 권장한다.
유난히도 덥고 치열했던 여름이 지나가고 몸도 마음도 느슨해지는 10월에 받은 전화 한 통이 또 다른 고민과 함께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기회가 됐다.
결론은 소방관으로서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건 우리의 필명이지만 더는 불필요한 희생이 없어야 한다는 거다. 필자의 작은 생각을 담은 글이 현장에서 활동하는 대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1) 홍합과의 조개. 껍데기의 길이는 10㎝ 정도이고 두께가 얇으며 실 모양의 분비물로 다른 물체에 붙는다. 식용하고 열대 이외의 전 세계에 분포한다(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독자들과 수난구조에 관한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 사건ㆍ사례 위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자 한다. 만일 수난구조 방법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e-mail : sdvteam@naver.com facebook : facebook.com/chongmin.han로 연락하면 된다.
서울 중부소방서_ 한정민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1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