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사주팔자 같은 ‘운명론적 결정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원치 않아도 살아오면서 타인들은 내 사주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간 거쳐온 거의 모든 사주쟁이는 한결같은 결론을 내렸다.
내 사주에는 물의 기운이 강한데 이렇게 물의 기운이 강한 사주는 자신의 사주 인생 역사상 처음이라는 말을 많이들 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뜨거운 여름은 싫은데 여름에 하는 물놀이는 좋아하고 화창한 맑은 날도 좋은데 땅이 촉촉히 젖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것도 ‘어느 정도 사주의 기운이라는 게 있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해 보곤 한다.
‘운명론적 결정론’을 믿진 않지만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개념엔 동의한다. 물이든 불이든 모든 자연계의 물질은 세력을 형성한다. 지구의 대기도 세력을 형성하고 그 세력이 어느 정도 모이느냐에 따라 비가 되기도, 태풍이 되기도 한다. 이는 물질뿐 아니라 ‘인간사’에도 적용된다.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주인이 되기까지 이 ‘세력화’ 능력은 호모사피엔스 생존의 승리 법칙이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세력의 대립에 의해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소방관들이 항상 접하는 ‘불’이란 녀석도 마찬가지다. ‘불’이 세력을 형성하고 그 세력이 커지거나 작아지면서 화재를 만들어낸다. 그러한 현장에서 소방관들은 ‘물’로써 세력을 형성해 ‘불’이란 녀석을 밀어내면서 그 불의 세력인 화재를 진압해 나간다.
이게 ‘화재진압’이라고 하는 작업이다. 단순히 ‘‘불’에다 ‘물’을 더한다’는 개념으로 화재에 접근했다가는 ‘불의 역습’으로 치명상을 입게 될 확률이 높다.
화재진압은 세력싸움이다. ‘화세(火勢)에 지지 않는 수세(水勢)를 만드는 것’ 이게 바로 화재진압 전술의 출발점이다. 이 ‘세력’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화세가 만들어내는 미궁 속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아진다.
이제 이 ‘세력’이란 개념을 화재 현장에 적용해 ‘수세 형성’ 방법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화재 현장에서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은 ‘포위’다. 화세를 수세로 가둬 섬멸한다. 섬멸 포위 작전은 전투사에서 위대한 승리를 가져오는 필승의 전법이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은 당시 헤게모니 전쟁인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5만 군사로 페르시아군 15만명을 이겼다. 이 전쟁으로 세계 패권은 마케도니아로 넘어갔고 알렉산더는 ‘대왕’ 칭호를 얻게 된다.
이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도입된 전술이 바로 포위 전략이다. 적군을 가둬 섬멸하는 이른바 ‘모루와 망치’ 전략이 이때 최초로 등장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승리는 언제나 포위전에서 발생했다.
또 다른 사례는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몽골의 위대한 정복자 칭기즈칸의 ‘망구다이’ 전술이다. 망구다이도 마찬가지로 기본 개념은 포위 섬멸 전술이다.
두 사례에서의 공통점은 ‘적보다 아군의 수가 적으며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적에게 치명타를 입혀야 한다’는 대전제 하에서의 전술이었다. 즉 비교적 안전(?)하고 효율적인 전술이 바로 포위 전술이라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
화재 현장에 이 포위 섬멸 전술을 적용해보려고 한다. 포위 섬멸을 하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조건이 따른다.
앞에서 계속 강조해온 원활한 수원 공급은 기초 중의 기초이니 이번엔 다루지 않겠다. 2번의 개구부 개방과 3번의 관창(노즐)의 입체적 배치를 위해 등장하는 아이템이 바로 ‘Tower ladder’, 즉 ‘고가소방차’다.
이제부터는 소방에서 사용하는 고소작업차량의 명칭을 ‘고가소방차’로 정의토록 하겠다. 그동안 대한민국 화재 현장에서 ‘고가소방차’는 인명구조용으로만 사용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고가소방차’로 인명을 구조하는 현장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오히려 ‘고가소방차’는 화재 현장에 있어 그 적용성이 매우 높다. 몇 가지 사례로 설명해 보겠다.
[그림 1]은 미국 아이오와주의 어느 한 공사장 화재 현장이다. 해당 현장은 보다시피 콘크리트 양생 작업이 완료되지 않아 지지대를 받쳐둔 상태다. 따라서 수관을 연장해 내부 진입으로 화재를 진압하기란 여간 어려워 보인다. 이 현장에서도 포위 작전의 개념이 그대로 적용됐다.
전면부에 ‘고가소방차’를 배치하고 물리적 법칙을 최대한 활용해 상부에서 하부로 화점에 정확히 방수하고 있다.
이 경우 알렉산더 대왕의 모루와 망치 전술처럼 전면부에서 방수하게 되면 화세는 반대편으로 밀려난다. 따라서 모루의 역할을 해주는 차단 역할의 ‘고가소방차’를 우측 후면에 배치한 걸 알 수 있다.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좌측 후면에도 고가차량이 배치돼 모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고가소방차’에서 뿌려지는 수세는 물리적 법칙에 따라 낙수효과가 발생한다.
1차원의 화재진압 전술이 비로소 3차원으로 발전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고가소방차’ 방수에서 얻을 수 있는 베네핏을 계산해 보자.
[그림 1]은 포위 섬멸(?) 전술의 전형적인 현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하좌우를 포위했기에 소방관의 진입을 통한 화재진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안전성은 증가하고 상부에서 직격으로 방수할 수 있어 화점에 정확한 타격이 가능해진다. 정확한 타격을 한다는 건 효율적이라는 말과도 같다고 생각된다.
보다 적은 인원과 장비 그리고 수원을 그만큼 절약할 수 있게 된다. 쉽고 편하다는 게 무엇보다 좋은 점이다. 쉽고, 편하고, 안전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또 그동안 선(line)상에서만 진행해오던 화재진압의 양상이 이제야 비로소 면(face)상으로 전환되면서 연소확대 가능성의 확률을 낮출 수 있게 된다. 선(line)상의 전술보다 더 유리해지는 거다.
또 다른 ‘고가소방차’ 활용 전술을 계속 사례로 살펴보자.
[그림 2]는 아파트 화재 현장이다. 아파트는 대한민국의 주거형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화재 또한 그 비율만큼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제시하라면 ‘옥내소화전’과 ‘고가소방차’ 전술, 단 두 가지만 제시할 거다.
아파트 화재진압 전술에 있어 ‘옥내소화전’은 절대적이기에 ‘옥내소화전 화재진압 전술’도 뒤에서 한 챕터로 다룰 예정이다. 이번 호에서는 ‘고가소방차’에 화력을 집중해 기술한다).
필자는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고가소방차’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무조건’이라는 무리수 때문에 소방 조직 내부에서 수많은 저항에 부딪히고 있지만 국민과 소방관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무조건’이라는 무리수는 화재 대응에 있어 절대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림 3]과 같은 형태로 아파트 화재가 발생한다. 소방차량에서 직접 쏠 수 있는 방수포가 닿기도 애매한 층이다.
실증을 거치지 않은 개인적인 판단으로 방수포는 10층 이하 층에 적용할 수 있다. 물의 무게와 소방차 펌프의 토출 능력상의 한계로 10층(약 30m)까지만 유효하게 방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는 현장에 출동한 모든 이가 이 현장에 “고가차량을 써야 한다” 또는 “고가차량이 쓰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하고 출동 직후부터 모든 현장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이게 소방내전 1편부터 줄곧 이어온 얘기의 핵심이다. 이를 두고 ‘체계’, ‘시스템’이라고 하는 거다.
일부 지휘관이 아무리 ‘시스템’을 외친다 한들 현장에서 활동하는 대원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시스템’적 대응은 이뤄질 수 없다.
예를 들어 아파트 앞면과 뒷면에 고가차를 전개해야 하는데 가장 먼저 도착한 소방차량이 진입로를 막는 배치를 하면 원초적으로 고가차량 전개가 불가능해진다.
여기서 그 현장 구성원들이 그러한 진입로와 퇴로를 막는 차량 배치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현장대응체계를 이뤄내기 위해선 시스템적 대응체계 중심의 소방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현장대응체계’라고 하면 소방의 모든 구성원이 현재는 지휘관급에서만 해당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조직 전반의 문화고 소방 역사 이래 줄곧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다.
따라서 소방관 신임자부터 최고위 지휘관까지 공감대가 형성돼야만 ‘시스템적 대응’이 완성될 수 있다. 지금의 체계는 현장지휘관과 현장 대원을 분리해 생각하기에 현장지휘체계 정립에 어려움이 많다. 사회학자들은 어느 한 국가의 문화가 바뀌기 위해선 대략 30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얼마 전 88올림픽 당시 우리나라의 시민의식을 다루는 영상을 봤다. 그때 우리나라의 시민의식 수준은 올림픽대로를 무단횡단하고 달리는 차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수준이었다.
지금의 대한민국 시민의식 수준은 이러한 행위들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문화로 변했다. 이런 문화가 먼저 형성돼야 그 사회 시민 수준의 역치가 변하듯 우리 소방 조직도 오랜 시간에 걸쳐 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화재 사례를 살펴보자. [그림 4]는 1층 창고화재다. 화재진압 측면에서 보면 다행히(?)도 지붕이 붕괴해 개구부가 열렸다. 위 현장은 좌우에서 고가차량 4대를 전개해 상부에서 하부로 다량의 물을 방수하는 포위 화재진압 전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현장에서는 고가차량 4대에서 방수되는 물로 화염을 냉각시키고 배연과 배열 작업을 마친 뒤 어느 정도 진압이 완료된 후 진입해도 충분한 상황이다. 고가차량을 화재진압에 사용하게 되면 노동집약적 업종인 ‘소방’의 화재진압 작업이 그 노동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화재진압이라는 작업이 쉬워진다. 쉬워짐과 동시에 안전이 확보된다. 고가차 활용 화재진압 전술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림 5]는 어느 공장화재 현장을 전면과 후면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비슷한 모습의 현장이라 분석해 봤다.
가능하다면 4면에 고가차를 배치하고 소화전 또는 물탱크차 로테이션 시스템으로 끊기지 않는 수원의 보급을 연결한 후 4면에서 포위해 다량의 물을 쏟아붓는 방식의 포위가 필요해 보인다. 4면에서 포위한다면 동시에 화재의 연쇄 확대를 막을 수 있다.
그와 동시에 현장에서 활동하는 소방대원들의 수고도 덜어질 수 있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럼 현장에서의 활동이 편해지면서 안전해지는 ‘正의 연쇄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선(line)상에서의 물을 뿌리는 것과 면(face)상에서 상부에서 하부로 물을 뿌리는 두 가지 방법 중 물이 닿는 표면적은 당연히 상부에서 하부로 뿌리는 게 더 넓다. 물은 기본적인 물리적 성질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재진압에 있어 Top-Bottom 주수는 기본 중 기본이다. 보통 이런 현장에서 우린 그동안 헬리콥터를 호출해 헬리콥터에서 뿌리는 물에 기대를 많이 하곤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헬리콥터에서 뿌리는 물은 상부에서 하부로 뿌린다는 특징이 있으나 그 양이 많지 않고 지속적일 수 없다. 그런 원리로 고가차에서 방수한다면 배치한 고가차마다 헬리콥터 1대 이상의 기능을 펼칠 수 있게 된다.
[그림 6]은 야적장 화재 현장 사진이다. 사흘을 교대로 화재를 진압한 현장이다. 화재진압이라기보다는 사진과 같이 화재 현장 대원들이 수관을 들고 물만 뿌리는 작업이었다. 이런 현장은 봄이나 가을이면 그나마 할 만하다.
그러나 8월의 햇볕 아래라거나 1월의 강추위 속에서 작업하게 되면 극심한 체력 저하를 경험하게 된다. 만약 다른 방법이 있다면 더 효율적이고 쉬운 방법을 찾는 게 정답이 될 거다. 그에 대한 방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다음의 사례를 통해 설명해 보겠다.
[그림 7]은 고가차량을 야적장 화재에 사용하는 예다. 그동안 대한민국 화재 현장에 있어 고가차량은 인명구조용으로 인식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고가차량은 화재진압과 인명구조 둘 다 사용할 수 있다.
야적장에 화재가 발생하면 고가차량을 전개한 뒤 화재 초기엔 화재 확산을 막고 어느 정도 확산이 저지됐다고 판단되면 고가차량에서 방수가 될 수 있도록 수원을 연결한다.
이후 야적물 심부로의 물 침투를 위해 야적장에 있는 업체의 집게차를 활용해 야적물을 뒤집는 작업을 업체 측에 요구한 뒤 소방은 고가차를 활용해 방수만 해주면 된다.
이렇게 하면 우리 현장 활동 대원들이 추운 겨울에 또는 무더운 여름에 관창을 들고 서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야적장에서의 고가차 활용 전술을 위해선 끊기지 않는 수원 공급을 위해 소화전 점령 또는 물탱크차 로테이션 시스템만 구사하면 된다.
필자는 화재 현장에서 위와 같이 고가차를 사용하려고 고가차 운영 대원에게 지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가차 운영 대원은 이런 전술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가서 전술에 관해 설명해 주고 설득해 현장에서 사용한 기억이 난다.
이런 이유로 전술체계에 대한 조직 구성원 모두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거다. 지휘관의 전략과 전술을 수행하는 건 결국 현장 대원들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소방관에게 당부하고 싶다.
“지휘와 현장활동을 분리하지 말자!”. 화재 현장에 시스템적 대응을 하기 위해선 시스템에 대한 모두의 이해가 필요하다.
[그림 8]은 일본 사례다. 가능한 여러 국가의 화재진압 사례를 제시하면 설득력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되도록 다양하게 사례를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고가차량을 위와 같이 사용함을 유튜브 영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화재 현장에 실증 적용함에 있어 그 효과는 직접 체감했다.
고가차량 활용 시 연소확대 저지에도 용이하고 동시에 힘든 작업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쉬운 방법이 있다면 쉬운 방법을 채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안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고가차량 활용법에 대해선 총 3회에 걸쳐 다루도록 하겠다. 그 활용방법이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기에 모두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런 욕심은 우리 소방이 노동집약적 업종이지만 노동의 절약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도 가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_ 김남휘 : nami002@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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