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여러 번 초한지를 사례로 보급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번엔 한나라 건국의 1등 공신이면서 한고조 유방의 전국 통일 이후 숙청당하지 않고 천수를 누린 유일한 개국공신이자 명재상인 ‘소하’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기원전 205년 오늘날 중국 장쑤성 쉬저우 지역에서 초한 전쟁의 판도가 결정되는 전투가 펼쳐졌다. 후세 사람들은 이 전투를 ‘팽성 전투’라 칭하면서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있다. 팽성 전투는 한나라, 전국제후 연합군 56만과 초나라 3만의 군사가 맞붙은 전쟁이다.
대략 계산해도 19대 1의 싸움인데 놀라운 건 초나라의 3만명이 한나라의 56만명을 도살한 전쟁으로 기록됐다는 점이다. 이 전투에서 한나라는 30만명이 전사했으니 초나라 병사 1명이 한나라 병사 10명을 죽인 셈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항우의 주력부대는 성양(오늘날 칭다오 지역)에서 전투 중이었는데 그사이 항우의 본거지인 팽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항우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즉시 별동대 3만명을 차출해 팽성으로 말을 달렸고 기습작전을 펼쳐 한나라 군사를 패퇴시켰다.
이미 팽성에 56만명이 주둔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두려움 없이 3만명을 차출해 돌격한 결과 승리했으니 초나라 군사의 기세는 그야말로 역발산기개세가 아닐 수 없다.
이 전투의 패배로 한나라는 패망 직전까지 갔다. 유방 본인도 자살을 생각했을 정도로 전투의 패배는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는 생각보다 빠르게 전력을 회복하고 전선에 복귀한다. 여기서 초한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연출된다.
팽성 전투 패배 당시 이미 10만의 한나라 보충병이 유방을 향해 진격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 10만의 병력은 전투 중에 출발한 셈이다. 이 보충병은 최고 지휘관이던 유방도 몰랐다고 전해진다.
10만의 충원은 하루 이틀 걸려서 될 일이 아니다. 10만명을 먹일 군량미를 준비하려면 최소 3달 이상은 소요되고 병장기와 군마를 출격시키는 것 또한 그러할 것이다.
전후 논공행상 때 한고조 유방은 한나라 건국 1등 공신으로 소하를 추대한다.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운 장수들이 칼까지 빼 들며 유방에게 대들었으나 유방은 이들을 다 뿌리치고 전쟁의 승리를 소하에게 돌린다.
뭇사람들은 한나라 유방을 단지 운이 좋았던 사나이 정도로 가벼이 평가하곤 한다. 그가 노가다 십장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정확하고 예리한 논공행상 과정을 보면서 ‘우연한 결과는 없다’란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군주로서 언제나 보급의 중요성을 생각했다. “100명의 사나운 장수가 있었던들 그들을 대체할 장수는 얼마든지 있다”면서 전선의 후방에서 국가의 시스템을 설계하고 전쟁의 보급을 책임진 소하를 가장 높게 평가했다.
앞서 초한지의 역사적 교훈으로부터 화재진압 전술을 도출해 보자. 화재진압 전술이야말로 ‘보급이 전부’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보급이 중요하다. 화재진압의 보급은 수원확보다.
끊기지 않는 수원확보야말로 화재 현장에서 가장 기본이고 핵심이다. “끊기지 않는 수원확보는 화재 현장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늘 강조한다.
이번 호에서는 ‘소화전 확보 전술’을 집중적으로 다뤄 보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화재 현장에서 소화전만 확보되더라도 소방관뿐만 아니라 국민도 화재로부터 안전해질 확률이 높아진다.
소화전 확보 전술의 실제 실험결과는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재난대응과의 ‘화재 현장 급수체계 효율적 전술 방안’ 결과를 차용했다.
이 소화전 수원확보 전술의 완성을 위해 실제로 실험을 실행한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재난대응과 대응총괄팀장님을 비롯, 대응총괄팀 전 직원분들께 깊은 존경을 표하는 바다. 대한민국 화재 현장에서의 화재진압 시스템적 대응 방법이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시작해 보겠다.
소화전 ‘쌍구 충수’ 그간 대한민국 화재 현장에서 소화전을 이용해 소방차 물탱크로 충수(물을 채움)할 때는 1개의 방수구만 사용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그랬을 거로 생각된다. 소화전은 대부분 쌍구형이다. 따라서 방수구 2개를 모두 개방해 동시에 충수하면 시간을 대폭 절약할 수 있다.
이것을 제도화하기 위해 ‘쌍구 충수’ 전술로 네이밍했다. ‘쌍구 충수’ 실험결과에서는 1구를 사용했을 때 5분 27초가 소요됐으나 2구 충수 시 2분 52초가 걸렸다. 거의 두 배 빠르게 충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두 배 빠르게 충수할 수 있다면 화재 현장에서 현장 보수를 위한 소방차 1대를 더 운용할 수 있는 +1 아이템을 장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아가 ‘쌍구 충수 + 수관 연장’ 전술로 완성이 되면 +5 정도의 버프를 받게 되는 격이다.
이를 전술적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소화전에 고정 펌프(소방펌프차 또는 물탱크차) 1대를 배치하고 소화전 쌍구를 직결해 고정펌프차 물탱크로 충수를 진행한다.
2분 52초면 충수가 완료되므로 다량의 수원이 소모되는 고가방수(고가차량, 굴절차량 등) 또는 방수포 사용에도 수원 고갈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간단히 계산해 보자.
보통 사용하는 7㎏f/㎠를 기준으로 대략 40㎜ 관창 사용 시 분당 300ℓ, 65㎜ 관창 사용 시 분당 600ℓ로 편의상 기준을 잡고 계산하면 ‘단구 충수’ 시 분당 약 1천ℓ가 충수된다. ‘쌍구 충수’ 시에는 2천ℓ가 충수된다.
화재 현장에서 근접배치한 펌프차에 관창이 보통 2~3개 정도 토출되기 때문에 최대기준으로 40㎜ 관창 사용 시 분당 900ℓ, 65㎜ 관창 사용 시 분당 1800ℓ가 필요해진다(손실량은 산입하지 않은 수치다).
따라서 단구 충수로 직결 시 수원이 부족할 수 있으나 쌍구 충수 시에는 단구보다는 훨씬 유리해진다고 할 수 있다.
기존 충수 방법에서 65㎜ 수관 한 개만 더 추가하면 되는 일이지만 그 효과는 단순 수치로 소방차 1대를 더 확보하는 결과가 아니라 추가 출동하는 물탱크차 2~5대를 대체할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전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술을 소개하기 전 막간을 이용해 그동안 강의와 기고문으로 다양한 전술을 소개한 소회를 적어보고자 한다. 정보라는 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해석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양한 실증과 실전으로 도출된 전술을 자신의 관내 조건에 맞도록 변형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소개된 전술을 현장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렵다’는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자 대체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발견됐다. 이를테면 고가차를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하면 “우리 관내에는 길이 좁고 전봇대 전선이 많아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여기서 논리적 착안점은 ‘길이 좁고 전선이 많아’ 부분이 아니라 ‘고가차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65㎜ 방수포를 사용하니 수평 방수보다 유리하다’는 부분에 있어야 한다.
고가방수의 이점에 집중해 샌드위치 패널 공장 화재 현장에서 연소확대를 방지한다든지, 야적장에서 고가방수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효율성과 편의성에 근거한 판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러한 이유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Case 1]처럼 소화전 2개를 확보해 쌍구 충수를 실행하면 분당 확보 수원이 2천ℓ×2개=4천ℓ가 된다. 최대기준으로 고가방수의 방수포 방수 압력을 13㎏f/㎠로 설정하면 고가차 방수포 1개당 분당 800ℓ가 필요하다. 위 현장에서는 고가차량을 2대 사용했으므로 고가차량으로 분당 1600ℓ가 보수돼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또 소화전 1개소에서 고가차량으로 보수를 해줬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수원은 충분해진다. 아직 소화전 쌍구 충수를 통한 고가방수를 실제로 해보진 않았다.
향후 ‘쌍구 충수 + 고가방수 n대’ 실험을 실행해 다시 기회가 된다면 결과를 공유하겠다. 누군가 이 실험을 먼저 해보고 그 결과를 알려준다면 매우 고마울 것 같다. 실제 훈련을 해보는 게 우리 화재 현장에서 문화로 자리 잡길 소소하게 기대해 본다.
경기 고양소방서_ 김남휘 : nami002@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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