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주요 내용은 삼 형제가 모두 참전해 두 명이 전사했는데 미국 정부에서는 삼 형제가 모두 전사하는 비극을 막겠다는 취지로 마지막 생존자인 막내 라이언 일병을 전장에서 구출해 무사히 집에 보내기로 한다.
그 임무를 맡은 존 밀러 대위(톰 행크스)와 분대원 7명의 희생을 그린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화려한 전투 장면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서 전쟁의 비극과 생명의 등가교환 가치를 적용할 수 있느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미국의 전쟁영화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고립된 병사를 그대로 두고 떠나는 장면을 절대 찾아볼 수 없다.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적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사회 전반에 걸쳐 암묵적으로 ‘국가는 언제나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굳은 믿음이 형성돼 있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뿐 아니라 전쟁을 다루는 어떤 영화에서든 고립된 병사를 구출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고립된 병사를 구한다’는 서사는 그 자체로서도 대단히 ‘극적(?)’이지만 사회 전반에 걸친 문화와 사상이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거로 생각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구조될 수 있다’는 믿음은 전쟁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상적 기틀이 된다.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가 끊임없는 포위와 고립의 구조이기에 ‘포위’ 전략은 전쟁 당사국 양쪽의 전략적 목표가 된다. 병사들은 언제든 적군이 펼치는 ‘포위’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렇게 생명을 위협받는 환경 속에서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구출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군대와 ‘고립되면 버려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군대는 본질적인 차이점을 가져오게 된다.
전쟁의 결과에서도 전자가 승리할 확률이 높을 거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를 떠나 생각해보더라도 포위와 구출은 군대의 가장 기본적 사상의 기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버려지지 않을 거란 믿음’. 이는 매우 중요하고도 고귀한 사상이다.
이런 기본 사상은 그 전쟁의 모두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래야만 고립된 동료가 있어도 즉각 구조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포위될 경우 어떻게 구출해 낼지의 전략을 생각하게 되고 전술이 개발될 수 있다.
생각이 사상과 문화가 되고 사상과 문화는 전략에 반영된다. 전략을 실현하는 게 전술이다. 따라서 생각이라는 건 매우 중요하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어야만 사상으로 정립될 수 있고 그 사상을 바탕으로 전략과 전술이 수립될 수 있다.
“인명에 있어선 등가교환이 이뤄지지 않는다”
1명을 살리기 위해 8명이 죽게 생겼다. 이걸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1명을 살리기 위해 8명은 희생돼도 된다?’, ‘1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기에 실패의 가능성도 있겠으나 전략이라는 건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가정하고 실행한다는 원칙에 근거한다?’.
가치 판단이라는 건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결정해야 한다. 그게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의 구조적 숙명일 테다. 그렇다면 여기선 고려 대상이 되는 충돌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어떤 게 우위에 있는 가치인지를 판단해내야 한다. 게임이라고 하면 단순히 유닛 1개를 희생시키고 8을 살리는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인명(人命)’ 적용에 있어선 그리 단순치 않다. 즉 ‘인명’에 있어선 등가교환이 이뤄지지 않는다. 소방업무에선 더더욱 그러할 거다. 단 한 명의 ‘인명’을 위해선 열 명이고 천 명이고 투입해야 한다. 그게 소방의 직업적 숙명이자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서두에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건 그만큼 초대형 물류창고에서 고립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대형 물류창고에서 ‘고립’과 ‘매몰’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에 대한 대비는 ‘필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린 그 어떠한 경우라도 고립자 발생 시 구조대를 투입해 구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이제부터 그 방법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다.
대형 물류창고 화재의 기본 개념 <119플러스> 9, 10월호의 초대형 물류창고와 화세(火勢)의 대류 ①과 ②에서 강조했던 걸 다시 한번 살펴보자. 대형 물류창고 화재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다음과 같다.
세상 모든 건 세력을 형성한다. 화재에선 화세가 형성되고 소방관은 그 화세를 수세로 막아낸다. 이 수세의 형성은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한다.
두 번째는 우레탄 폼의 특성이다. 우레탄 폼은 급격한 연소확대와 다량의 검은 연기를 발생시키는 특징을 지닌다. 우레탄 폼의 연소에 대해선 국립소방연구원의 실험 결과로 설명하고자 한다.
아마도 대형 물류창고에선 이 성장기까지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 대형 물류창고는 일단 한 개 층의 높이가 10m에 이르고 직선거리가 200m 이상이 된다.
내부는 배송을 기다리는 택배 물품들로 가득한데 이를 화재의 측면에서 보면 전부 가연물이다. 물류창고 효율화로 인해 공간은 물품들로 빼곡히 채워질 수밖에 없다.
기존의 화재진압 전술을 적용해선 진압이 어려울 뿐 아니라 고립되기 쉬운 특징이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건축물 자체가 거대하기에 일단 발화점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또 층별 구획이 없어 개방된 공간에서 열대류 때문에 산발적으로 화점이 생성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대형 물류창고의 산업적 특성상 물류 선반으로 가득 차게 되고 이는 고립된 소방관의 탈출 가능성을 낮추는 장애물로 작용하게 된다.
대형 물류창고에는 [그림 4]처럼 수백, 수천 개의 선반이 설치돼 있다. 여기 적재된 물건들이 화재 시 가연물이 된다. 그 어떤 건축물보다 단위 면적당 가연물의 양이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림 4]는 한 개 층당 복층의 형태를 띤 건축물이다.
따라서 높이가 높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대형 물류창고가 위험한 이유 중 하나인 높은 층고로 인한 대량의 열 축적 가능성과 그에 따른 플래시오버, 훈소 시간 지연을 알아보기 위해 한 장의 사진을 더 살펴보자.
일반인은 사진만 봐선 “선반이 나란히 정렬돼 있는데 복도를 따라 빠져나오면 탈출할 수 있는 것 아니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소방관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할 거다. “저기서 화재로 인해 전기가 차단되고 전등이 다 꺼진다면 끔찍한 불구덩이가 되겠구먼!”.
그렇다. 그냥 보기엔 정리가 잘 된 창고로 보이지만 화재가 발생하고 전기가 차단되면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한다. 공간이 넓어서 화재 발생지점을 찾기란 매우 어렵고 이를 찾고자 진입한다면 우레탄 폼 폭발 현상과 고립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언제 폭발이 발생할지 그로 인해 고립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그 폭발 시점은 가연물의 양과 공간의 넓이 그리고 배열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욱 끔찍한 상황은 화재 발생 후 내부에 탈출하지 못한 근로자들이 남아 있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 소방엔 선택권이 없어진다. 가치 판단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폭발기를 예측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 폭발기를 예측하려는 노력보단 폭발 가능성을 낮추거나 폭발 시 탈출이나 구출에 집중하는 게 생존 가능성을 높일 방법이다.
앞서 대형 물류창고에 있어 화세와 수세의 대립을 이해하는 게 첫 번째라고 강조했다. 화세는 내부에 축적되고 이동한다. 그 축적이라는 조건을 바꿀 수 있다면 성장기를 계속 늦출 수 있다.
어쩌면 배열을 무한대로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면 폭발기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성장기에 열의 축적을 막기 위해선 개구부를 개방시켜야 한다. 개구부 개방으로 [그림 3] 그래프의 기울기를 낮출 수 있다.
기울기가 낮아진다는 건 내부 온도를 낮출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내부 온도를 낮춘다는 건 그래프의 길이를 길게 할 수 있고 결국 폭발기의 발생을 없앨 수도 있게 된다.
개구부 개방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내부의 온도를 낮추는 것뿐 아니라 개방된 부분에 고가차량으로 방수하게 되면 강력한 수세로 화세를 밀어내는 형국을 만들 수 있다.
또 개방된 개구부는 진입한 소방대원들의 탈출구로 활용될 수 있다. 4면의 벽을 뜯어내고 4방향에서 고가차량으로 포위한 뒤 강력한 수압으로 방수할 수 있다면 전략의 기초인 포위 섬멸전략이 완성된다.
4면 포위가 안 되더라도 1면만 개구부를 개방하고 강력한 수압으로 방수할 수만 있다면 위험하지 않을 확률, 즉 안전할 확률을 약 25%는 끌어올릴 수 있을 거다.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가?
과연 우린 새로운 전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가 얼마 전 보게 된 연구결과를 비유로 설명해 보겠다. 지구상 가장 위대한 기업 ‘구글’에서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는 ‘왜 아시안(Asian)은 구글 조직 내에서 성공하지 못하는가?’라는 제목이다. 개개인의 능력을 보면 아시안은 매우 똑똑하고 성실하다.
그러나 구글 조직 내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 구글에서는 구글 조직 내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아시안의 가장 큰 원인을 ‘권위에의 복종’이라고 결론 내렸다.
여기서 권위라는 건 사회적 신분이 될 수도 있겠으나 기존 ‘고정관념’이라든지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까’를 굉장히 두려워한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조차 안 하고 내려지는 명령을 수행하는 데 집중하는 성향을 보인다.
생각해보니 문화의 차이가 혁신의 차이도 가져오는 거였다. 구글에 근무하는 한국인이라면 한국에서도 최고의 능력을 보유한 사람일 텐데 능력보다 중요했던 게 ‘문화’였다는 결론이 매우 놀라웠다.
그만큼 문화는 생각을 지배하고 생각은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그림 6]의 전술은 대한민국의 문화적 특성상 소방전술로 채택되기 어렵지 싶다.
그간 소방전술 혁신 작업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바와도 일맥상통한다. 새로운 전술의 도입을 ‘권위에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시도를 두고 ‘실패의 책임’에 대한 물음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대한민국 공공조직에 있어선 해외사례가 매우 중요하다. ‘외국에서는 하고 있다’는 사실은 설득력을 매우 높여준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와 반도체 패권을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만에서 위 전술을 적용하고 있었다. 대만의 반도체가 한국보다 살짝 우위에 있는 이유기도 하지 않나란 개연성 없는(?) 생각을 해본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사고의 흐름일 뿐이다.
내부에 열기와 연기를 빼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개구부를 개방해야 하고 이곳으로 물을 방수하면 화재진압의 효과를 가져오게 되는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일 뿐이다.
화재 발생과 동시에 대형 물류창고에서는 개구부 개방을 제1 원칙으로 해야 한다. 개방은 많을수록 좋다. 개구부를 개방하고 화세의 축적을 막아낸 후 밖으로 배출시키면 그와 반비례해 내부 온도는 낮아진다. 온도가 낮아질수록 우레탄 폼의 연기폭발 가능성도 작아진다.
또 개방된 개구부를 통해 강한 수압으로 고가방수를 전개하면 냉각 효과와 밀어내기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어 대형 물류창고 내부를 화세에서 수세로 전환할 실마리도 마련할 수 있다.
대형 물류창고에서 불의의 연기폭발을 만나게 된다면 답은 탈출밖에 없다. 이때 생존 확률은 개구부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개구부에서 멀수록 생존 확률은 낮아지고 개구부로부터 가까울수록 생존 확률은 높아지게 된다.
개방된 개구부로부터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강력한 방수가 이뤄지고 빛이 새어 들어오게 된다. 개구부로 전개된 고가차량이 탈출에 이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개구부가 많을수록 내부 소방관은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또 위와 같이 개방된 개구부에 다수의 고가차량을 전개해 매우 강력한 압력으로 방수한다면 방수 직선거리 30~50m까지 물을 뿜어낼 수 있어 화재진압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열린 개구부로 고가사다리차를 전개하면 동시에 탈출로로 이용될 수도 있다.
소방관의 생명도 소중하다 우리 소방관들이 스스로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실제 적용해 보는 건 희생을 막을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정책적으로 ‘소방전술연구소’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소방 전술에 있어 기초개념부터 신기술까지 통합할 수 있는 체계적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소방관 스스로가 연구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소방관의 생존에 관심을 갖지 않을 거다. 단언컨대 대형 물류창고 화재는 반복적으로 발생할 거다. 그때마다 똑같은 문제는 계속 반복될 것 같다.
우리 소방관의 희생이 다신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조직적 역량을 대형 물류창고에서의 생존 확률을 향상시키는 데에 쏟아부어도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형 물류창고에서의 안전사고는 안전대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제대로 된 메타인지부터 시작해야 메타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고 실증실험을 거쳐 현장에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는 연구 개발기능이 절실하다.
우리 소방에 당장 필요한 건 기초다. 화재와 구조, 구급이라는 소방 3대장의 초석을 굳건히 다지는 시간과 조직만 하더라도 현재의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할 거다.
조직을 얇고 넓게 펴는 것도 좋지만 기능의 심화를 위해 깊고 굵게 해야 할 부분도 있다. 화재라는 부분은 조직의 Core에 해당한다. 이 허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을 거다.
Firefighter’s Lives Matter(소방관의 생명도 소중하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_ 김남휘 : nami002@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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