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5분께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15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필자가 던지는 주제는 당시 소방의 대응이 적절했는지가 아니라 해외 다수 사상자 사고를 바탕으로 앞으로 대한민국 소방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다소 무거운 주제고 필자의 의견에 반대하는 동료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던져야 할 화두라고 생각하며 글을 시작한다.
소방청에서 배포한 119구급대원 현장응급처치 표준지침 III-5 ‘특수상황 응급처치 표준지침’ 파트에 ‘다수환자 발생 및 재난사고’를 보면 세 쪽 분량의 아주 간단하고 기본적인 다수 사상자 대응 지침만 언급돼 있다.
2022년 1월에 배포된 ‘다수 사상자 발생 재난 119구급대응 표준매뉴얼’ 역시 다수 사상자 사고 현장 대처 흐름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 다양한 현장에 대한 예시나 구급대원의 현장 대응능력 향상엔 다소 부족하다는 게 필자 의견이다.
일본 효고현 아카시市 압사 사고 2001년 7월 일본 효고현 아카시市에서 여름 축제의 불꽃놀이를 보러 방문했다가 11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총 24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가 있었다.
사망자는 9세 미만의 어린이 9명과 70대 여성 2명이었는데 그중 2세 아기도 사망자에 포함돼 있었다. 사고 발생 시 자기 신체를 보호하기 어려운 아동과 노인들이 다수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폭 6m, 길이 104m 육교 위에 6천명 이상의 군중이 밀집한 상황이었는데 1㎡당 13~15명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이태원 사고 당시 1㎡당 8~10명의 사람이 밀집한 것과 비교해 보면 훨씬 더 높은 초과밀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오후 8시 21분: “아사기리역 주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와주세요”라는 최초의 110번(일본의 경찰 신고 번호) 신고가 접수되고 8시 40분까지 총 27건의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다.
오후 8시 31분: 불꽃놀이 행사가 종료됐고 7분 후 “아이의 상태가 나쁘다”고 119에 신고가 접수돼 구급대가 출동한다.
오후 8시 45분: 기동대가 보도교 남쪽 계단 아래에 도착해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계단을 봉쇄한다. 사람이 더는 유입되지 않도록 했지만 사람들이 균형을 잃고 잇따라 넘어지기 시작했다. 반대쪽인 해안가로 내려가는 계단은 폭이 점점 좁아지는 구조였기 때문에 계단 앞에서 사람들이 넘어지며 서로 깔리는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고베시 경찰 본부에는 “보도교, 아사기리역, 부상자 있어요. 10명 이상, 아이가 호흡할 수 없는 것 같다”, “울타리가 부러질 것 같고 사람이 떨어질 것 같아” 등 신고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오후 9시께: 소방대원과 현경 경찰들이 부상자를 구출하고 환자들을 이송하기 시작했다.
오후 9시 17분: 아사기리역 북쪽에 구호소가 설치되고 인근 고베市, 가고가와市에도 지원요청이 접수됐다. 환자가 누울 침대가 없어 10명 정도의 환자는 긴 책상 위에 임시로 누워 있었다. 이미 의식이 없고 심각한 상태였다.
오후 10시 50분: 부상자 이송이 종료됐다. 사고 후 약 2시간 만에 사망자를 포함해 총 84명의 사상자가 이송됐고 부상자는 247명에 달했다.
사고 조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경찰의 대비가 매우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경비 업무의 일부를 민간 경비업체에 맡겼는데 경비업체가 전년도의 경비계획을 그대로 경찰에 송부했고 경찰은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비업체는 전년도 참관 인원보다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판단해 경찰에 이를 알렸으나 경찰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또 보도교에는 최초 경찰 36명을 배치하기로 했으나 사고 당일에는 16명만 배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300여 명의 경찰 인력은 폭주족 대응을 위해 다른 곳에 배치됐다.
결과적으로 보도교 위에는 1600여 명의 사람이 최대 한계였으나 6400여 명의 인원이 몰리면서 통제가 불가능했다.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외상성 질식 사망자 11명 모두 흉부 압박으로 인한 외상성 질식사가 원인으로 나타났다. 외상성 질식이란 흉부ㆍ복부가 압박되면서 흉곽 움직임이 제한되고 이로 인해 호흡 운동의 장애가 발생해 일어나는 질식사를 말한다. 코와 입이 막혀 발생하는 ‘기도 폐색성 질식’과는 메카니즘이 다르다.
흉곽은 갈비뼈와 흉골로 덮인 부분을 의미한다. 폐와 심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가슴과 배 사이에 있는 횡격막, 늑골 사이 늑간근의 움직임에 의해 호흡 운동이 유지되는 역할도 한다.
흉곽이나 복부가 무거운 물체 또는 기계에 압박되거나 이런 압사 사고처럼 많은 사람이 밀집한 경우 움직임이 제한돼 폐의 움직임이 방해되면 호흡을 할 수 없어 사망에 이르게 된다. 가슴이 압박됨으로써 전신을 순환하고 있는 혈액이 심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돼 심정지를 일으키는 것도 사인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무게에 몇 분 정도면 질식사에 이르는 가에 대해 일본 도쿠시마 대학 교수이자 법의학 전문가인 니시무라 아키유 교수는 “해외 동물실험이나 과거에 일어난 사고 실례 등을 통해 추측하자면 개인차는 있지만 자신 체중의 두 배까지 무게라면 질식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체중의 다섯 배 이상이라면 10분 정도로 질식사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구급대원이 외상성 질식으로 인한 심정지 환자나 무호흡 환자를 접할 땐 장시간 호흡을 하지 못해 발생한 심정지라는 걸 인지하고 빠른 전문기도확보를 고려하는 게 좋다. 환자에게 산소를 공급하며 심폐소생술을 제공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외상성 질식뿐 아니라 화재 현장이나 유독 가스 노출로 인한 심정지 같은 경우도 백 밸브 마스크 환기, 전문기도확보 등 산소 공급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심폐소생술 시 일반인은 인공호흡을 하지 않는 걸 권고하고 있다. 구급대원도 전문기도확보 전까진 직접 인공호흡을 하지 않도록 하는 상황이다.
물론 인공호흡이나 환기를 하지 않고 흉부압박만 하는 것으로도 폐포에서 약간의 산소교환 효과가 있다. 다수 사상자 발생 현장처럼 1인 심폐소생술을 할 수밖에 없거나 백 밸브 마스크 같은 환기 장비가 부족한 경우 비 재호흡 마스크만 씌워놓고 흉부 압박을 하는 수동 산소 공급법(passive oxygen insufflation)1)을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다수 사상자 발생 상황에 따라 지휘관이나 구급대장이 일반인이나 소방대원, 경찰 등 1차 반응자에게 페이스 쉴드나 포켓 마스크를 사용해 인공호흡을 하도록 지시하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
평소 현장에선 거의 사용하지 않는 장비지만 부피가 작고 보관이 간편해 다수 사상자 현장에서는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사람은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다’란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원칙을 잊지 말자.
먼저 한국과 해외의 다수 사상자 사고 정의를 비교해보자. 사고 현장에 대한 정의는 출동 단계에서 얼마나 많은 소방력이 필요한지, 현장에서 어느 정도의 소방력을 운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서는 다수 사상자 사고를 ‘동시에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어 응급의료의 제공을 위해 별도의 의료적 조치가 필요한 사건, 사고’로 정의하고 있다.
자연재난은 ‘태풍, 홍수, 호우, 강풍, 풍랑, 해일, 대설, 낙뢰, 가뭄, 지진, 황사, 조류 대발생, 조수, 화산활동,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자연현상으로 발생하는 재해’로 명시한다.
해외에서는 다수 사상자 사고를 MCI로 통칭해 부르는데 대량 사상자 사고와 다수 사상자 사고로 분리해 정의한다.
대량 사상자 사고(Mass Casualty Incident)는 관할 소방력과 지역 병원 수용 능력을 초과해 질병 또는 부상을 초래하는 인재, 자연재해로 정의한다. 주로 다수의 사망자와 중상자가 발생하는 사고로 다수 사상자 사고보다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수 사상자 사고(Multi Casualty Incident)는 관할 소방력과 지역 병원 수용 능력으로 관리가 가능하거나 관할ㆍ지역 병원 역량을 압도하진 않지만 지역 내 1개 이상의 병원 능력을 초과하는 사고 또는 보건ㆍ의료 서비스에 짧고 강렬한 수요를 발생시키는 사고로 정의할 수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대량 사상자 정의(Mass Casualty Incident Defined)에서는 다음처럼 3단계로 구분한다.
ㆍ레벨 1: 환자가 5~10명으로 많지 않고 관할 소방서 소방력(구급대)으로 해결 가능한 사고 규모다.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다수 사상자 사고로 화재나 교통사고 등 다양하게 나타나며 사고 발생 지역 인근 병원에서 수용이 가능한 규모다. 환자 발생 수가 적어 환자를 수집할 필요도 적다. 1차 분류만 하고 후착 구급차가 도착하는 대로 즉시 이송하는 방법이 주요하다.
ㆍ레벨 2: 발생한 환자가 11~20명으로 관할 소방서 외 인접 지역 소방력의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사고 발생 인근ㆍ인접 지역 병원으로 분산 이송이 필요할 수 있다. 관할 소방서 소방력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최대치의 다수 사상자 사고라고 볼 수 있다. 환자 수는 적어도 사망자, 중상자 수에 따라 현장 활동 난이도가 천차만별이 된다. 도 단위 소방이나 외곽지역, 교통 체증 등 상황에 따라 환자 수집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ㆍ레벨 3: 환자가 21~100명으로 관할 소방서 외 다수 소방서의 지원이 필요한 사고 규모다. 사고 발생 즉시 시도 내 모든 병원에 통보하고 환자를 최대한 분산 이송해야 한다. 초기 소방력이 열세일 경우가 대다수며 레벨 3부터는 환자 수집과 2차 분류가 필요하다. DMAT과 신속의료대응팀의 현장 출동이 필요할 수 있다.
ㆍ레벨 4: 환자가 101~1천명으로 관할 시도 소방력 외 타 지역 소방력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사고 발생 즉시 관할 시도와 인접 시도 모든 병원에 통보가 필요하다. 극심한 소방력 열세가 발생하며 환자 수집과 2차 분류가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DMAT과 보건소 등 지원 인력의 현장 출동이 필수다.
ㆍ레벨 5: 환자 1천명 이상 발생한 사고로 관할 시도 외 타 시도 소방력의 광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재난 대응이 이뤄져야 하며 주로 자연재해가 원인이 될 경우가 많다. 광범위한 지역에 사상자가 발생하며 사고 수습을 위해 장시간이 소요된다.
다수 사상자 규모를 레벨로 분류하면 상황실과 구급대원, 지휘관이 빠르게 사고 규모를 인지할 수 있고 같은 개념을 바탕으로 현장 활동과 현장 지휘를 할 수 있다. 또 상황실이나 지원부서 역시 MCI 레벨이 공유됨으로써 추가 소방력 요청 규모, 병원이나 보건소 등 지원요청 필요 여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착 구급대가 “다수 차량 교통사고 발생. 레벨3 MCI. 레벨3 MCI. 환자 30명 이상 발생 추정됨. 중증 환자도 다수 발생” 이런 식으로 미리 약속된 MCI 레벨을 사용해 최초 상황 전파를 한다면 상황실이나 지휘관은 MCI 레벨에 따라 정해진 대로 추가 자원을 빨리 요청할 수 있고 보건소 등에도 빠르게 통보할 수 있다.
현재 대형 화재 상황에서는 대응 1단계에서 3단계로 분류하고 있지만 구급 재난이나 다수 사상자 현장에서 이런 분류가 없는 건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자 가장 먼저 수정돼야 할 문제다.
소방에 있어 다수 사상자 사고 해결에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사고 초기 환자보다 소방력(구급자원)의 열세다. 이를 빠르게 해결할 방법은 사고 규모와 환자 발생 수에 맞도록 필요한 자원을 최단 시간에 집중하는 데 있다. 또 소방력 외에도 보건소, 경찰, 민간이송단체, 지역 군 자원, 해병대 전우회 등 재난 정도에 따라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두는 게 좋다.
다수 사상자 사고 현장에서 중증도 분류를 하는 목적은 가용 가능한 자원(Resource, 소방력, 구급력)으로 살릴 수 있는 환자를 긴급도에 따라 우선 이송하기 위함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1) 2010년도 이전에 병원 전 심폐소생술에서 백 밸브 마스크 환기보다 우수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2010년도 AHA 가이드라인에도 설명돼 있으나 2015년 가이드라인부터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걸 권장하지 않는다.
부산 해운대소방서_ 이재현 : taiji3833@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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