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119] “퇴직하는 그날까지 우리나라 구급발전에 힘쓰겠습니다”인터뷰 소방공무원 최초 응급구조학 박사 박주호 경북 영천소방서 금호119안전센터장
박주호 경북 영천소방서 금호119안전센터장(소방경)에겐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는 제1회 응급구조사 시험에서 2급 자격증을 획득해 소방에서 처음 응급구조사를 채용한 1997년 소방에 입직했다. 지난 8월엔 현직 소방공무원 최초로 ‘응급구조학 박사학위’를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학교 때 동네에서 벼 베기 행사를 한 적이 있어요. 집을 나서기 전, 천 쪼가리를 잘라 주머니에 넣었죠. 낫으로 벼를 베다 혹시 누가 다치기라도 할까 하는 조바심에서였습니다. 벼 베기를 하다 친구가 낫에 손을 베인 걸 보고 제가 천으로 상처 부위를 묶어준 기억이 납니다. 그때 형언할 수 없는 큰 보람을 느껴 꼭 남을 돕는 직업을 택하리라 마음먹었죠”
대학에서 방사선을 전공한 박주호 소방경은 졸업 후 병원에서 방사선사로 근무했다. 일은 재밌었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1994년 성수대교, 이듬해 삼풍백화점이 붕괴하는 등 대형 재난이 연달아 발생했다. 이에 발맞춰 응급의료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1995년 응급구조사 자격제가 생겨났다.
“이 소식을 듣고 꼭 도전해 보고 싶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영진전문대학에 개설된 2급 양성과정을 이수한 후 바로 시험에 응시해 2급 자격증을 딸 수 있었죠. 응급구조사로 활동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소방공무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을 돕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제 꿈과도 맞아떨어졌죠”
2010년 4월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던 20대 직원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단 신고가 들어왔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심폐소생술을 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안에서도 응급처치는 계속됐다.
그런데도 환자 의식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길 바라며 온 힘을 다해 응급처치를 했다. 병원에 인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의료진이 다시 그를 불렀다. 환자가 ROSC(자발적순환회복) 상태로 돌아온 것.
“석 달 뒤 건강하게 퇴원한 환자와 아버지가 소방서로 찾아오셔서 연신 고맙다고 하셨어요. 구급대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직접 감사하다고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구급대원은 국민의 든든한 동반자라는 걸 느꼈습니다. 인생에서 기억하는 가장 값진 순간이 바로 그때입니다”
박 소방경은 2011년 경북소방 구급대원으로는 처음으로 응급구조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구조대상자 소생에 도움이 되고자 구급대원이 됐지만 2급 응급구조사 자격만 있어 응급처치 업무 범위가 한정적이었다.
“1급 응급구조사, 간호사 후배들이 할 수 있는 처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어요. 선배로서 뛰어난 술기를 전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는데 현실은 제한적이었죠. 열심히 공부해 3년 만에 1급 응급구조사를 땄는데도 여전히 전공지식이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됐죠”
박 소방경이 대학원에 다닐 당시엔 응급구조학 석사과정이 공주대학교밖에 없었다. 집인 경산에서 공주까지 왕복 400㎞를 오가며 열정을 놓지 않았다.
이틀간의 수업을 위해선 3일을 연속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분명 체력적으로 고됐지만 힘듦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부에 대한 갈급함이 더 컸기 때문이다.
박 소방경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0년 뒤인 2021년 ‘소방공무원에 대한 다수사상자 사고 대응 실습 프로토콜 개발’이라는 연구로 응급구조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소방의 중요한 역할은 재난 현장에서의 대응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과 훈련을 체계적으로 해야 하는데 마땅한 교육 프로토콜이 없더라고요.
더구나 긴급구조통제단이나 재난의료지원팀 등이 가동되기 전 현장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선착대부터 각 팀을 세 명으로 가정해 현장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각자의 임무를 정한 게 논문의 핵심입니다. 역할이 명확하면 아비규환 같은 현장에서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고 이는 곧 국민의 안전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박 소방경은 정년을 4년 앞두고 있다. 응급구조사 역사의 시작과 현재를 함께하고 있는 그는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인생의 멘토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후배들이 정말 잘합니다. 신임 대원인데도 너무 뛰어나 놀라곤 하죠. 이런 친구들이 수많은 출동에 체력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힘겨워하는 걸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그때마다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인생 선배이자 소방관 선배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들면 언제든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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