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놓인 완성품 리튬 배터리들… “현실적 관리 대책 마련돼야”화성 화재 첫 폭발 → 암흑 시간은 42초, “일차전지가 위험성 더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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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최누리 기자] = 31명의 사상자를 낸 화성 아리셀 공장처럼 완성품 배터리가 켜켜이 쌓인 곳들이 화재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문가들은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선 리튬 소재 배터리 자체를 위험물 또는 특수가연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는 부지 내 3동 2층에서 처음 시작됐다. 연면적 2363㎡ 규모(1층 1204.29㎡, 2층 1158.69㎡)의 공장 건물 2층은 배터리 완제품 검수와 포장 작업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화재 당시 이곳에는 3만5천여 개에 달하는 원통형 리튬 전지 등이 있었다.
아리셀 공장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는 리튬 일차전지로 분류된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전기차 등에서 사용하는 이차전지와 달리 한번 사용하면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또 저장 수명이 5~10년으로 긴 데다가 다른 소재 일차전지보다 작고 가볍게 만들 수 있어 스마트그리드 계량기나 군수용 통신장비, 석유 시추 등에 주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리튬메탈을 음극재로 사용하는 리튬 일차전지에서 불이 나면 화재 성상이 커 이차전지보다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다. 전지 하나에 불이 나면 주변 전지로 열을 전달하는 열전이 현상으로 인해 연쇄 폭발하기 쉽다. 또 물로 리튬 배터리 화재를 진압하면 리튬메탈과 수분이 만나 수소가스가 발생하고 고열에 따른 전해질 반응으로 유독 가스도 배출된다.
이 같은 리튬 배터리 화재는 진압 방법이 마땅치 않다. 겉으로는 불이 꺼진 것처럼 보여도 내부에서 1천℃ 이상 열이 발생해 다시 불꽃이 발생하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으로 구성되는 배터리에 열적, 전기적, 물리적 등의 충격이 가해져 온도가 상승하면 분리막이 분해되면서 내부 단락(합선)이 발생한다. 이후 양극재와 음극재가 만나면서 과도한 전류가 흐르고 열폭주를 일으키며 화재나 폭발로 이어진다.
아리셀은 일차전지 중 양극재는 카본, 음극재는 리튬메탈, 전해질은 염화티오닐(SOCI₂)을 사용한 일차전지를 생산해온 것으로 확인된다. 이 전해질이 물과 반응하면 염화수소, 이산화황과 같은 독성물질을 내뿜는다. 화재 당시에는 리튬 일차전지 1개에 붙은 불이 연쇄 폭발하면서 급격히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호 경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지난 24일 언론 브리핑에서 “급격한 발화로 작업실 전체를 덮는 데 1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대피를 위해 출입문을 나와 비상구로 내려가든 다른 곳으로 나와야 하는데 작업자들이 안쪽으로 들어가 유독성 연기를 흡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용혜인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화재 대응 보고 자료에 따르면 실제 화재 당일 오전 10시 30분 3초께 배터리의 1차 폭발이 발생한 뒤 3차 폭발까지는 불과 28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후 작업자가 분말소화기를 사용해 초기 소화를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14초 후 검은 연기는 작업장 전체를 뒤덮었다. 1차 폭발 후 작업장 내 연기가 가득 차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42초 남짓이었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차전지는 대중화된 이차전지보다 화재 위험성이 더욱 크다고 경고한다. 강경석 구리소방서 화재조사관(재난과학박사, 리튬이온 배터리 열폭주 세부전공))은 “리튬이온 배터리는 산화물계 전이금속에 리튬을 합성한 양극재를 사용하지만 리튬 일차전지의 경우 음극재는 리튬메탈, 전해질은 염화티오닐을 사용해 위험성이 크고 대응도 어렵다”며 “패키징된 배터리에 소화약제가 제대로 침투되지 않아 초기 화재 시 소화기를 통한 대응은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리튬를 사용하는 완제품 배터리의 안전 대책으로 위험물 또는 특수가연물로 포함시켜 규제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제조시설 내 리튬 배터리를 일정 수량 이상 보관할 경우 별도 공간에 저장하거나 유사시 피난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현행법(위험물안전관리법, 이하 위험물법)상 리튬은 제3류 위험물로 분류된다. 지정 수량을 넘기면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위험물 옥내저장소로 허가를 받은 아리셀 공장의 경우 정해진 장소에서만 리튬 원재료를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리튬 원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진 완제품 배터리는 위험물법상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다. 연쇄 폭발을 일으키는 위험성이 상당하지만 가공 전과 후의 규제가 달라지는 셈이다.
김동현 전주대학교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는 “원재료인 리튬은 관련법상 규제를 받지만 완제품인 배터리로 만들어지면 규제 대상이 아니다”며 “리튬이 배터리에 적용된 이후에도 위험물로서 지속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터리 화재 시 질식소화덮개로 덮어 불길이 퍼지지 않도록 하는 한편 재실자들이 신속히 대피할 수 있도록 배터리의 용량별 배치 기준을 마련하는 등의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리튬 배터리를 특수가연물로 지정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현행 ‘화재의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선 화재 시 불길이 빠르게 번지는 고무류나 플라스틱류, 석탄ㆍ목탄 등을 특수가연물로 지정하고 있다. 이 특수가연물을 실내에 저장할 땐 주요구조부는 내화구조, 불연재료여야 하고 다른 특수가연물과 같은 공간에 보관하지 못 한다.
특히 적재 특수가연물 간 간격을 1.2m 또는 적재 높이의 2분의 1 중 큰 값 이상으로 간격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최대 저장 수량 등 내용이 포함된 표지를 반드시 부착해야 한다.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리튬 원재료일 땐 가공 공장이나 저장소를 중심으로 관리하면 되지만 리튬 배터리인 완제품일 경우 보관 공간마다 규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그런데도 제품화된 리튬 배터리에 대한 관리 규제가 필요하다면 현행법상 특수가연물로 지정해 보관ㆍ적치 방법 등을 규정하는 등 화재 시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 현실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튬 배터리와 같은 위험물을 특수가연물로 지정하는 걸 전제한다면 취급 저장장소에 대한 적극적인 점검과 모니터링 등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갖출 필요가 있다”며 “배터리 제조시설에 적합한 화재 예방시설 등의 기술적 검토가 선행된 뒤 관련 기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