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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차바’가 할퀴고 간 고 정희국 소방관… ‘위험직무순직’ 인정

인사처,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해 긍정적 평가
극단적 선택 소방관 위험직무순직 인정 첫 사례 기록

유은영 기자 | 기사입력 2020/05/21 [11:36]

[단독] ‘차바’가 할퀴고 간 고 정희국 소방관… ‘위험직무순직’ 인정

인사처,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해 긍정적 평가
극단적 선택 소방관 위험직무순직 인정 첫 사례 기록

유은영 기자 | 입력 : 2020/05/21 [11:36]

▲ 고 정희국 소방관의 생전 모습  © 조동현 울산북부소방서 농소119안전센터장 제공


[FPN 유은영 기자] = 정부가 지난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정희국 소방관의 죽음을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했다. 이로써 그는 그토록 함께하길 원했던 고 강기봉 소방관의 곁에서 안도할 수 있게 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을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한 최초 사례다.


인사혁신처(이하 인사처)는 지난 20일 열린 고 정희국 소방관의 위험직무순직 심의에서 가결 처리했다. 인사처가 문재인 정권 기조에 맞춰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사안에 접근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8월 5일 울산 북부소방서 농소119안전센터에서 근무 중이던 고 정희국 소방장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2016년 태풍 ‘차바’ 당시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고 강기봉 소방관의 생일 바로 다음 날이었다.


당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를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해야 하냐는 부분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했다.


공무원재해보상법 제3조에 따르면 ‘위험직무순직공무원이란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가 입은 재해를 입고 그 재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한 공무원을 말한다’고 명시돼 있다.


심의 쟁점은 과연 고 정 소방관의 죽음이 위험 직무를 수행하다 입은 재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는가였다.


지금까지 소방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경우 일반순직으로 인정된 사례는 있었다. 그러나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969년 대법원은 직접적인 원인의 의미에 대해 ‘직접적인 사망의 원인은 의학상의 원인이 아니고 의학상의 원인을 야기하게 한 사회적인 원인’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상당 기간이 지나긴 했지만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한 최초 법적 판단을 제시한 중요한 판례다.


심의회에 유가족을 대신해 참석한 대한변호사협회(소방관법률지원단) 주어진 변호사는 이 판례를 논리로 심의에 참석한 위원들을 설득해 나갔다.


주 변호사는 “공무원재해보상법의 입법 목적은 공무원이 공무로 인한 질병이나 장애, 사망에 대해 적합한 보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며 “이때 입법자가 의도했던 적합한 보상은 유족들이 아픔을 딛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따뜻한 보상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사처의 결정도 이런 공무원재해보상법 입법 목적에 아주 잘 부합하는 판단이라고 생각해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고 정희국 소방관의 유족들도 인사처의 심의 결과를 반기고 있다. 유족은 “일반순직 정도만 해줄 거라 생각해 재심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믿기질 않는다”며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정 소방관의 마지막 근무지였던 울산 북부소방서 농소119안전센터의 조동현 센터장은 “희국이는 엄밀히 따지면 차바 때 죽은 애다. 나머지 3년이란 세월을 버텼던 이유는 남겨진 두 딸과 세상 물정 모르는 집사람. 그 사람들 때문에 억지로 버텼던 거다”며 “그게 한계점에 와서 그런 선택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인정을 해줬다는 거에 대해 관계자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아버지를 생각할 때를 생각해보면 명예를 회복해 준 국가에 크게 감사할 것”이라며 “희국이 사건이 일어나고 센터 직원들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사건을 좋게 종결시키기 위해 내색 안 하고 버텨준 직원들에게도 고맙다”고 덧붙였다.


고 정희국 소방관이 고 강기봉 소방관의 곁에 잠들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곧 국가보훈처 심의를 통해 국립현충원 안장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한편 고 정희국 소방관은 2016년 10월 5일 태풍 ‘차바’ 재해 현장에 출동했다. 구조출동 지령을 받고 이동하다 경유 한 곳에서 강이 도로로 범람해 차량에 두 명이 고립됐다는 구조요청을 받았다.


차량에 접근해 요구조자가 없음을 확인한 후 구급차량으로 돌아오다가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고 정희국 소방관을 비롯해 고 강기봉 소방관, 남신형 센터장 등 세 명의 소방관이 강한 물살에 전원 고립됐다.


이 사고로 고 강기봉 소방관은 고인이 됐고 살아남은 고 정희국 소방관은 ‘급성 스트레스 반응’과 ‘익사 및 비치명성 익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겪어야만 했다. 2016년 10월 5일을 시작으로 2019년 7월 5일까지 총 6회, 990일간 공무상요양승인을 받았다.


고 정희국 소방관의 휴대전화에는 ‘언제나 같이 죽거나 같이 살았어야 했다’는 메모가 남아 있었다. 2년 10개월간 당시 현장과 고 강기봉 소방관이 발견된 장소를 찾아다니며 잠시도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의 고통은 이 메모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내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그의 글에는 ‘상담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극복을 위한 치료 실패’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 정 소방관 역시 ‘치료를 포기하기로 했다’고도 써놨다. 또 약의 부작용으로 ‘내 안에 다른 인격을 느꼈고…’ 등의 표현을 남겨 주변인을 안타깝게 했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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